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킬러'의 개를 죽인 불쌍한 악당의 최후
[양형석 기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장르가 있지만 많은 남자 관객들은 화려한 스턴트 연출과 물량공세로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액션장르를 좋아한다. 특히 착하고 정의로운 성격을 가진 주인공 캐릭터와 나쁜 목적을 가지고 강력한 힘과 독특한 재주, 똑똑한 두뇌 등을 이용해 주인공과 세상을 곤경에 빠트리는 악당 캐릭터의 대결은 관객들이 액션영화를 즐기는 이유 중 하나다.
물론 지나치게 강한 빌런 캐릭터가 주인공은 물론이고 관객들까지 난처하게 만드는 영화도 있다. 등장하자마자 선역 캐릭터들 중 최강의 파워를 자랑하던 헐크와 토르를 가지고 놀았고 인피니티 스톤을 모두 모아 인류의 절반을 소멸시킨 <어벤저스>의 타노스가 대표적이다. 힘으로만 보면 크게 대단할 게 없지만 특유의 기괴한 분위기와 예측할 수 없는 행동으로 배트맨과 관객을 난감하게 만드는 <다크 나이트>의 조커도 빼놓을 수 없다.
▲ <존 윅>은 제작비의 4배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침체에 빠진 키아누 리브스를 부활시켰다. |
ⓒ (유)조이앤시네마 |
압도적 힘의 주인공이 나오는 액션영화
브루스 윌리스나 성룡의 영화를 보면 악당을 물리치고 사건을 해결한 후 주인공의 옷이 찢어지고 완전히 녹초가 된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그만큼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했다는 뜻이다. 만약 사건이 끝난 시점에서 또 다른 악당이 등장한다면 주인공은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당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영화가 끝날 무렵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전히 힘이 넘치는 주인공이 나오는 액션영화들도 있다.
영화 속에서 유난히 맞지 않는 액션연기를 한다고 해서 1990년대 브루스 윌리스와 자주 비교되곤 했던 배우가 바로 <언더시즈>의 스티븐 시걸이었다. 실제로 많은 무술을 연마했고 LA에서 도장을 열기도 했던 시걸은 대표작 <언더시즈>를 포함한 여러 작품에서 좀처럼 상대에게 맞지 않는 무적의 액션연기를 선보였다. 물론 2003년 한국영화 <클레멘타인>에서는 (딸의 응원을 받은) 이동준의 뒤돌려차기에 맞아 패배한다.
프랑스 여행을 떠났다가 범죄조직에게 납치된 딸을 구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테이큰> 역시 주인공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돋보이는 액션영화다. 전직특수요원 출신으로 수많은 작전에 투입된 경험이 있는 브라이언(리암 니슨 분)은 거침없고 간결한 행동을 통해 일사천리로 딸을 구해낸다. 특히 딸을 칼로 위협하는 중동갑부를 망설임 없이 총으로 쏴 죽이는 장면은 여느 액션영화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대담한 행동이었다.
2010년 왕년의 액션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해 만들었던 실베스타 스탤론 감독의 <익스펜더블>은 엄청난 물량공세와 화력을 통해 빌런들을 불쌍하게 만드는 액션 영화였다. <익스펜더블>에서는 실베스타 스탤론을 비롯해 제이슨 스태덤,이연걸, 돌프 룬드그렌 같은 액션 배우들과 UFC 챔피언 출신 랜디 커투어 등이 엄청난 화력공세를 통해 적들을 섬멸시킨다. 2년 후 개봉한 속편에서는 '터미네이터' 아놀드 슈왈제네거까지 액션에 참여했다.
한국영화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캐릭터는 역시 <범죄도시> 시리즈의 마석도 형사(마동석 분)다. 마석도는 총기사용이 금지된 한국에서 맨손격투 만큼은 그야말로 상대를 찾기 힘든 명실상부한 세계관 최강자다. 물론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빌런들의 전투력이 점점 강해졌지만 마석도 역시 그에 맞춰 점점 강한 전투력을 보여준다. 특히 올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4편에서는 처음으로 니킥을 사용해 백창기(김무열 분)를 한 방에 기절시켰다.
