죽창 대 기관총, 한 눈에도 열악한 동학군의 화력
2024년이 동학혁명 130주년이다. 처음엔 '반역'에서 동학란으로, 또 그사이 동학농민전쟁이었다가 백 주년에서야 비로소 ‘동학농민혁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름 하나 바꾸는데 백 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동학혁명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혁명에 참여했던 오지영 선생이 지은 <동학사> 한 권을 들고 전적지를 찾아다니며, 그 답의 실마리나마 찾아보려 한다. 우리를 되돌아보는 기행이 되었으면 한다. <기자말>
[이영천 기자]
동학혁명에서 가장 가 닿고 싶지 않은 지점이 두 차례의 공주 쟁탈전이다. 당시 나라를 구하겠다는 마음에 작게는 3만, 많게는 5만의 농민군이 모였다.
▲ 동학농민군상 동학혁명 1백주 년(1994)을 맞아 제작한 동학농민군상. 화승총을 들고 진격하는 결기 가득한 모습에 숙연해 진다. |
ⓒ 이영천(동학농민혁명기념관촬영) |
이때 나라는 나라가 아니었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어떤 경우든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일본군이 한반도에 진군하며 내세운 명분이 '소수의 자국민 보호'였다.
조선이란 나라는 그런 군대에 맞서 싸우기는커녕 오히려 군 지휘권을 서슴없이 넘겨줘 버렸다. 배(舟) 모양의 공주를 둘러싼, 높다란 산허리에 맞닥뜨린 수만 농민군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구와 청주로 남하하는 일본군은 신속하고 정확했다. 병참선과 통신선을 복구하며 빠르게 진군, 주변 동학군을 제압해 나간다. 세 갈래 길 중 공주로 진군한 일본군의 임무만 남은 셈이다. 여기에 조선군 최고의 악한이라는 이두황 등의 부대가 결합한다.
무기 성능이야, 젖먹이와 잔인한 야차(夜叉)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싸운다면 결과는 명약관화다. 여기에 무슨 작전이 있을 수 있겠으며, 지리적 요충지 점령이 뭐가 중요했겠는가.
그 결과로, 공주에서 벌어진 전쟁은 일방적인 살육전이었다. 청맹과니 조선 정부는 이를 알아채지 못했겠으나, 간악한 일제는 이 결과를 충분히 예견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들의 의도는 명확했다. 도발적으로 일으킨 청일전쟁 이면에 숨겨놓은 승리에 대한 자신감에 기반해, 동북아 세력을 재편하려는 전쟁. 여기서 가장 큰 피해자는 조선이었고 그 희생의 대부분이 동학혁명군이었다.
10월 23일(음) 능티 전투에서, 혁명군은 무기와 전술 차이를 실감한다. 막강한 화력을 앞세운 조·일 연합군의 기본 전술은 무기 사거리를 고려한 방어 위주 전술을 고수한다는 점이다.
▲ 관군의 소포 동학혁명 당시 조선 관군이 사용했다는 소포. 기동성이 좋아 유용한 무기였다. |
ⓒ 이영천(동학농민혁명기념관촬영) |
먼 거리는 대포를 쏘아 흩트리고 중간거리는 게틀링 기관총을 쏘아 저지하며, 비교적 가까운 거리는 무라다 소총으로 저격하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었다.
▲ 게틀링 기관총(회선포) 조일 연합군이 사용한 게틀링 기관총. 일명 회선포로 농민군에게 가장 위협적인 무기였다. |
ⓒ 이영천(동학농민혁명기념관촬영) |
지형마저 조·일 연합군이 높은 산정을 점령하고 있다. 이인과 효포에 주둔하는 동학혁명군 진지에 대포 공격을 가함으로써 그들의 방어선을 효과적으로 조절하고 있었다.
▲ 일본군 공주 전투에 참가한 일본군. 이들이 소지한 무라다 소총은 화승총에 비해 10배 이상 성능이 앞섰다. |
ⓒ 이영천(동학농민혁명기념관촬영) |
동학혁명군의 24일 공격도 봉화산을 목표로 하였다. 봉화산과 능티를 향해 대포로 포격을 가한다. 조·일 연합군의 틈이 벌어지자 30~40명씩 소부대로 나뉜 혁명군 수십 개 조가 사방에서 일제히 봉화산을 향해 공격해 들어간다. 조·일 연합군의 포탄이 수없이 떨어지고, 전투는 피아간 사상자만을 남기고 소강상태로 접어든다.
