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죽게 한 남자의 사연... 감독의 섬세한 터치 빛났다

조영준 2024. 7. 1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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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376]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누자바르> 외

[조영준 기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누자바르>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01.
<누자바르>
한국 / 2023 / 극영화
감독 : 득양

"내가 내 아들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카자흐스탄 사람인 누자바르는 한국에 정착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삶을 파고든 죄책감 하나가 남은 생의 시간을 좀먹듯 그를 괴롭힌다. 자신의 잘못으로 세상을 떠나보내야 했던 아들에 대한 슬픔과 그 일로 인해 용서받지 못할 것 같은 다른 가족들에 대한 죄업 때문이다. 어느 날 그런 그의 앞에 부두 작업자들로부터 쫓기던 한 소년(김성현 분)을 만나게 된다. 정박된 배에서 고철을 뜯어 훔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그를 만나게 되던 날, 누자바르는 오래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일 하나를 해내고자 한다.

영화 <누자바르>는 어린 아들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카자흐스탄인 누자바르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을 연출한 득양은 TV 드라마는 물론, 다양한 웹드라마를 통해 이름을 알리고 있는 배우 김성현의 또 다른 활동명으로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작품 전체의 미장센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환기를 불러일으키는 영화의 분위기는 불안한 인물의 심리를 반영하면서도 서로를 구원의 자리로 이끄는 구도자적 이미지를 잘 이끌어내고 있다.

이야기는 소년을 만난 누자바르가 모종의 거래를 제안하면서부터 나아가기 시작한다. 자신이 하루동안 소년이 고철을 줍는 일을 도와주는 대신 밤이 되면 부탁 하나를 들어달라는 것이다. 그가 부두의 작업반장으로부터 훔친 큰돈도 함께 건넨다. 그렇게 시작된 동행을 통해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많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 각자가 어떤 상황 속에 놓여 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감이다.

다만 영화는 두 사람이 서로 기댈 수 있는 존재로까지 나아가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 듯 보인다. 앞서 잠깐 언급했던 구원의 의미도 서로의 생을 건져 올린다는 표면적인 의미와는 다른 구석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누자바르라는 인물이 지니고 있는 몇몇 지점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죽음을 결심한 인물이다. 하지만 오래 죽지 못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없어, 소년과의 거래를 통해 그의 손을 빌리고자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그의 고철을 온몸에 칭칭 감아 그 무게로 절벽에서 뛰어내리려는 모습도 보인다. 멀리 두고 온 아내와 다른 가족들의 잔상으로부터도 멀어지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있어 '구원'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것일까? 이 물음이야말로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라고 생각한다. 어떤 단어들은 잠깐 비틀어진 상태의 의미가 의미를 배반하고 훼손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 작품에서의 구도(求道)적 의미가 붙잡는 것이 아니라 떠나보내주는 것이라고 믿게 되는 이유다. 이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홀로 남겨지는 소년의 모습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오랫동안 아들의 곁으로 향하지 못한 한 남자를 편안히 보내주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구속된 거래는 아니었으나 두 사람 사이의 약속이 완성되는 것이 이 영화가 나아가고자 했던 방향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 <누자바르>가 보여주고자 하는 자리는 꽤 명확하다. 그래서일까. 영화가 끝난 뒤에 오프닝에 놓여있던 내래이션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어떤 잘못은 누군가가 전하는 속죄의 말로도 씻을 수 없고, 과거의 내가 만들어왔던 어떤 선행으로도 감싸낼 수 없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당신이 원망하지 않아서 내가 원망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어쩌면 누자바르를 가장 힘겹게 만들지 않았을까. 소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뱉는 카자흐스탄어의 말이 오래 귓가를 맴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운전연수>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02.
<운전연수>
한국 / 2024 / 극영화
감독 : 황여경

"너 설마 연수 한 번도 안 받고 나왔어?"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나고 싶을 때 내밀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핑계는 무엇일까? 그런 방법이 과연 있기나 한 걸까. 영화 <운전연수>의 희수(전세현 분)는 운전연수를 이유로 전 남자친구인 영훈(김건우 분)에게 연락을 한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면허를 땄지만 아직 제대로 된 연수는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그녀다. 운전석에 앉아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생각보다 더 험난하기만 하지만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두 사람은 6년의 만남 뒤에 헤어진 지 3개월이 된 연인, 이제는 남남이다.

