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트 보려고 고개 돌린 트럼프, 이게 그를 기적적으로 살렸다

강태화, 김한솔 2024. 7. 1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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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암살 미수범은 13일(현지시간) 유세가 열린 펜실베이니아주에 거주하는 20세 백인 남성 토마스 매튜 크룩스인 것으로 잠정 확인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의 버틀러 팜쇼에서 열린 선거 유세 도중 총격을 받은 뒤 경호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유세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EPA=연합뉴스

저격범은 연단에서 불과 100여m 떨어진 건물에서 조준 사격을 했지만, 주변 곳곳에 배치돼 있던 비밀경호국 요원들은 암살 미수범이 수발의 사격을 한 뒤에야 대응 사격을 했다. 수사 당국은 이번 사건이 단독 범행(lone wolf·외로운 늑대)이 아닐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철통’ 보안 검사하는 데 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연설장엔 금속 탐지기 등 철저한 보안 검사를 통과한 인원만 입장할 수 있다. 암살 미수범이 유세장 내부가 아닌 인근 건물을 범행의 장소로 택한 이유다.

다만 비밀경호국은 유세장 주변에도 요원들과 저격수들을 배치한다. 이날 비밀보안국과 연방수사국(FBI), 주경찰 등이 범인이 인근 건물에 올라가 전직 대통령이자 유력 대선 후보를 향해 사격하는 걸 막지 못한 건 '보안 실패'로 규정될 가능성이 크다.

1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의 버틀러 팜 쇼에서 열린 선거 행사에서 발생한 총격 사고로 부상을 입은 사람이 긴급 호송되고 있다. 이날 사고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른쪽 귀 부분에 총상을 입었고, 지지자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입었다. AFP=연합뉴스


수사 당국은 이날 저녁 진행한 브리핑에서 “(범인이) 5발을 사격했다는 것은 놀랍다”며 사전에 암살 미수를 막지 못한 점을 일부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현장에 있던 비밀경호국과 경찰이 즉시 대응한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며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보안 실패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기자들의 질문이 잇따르자 브리핑에 참석한 FBI 관계자는 “FBI는 (보안을 담당한 것이 아니라) 보안을 담당한 비밀경호국의 보안 조치를 조사하고 있는 것”이라며 “관련 사안은 비밀경호국에 문의해달라”고 답했다. 비밀경호국 관계자는 해당 브리핑에 참석하지 않았다.


민간 보급용 소총 든 저격수?

수사 당국은 암살범이 정확히 어떤 총기를 사용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미국 매체들은 암살범은 군용 M-16의 민간용 모델인 AR-15 계열의 소총을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소총은 약 800달러에 살 수 있는 총기로, 미국 전역에 2000만정 이상 보급돼 있다. 이날 범인을 즉각 사살하는데 경호팀이 사용한 전문 스나이퍼용 총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열린 선거 유세 행사에서 연설하던 중 총격이 발생하자 경찰 저격수가 대응 사격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범인은 이 소총으로 100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사격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오른쪽 귀를 명중시켰다. NBC 방송과 인터뷰한 목격자 버네사 애셔는 “트럼프가 뒤편 차트를 보기 위해 머리를 갑자기 돌리지 않았다면 총알이 머리에 맞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첫번째 총성 직후 오른쪽 귀를 감싸쥐며 단상 아래로 몸을 피했다. 뉴욕타임스 사진기자가 포착한 사진엔 총알이 트럼프의 바로 옆을 지나가는 장면도 담겼다. 트럼프의 저격 실패 후 이어진 4번의 추가 사격으로 단상 인근에 있던 남성 지지자 1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수사 당국은 이날 브리핑에서 “더 많은 위협이 있다는 근거는 없지만, 이번 사건을 단독 범행이라고 결론 내리기에는 너무 이르다”며 암살 미수범의 배후가 있을 가능성도 열어뒀다.


커지는 음모론…바이든의 암시? 제보 무시?

수사 당국은 이번 수사가 “몇주에서 몇달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각종 의혹과 음모론이 퍼지고 있다. 특히 유세장 밖에 있던 그레그 스미스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연설 시작 후 5분쯤 뒤에 총을 든 남성이 건물로 기어 올라가는 것을 봤고 주변 경찰들에게 이를 알렸지만 경찰이 무시했다”고 주장하면서 당국이 의도적으로 저격을 방조한 게 아니냐는 음모론에 불이 붙었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총상을 입은 뒤 비밀경호국 요원들에게 둘러싸여 현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의 강성 지지자들은 닷새전인 지난 8일 자진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이 고액 기부자들과의 대화 과정에서 “트럼프를 과녁의 중심에 넣자(put Trump in a bullseye)”고 말한 사실을 부각하며 바이든 측의 암살 배후설까지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정치권으로까지 옮겨붙었다. 트럼프의 러닝메이트 후보로 거론되는 J.D. 밴스 연방 상원의원(오하이오)은 “오늘 일은 개별 사건이 아니다”라며 “이러한 레토릭(rhetoric·수사)이 이번 트럼프 대통령 암살 시도를 직접 유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이크 콜린스 하원의원(조지아)은 더 나아가 “85일 전에도 민주당은 트럼프에 대한 비밀경호국 보호 박탈 법안을 제출했다”며 “즉시 바이든을 암살 선동 혐의로 기소해야 한다”고 했다.


암살범은 20세 공화당원?

수사 당국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는 “유전자 분석 등 추가 절차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사망한 암살 미수범의 신원 공개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언론을 통해 범인의 실명이 먼저 공개되자 FBI는 성명을 내고 “총격범은 펜실베이니아 베델 파크에 거주하는 토마스 매튜 크룩스”라고 확인했다.

특히 펜실베이니아 유권자 기록에는 총격범과 같은 주소와 생년월일을 가진 인물이 공화당원 명부에 기재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사살된 크룩스가 당원 명부에 기재된 사람과 동일인인지 등에 대해 수사 당국은 추가 확인을 하지 않고 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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