▲ 키아누 리브스는 4편까지 제작된 <존 윅> 오리지널 시리즈에 한 편도 빠짐없이 출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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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까지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배우로 군림하던 키아누 리브스는 2008년 <지구가 멈추는 날>을 끝으로 출연하는 영화마다 흥행과 비평에서 실패를 거듭하면서 슬럼프에 빠졌다. 따라서 리브스가 2014년 <매트릭스>와 <닌자 어쌔신> 등의 스턴트 코디네이터를 맡았던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이 연출한 B급 액션영화 <존 윅>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리브스의 선택에 실망하는 관객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존 윅>은 슬럼프에 빠졌던 리브스를 부활시킨 탁월한 선택이 됐다. '아픈 아내에게 선물 받은 개가 죽고 차를 도난 당한 레전드 킬러의 학살극'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존 윅>은 단순한 스토리에 화려한 액션과 복수의 쾌감을 극대화한 연출로 많은 관객들을 만족시켰다. 실제로 2000만 달러의 많지 않은 제작비로 만든 <존 윅>은 8600만 달러의 쏠쏠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존 윅>은 제작비의 4배가 넘는 흥행으로 키아누 리브스를 부활시킨 작품이지만 국내 관객들에게 인정 받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실제로 2015년1월에 개봉한 <존 윅>은 전국 11만 관객으로 흥행에 실패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영화의 매력이 국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면서 속편 <존 윅:리로드>가 27만, 3편 <존 윅3: 파라벨롬>이 100만, 4편 <존 윅4>가 192만으로 관객 숫자가 점점 증가했다.
<존 윅>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런닝타임 내내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권총과 주짓수가 조화된 화려한 액션이다. <존 윅>은 <이퀼리브리엄> 같은 미적으로 멋있는 액션보다 현실적이고 절제된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1980~90년대 홍콩의 일부 액션영화에서 아무리 쏴도 총알이 떨어지지 않는 장면들로 관객들의 눈총을 산 것과 달리 <존 윅>에서는 수시로 탄창을 갈아주는 장면이 등장하면서 '군필관객'들을 만족시켰다.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이 밝힌 바에 따르면 <존 윅>에서는 존 윅이 무려 83명을 죽였고 악당들이 죽인 사람까지 합치면 사망자수가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사실 '인간과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하면 <존 윅>은 최악의 영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존 윅>은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기 위해 만든 가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각자의 몫이지만 <존 윅>은 이미 4편을 합쳐 10억 달러 흥행을 기록한 세계적인 인기시리즈다.
▲ 윌렘 대포가 연기한 마커스는 주로 건너편 건물 옥상에서 저격을 통해 남몰래 존을 돕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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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팬더>의 타이렁, <캐리비안의 해적:낯선 조류>의 검은 수염으로 유명한 이언 맥셰인은 <존 윅>에서 킬러들의 휴식공간 컨티넨탈 호텔의 지배인이자 존 윅의 조력자 윈스턴을 연기했다. 윈스턴은 기본적으로 친절하고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지만 호텔의 규정을 어긴 상대에게는 자비가 없다. 실제로 윈스턴은 '호텔 내에서는 킬러들끼리 공격을 해선 안 된다'는 규정을 어긴 여성킬러 퍼킨스(에이드리언 팰리키 분)를 가차없이 죽이기도 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그린 고블린을 연기했던 베테랑 배우 윌렘 대포는 <존 윅>에서 아내의 장례식장에 찾아와 존을 위로해주는 절친한 동료 마커스 역을 맡았다. 마커스는 존에 대한 살인청부를 받은 후에도 저격소총을 이용해 원거리에서 존을 도와주며 확실한 조력자로 행동했다. 하지만 마커스는 존을 도와준 사실을 알게 된 러시아 마피아 보스 비고(미카엘 니크바스트 분)에게 붙잡혀 최후까지 저항하다 비고의 총에 맞고 숨을 거둔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액션영화를 보면 "저 많은 시체들은 다 누가 처리하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존 윅>에서는 데이비드 패트릭 켈리가 연기한 시체 및 살해현장 처리업자 찰리가 등장해 그 의문을 해결해준다. 그야말로 짧고 굵게 등장하는 신 스틸러. 지난 1월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된 한국드라마 <킬러들의 쇼핑몰>에서도 농구선수 출신 배우 박광재가 비슷한 일을 처리하는 캐릭터를 연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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