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박근혜, 트럼프까지…정치인 악마화가 낳은 '피습 포비아'

이근평 2024. 7. 1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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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공화당 대선 후보 유세 도중 총기 습격을 당하면서 최근 잇따라 벌어지는 정치인 대상 테러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득세하고 있는 극단의 정치가 상대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면서 이 같은 사태를 낳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3일 오후(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유세를 벌이던 중 유세장 주변에서 여러 발의 총격이 발생하면서 유세가 중단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유세를 하던 중 총소리를 듣자 곧바로 몸을 연단 밑으로 숨겼고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무대에서 급히 대피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몸을 피하면서 지지자들에게 주먹을 들어 보이며 건재함을과시 했다. 유튜브 캡처=뉴스1


최근 충격을 안겨준 해외 정치인 피습 사례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에 대한 총격 사건이 우선 꼽힌다. 아베 전 총리는 2022년 7월 8일 나라(奈良)현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大和西大寺) 선거 유세 중 전 자위대원 야마가미 데쓰야(山上徹也)가 개조한 사제 총을 맞고 쓰러졌다.

야마가미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신흥종교에 빠져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며 “아베 전 총리가 이 종교에 연루돼있다는 의혹을 들었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통산 8년 8개월, 역대 최장 기간 총리를 지낸 전 국가 지도자가 종교적 이유로 원한을 품은 총격범에게 살해됐다는 사실은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큰 파장이 일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도 테러에 희생될 뻔했다. 아베 전 총리 사망 후 불과 9개월 만인 지난해 4월 15일 기시다 총리가 참석한 와카야마(和歌山)현 중의원 보궐선거 유세 현장에 폭발물이 터졌다. 기무라 류지(木村隆二)라는 20대 남성이 기시다 총리에게 던진 폭발물을 경호원이 쳐내면서 기시다 총리는 화를 면할 수 있었다. 기무라는 묵비권을 행사했지만 범행 이전에 기시다 총리와 일본의 선거 제도를 비판한 것으로 드러나 정치 혐오가 범행 동기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2022년 7월 8일 일본 나라현에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피격을 당하기 직전 참의원 유세 가두연설하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연설 도중 괴한에게 두 차례 총격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교도=연합뉴스]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최근 몇 년 새 전·현직 정상들을 겨냥한 테러가 산발적으로 벌어졌다.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은 2021년 7월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사저에 침입한 괴한들에게 총에 맞아 숨졌다. 사건 직후 40여 명이 체포됐지만 암살 배후 등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아르헨티나에선 2022년 9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이자 당시 현직 부통령에 대한 총격 시도가 있었다. 30대 남성이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의 이마에 권총을 겨눴지만 불발로 끝났다.

같은 해 11월에는 임란 칸 파키스탄 전 총리가 유세 중 다리에 총상을 입었고,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 역시 지난 5월 수도 브라티슬라바 외곽 마을에서 지지자들을 만나던 중 가슴과 복부에 세 발의 총탄을 맞아 중상을 입었다. 지난달에는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가 코펜하겐 광장에서 선거 운동 중 한 남성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가벼운 부상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정치인을 노린 공격은 한국에서도 수차례 일어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했던 '커터칼 습격'이 대표적이다. 박 전 대통령은 2006년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신촌에서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후보 지원유세에 나섰다가 커터칼로 얼굴에 상해를 입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1월 2일 오전 부산 강서구 가덕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뒤 왼쪽 목 부위 피습을 당해 바닥에 누워 병원 호송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우 지난 1월 부산 강서구 가덕도에서 습격범에게 20∼30cm 길이의 흉기로 목 부위를 찔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3주 후엔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 신사동의 한 건물에서 중학생이 휘두른 돌덩이에 15차례 가격 당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2022년 3·9 대선을 앞두고 서울 신촌에서 당시 이재명 대선 후보 지원 유세 중 유튜버가 내리친 둔기에 머리를 맞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정치인 피습을 놓고 상대를 ‘악마화’하는 정치 문화의 결과물이라고 진단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전세계적으로 공동체적 메시지가 사라지고 자국 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라며 “정치권이 상대에 대한 혐오와 ‘우리끼리 문화’에 기댄 결과로도 해석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유럽을 강타한 극우주의도 비슷한 맥락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며 “정치권이 공존·공영의 가치를 회복하지 못하면 이 같은 테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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