희수의 마음과 달리 영훈이 약속 장소로 나온 이유는 정확하고 단순하다. 헤어지기 전에 빌렸던 그녀의 노트북을 되돌려주려는 것. 단호하고 차가운 그의 태도에 희수가 밝고 상냥한 태도로 애를 써보지만 영훈은 그녀의 조수석에 앉을 생각이 조금도 없다. 운전 연수는 다른 사람에게 배우라며 차에서 내리려던 찰나, 뒤에서 클락션을 울리는 다른 자동차 때문에 일단 출발을 하게 되는 두 사람. 이후 두 사람의 짧은 동행은 모자란 희수의 운전 실력만큼이나 점점 더 위태로워진다.

영화 <운전연수>는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의 속성을 연결해 이별 후에 남겨지는 이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하는 작품이다. 자꾸만 잘못된 길로 접어들게 되는 초보운전 차량과 제자리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인물의 모습이 한 자리에서 포개어진다. 물론 그 자리에 주저앉히기 위함은 아니다.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장롱면허가 그렇듯, 쉽게 정리되지 않는 마음도 하나의 계기를 통해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재회의 목적이 담긴 희수의 변명이자 핑계인 운전연수는 이야기 속에서 그녀의 상황에 대한 메타포로 작용한다. 연인과 이별했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채 되지 않은 마음은 아직 제대로 된 연습이 되지 않아 불안하기만 한 운전 실력과 유사한 점이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두 지점이 가진 각각의 유약한 측면을 극복하기 방안으로 선택되는 것이 영훈이라는 인물이다. 하지만 극의 초반부에서 이미 거절의 뜻을 나타낸 바, 이야기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운전의 자리에 자동차의 꽁무니에 붙은 두 개의 초보운전 스티커, 불안하게 떨려오는 핸들 위의 두 손과 같은 요소들이 배치된다면, 두 사람의 관계 사이에는 영훈의 핸드폰 너머로 힐끔 보이는 다른 여자와의 하트 이모티콘과 영훈과의 또 다른 다툼이 놓인다. 이미 균열이 가고 믿음을 상실한 두 장면의 교차점이 되는 것이 바로 갓길의 도랑과 외진 도로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자동차다. 결국 서로의 탓을 하게 되는 희수와 영훈의 관계는 이 자리에서 완전히 끝나 버리고 만다.

누군가와의 관계를 끊어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은 단단해진 것 같으면서도 때때로 과거 어느 시점으로 끌려가게 되는 것도 사실. 운전을 오래 해왔던 사람도 사고의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이별 후의 마음도 정확히 그렇다. 헤어지자마자 다른 연인을 재빨리 찾아낸 영훈 또한 마찬가지다. 이별 후 방치된 자신을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 없어 누군가의 품을 끌어안게 되었음이 분명하다. 되돌려 받은 노트북 속에서 발견되는 아직 정리되지 못한 추억들이 이를 증명한다.

희수는 이제 그 기억을 발판 삼아 내일로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이를 뒤로 한 채 힘차게 돌아서는 그의 내일은 분명히 오늘과 다를 것이다. 가끔은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해 과거의 인연에 다시 기대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번 이겨내 본 일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만큼의 단단한 딱지가 생기는 법이다. 떠나가 버린 사람과 불러도 오지 않는 견인차. 처음이었던 낯선 상황도 혼자서 잘 이겨냈기에 이제 나아가는 그녀를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뭉클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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