어느 날 동학군이 또 효포 뒷산을 쳐들어가던 중 돌연 좌우 산곡(山谷)에서 적군의 복병이 일어나며 총포를 난사하는 바람에 선두에서 나가던 군사 다수가 꺼꾸러짐에 따라 후군이 허물어 흩어져 크게 패하여 쫓긴다. 다시 무넘이를 넘어 노성 뒷산에 진을 친다. (동학사. 오지영. 문선각. 1973. p253)
1차 총공격, 곳곳에서 오른 수천 개 횃불
총공격의 핵심은 어디건 빈틈을 찾아 그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 또한 숲과 지형을 활용한 은폐·엄폐가 가능해야 하고, 만일의 경우 퇴로를 확보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래야 열악한 화력을 보완할 수 있다. 역시 봉화산 능티다. 이 고개를 점령하면 한달음에 충청감영으로 진격할 수 있다.
▲ 효포 공주의 주산 중 하나인 월성산(봉화산) 봉수대에서 바라 본 효포의 모습. 이 좁은 골에서 피아간 밀고 밀리는 전투가 몇차례나 이뤄졌다. |
ⓒ 공주시청 |
25일 새벽, 동학군이 점령한 효포에 조·일 연합군의 포탄이 무지막지하게 떨어진다. 초토화할 심산인지, 사나운 바윗돌 떨어지듯 하였다. 그만큼 봉화산은 피아간 전략적 요충지였다.
수일이 지난 후 다시 군사를 모아 무넘이 넘어 효포를 향하여 가는 도중 관병은 봉화산 고지에서 대포를 쏘았다. 동학군들은 총알을 무릅쓰고 고지를 향해 돌격했으나 마침내 쫓긴 바 되어 동편 숲 기슭에 몸을 숨기고 모여 있었다.
그때 돌연 뒤편에서 총소리가 일어나며 군사 수천 명이 일시에 전사하고 말았다. 이로부터 동학군은 패하여 남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이것은 적병이 난군 중에 섞여 들어와 혁명군을 속이려 꾸민 잔꾀에 속은 바 되었다. (앞의 책. p253~254)
동학군의 화력이 점점 소진되어 간다. 얼마 남지 않은 포탄에 서양 총 실탄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조총과 화승총 실탄마저 여유가 있는 건 아니다. 뭔가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장기전으로 간다면 화력이 열세한 동학군의 패배는 정해진 순서다.
▲ 우금티 산정 우금티 고개 산정에 세워진 이정표. 봉화대가 7km이고 두리봉으로 가는 길을 가리키고 있다. |
ⓒ 이영천 |
이에 동학군은 모든 전력을 쏟아부어 사력으로 싸워보고자 한다. 봉화가 오르자 새재와 주미산에서 공격으로 화답한다. 동학혁명군의 총공격이다.
조·일 연합군도 대포와 기관총, 소총을 적절히 섞어 효과적으로 방어선을 구축한다. 봉화산과 우금티에서 밀리면 금학동과 성황당이, 물안주골에서 튼실한 2차 방어선을 구축한다. 우세한 화력으로 사거리를 조절하며 동학혁명군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격퇴하고 있었다.
조정과 권력은 썩을 대로 썩었으나, 그들이 쏘는 총알과 포탄은 정확히 동학혁명군의 가슴을 꿰뚫고 있었다. 총알이나 포탄마저 썩은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동학혁명군은 열악한 화력 차이를 좀처럼 좁힐 수가 없었다.
사상자 다수 발생... 논산으로 후퇴
동학군은 할 수 없이 헤어져 논산 방면으로 퇴각하고 말았다. 또 봉황산에 들어간 한 부대의 군대도 여러 날을 두고 서로 싸웠으나 양군은 많은 사상자만 내고 …(중략)… 다시 남하해서 논산 본진으로 돌아왔다. (앞의 책. p254)
군량미를 풀어 배불리 먹이고, 옷감을 확보해 추위를 막을 수 있도록 대비한다. 또한 부족한 화력을 만회하기 위해 각 고을을 샅샅이 뒤져 무기란 무기는 모두 모아들인다. 그러함에도 화력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며칠을 준비하면서 휴식만 취할 뿐이지, 뭔가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다.
이즈음 김개남 부대는 금산에 주둔하고 있었다. 북접의 한 부대가 유구에서 공주 북쪽을 위협하고 있어 김개남이 청주를 공략한다면 조·일 연합군 전력을 얼마간 분산시킬 수 있을 듯 보였다.
▲ 월성산 봉수대 봉화대가 있는 곳에서 공주 시가지가 지척이다. |
ⓒ 공주시청 |
이런 사정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조·일 연합군은 방어력을 동학혁명군 전력이 가장 강한 공주로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만큼 공주 전투는 버겁고 힘겨웠다. 청주를 지키는 영병(營兵)의 군세도 만만치 않게 강했다. 따라서 김개남 부대 방어는 청주로 진군한 일본군에 약간의 조선군이면 충분하다고 여기는듯하였다.
이런 속사정에 전봉준은 가슴이 아팠으나,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다. 이때 충청도의 옥천·회덕·영동·해미·유구·예산·덕산에서 동학군이 거세게 들고일어난다. 이에 각 지역 관군과 교도 중대 및 한양에서 파견된 토벌대가 진압에 애를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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