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 현관에 쌓여가는 우유,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조영준 2024. 7. 14.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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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375]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버섯이 피어날 때>

[조영준 기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버섯이 피어날 때>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이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어린아이들의 마음을 담아내는 작품들을 마주할 때 약간의 경외심 같은 느낌을 경험한다. 너무 멀리 지나와버린 탓일까 이제는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는 때의 이야기가 하나의 작품 속에 오롯이 담겨있어서다. 분명히 지나온 시간이지만 마치 어딘가에 두고 온 분실물 같은 기억. 단편적인 사건의 장면도 이제는 몇 장 남지 않았으니, 그 시절의 기분이나 마음, 생각 같은 하나의 정경을 벗어난 부분은 더욱 흐릿하기만 하다. 그만큼 어떤 시절의 내면을 다시 불러오는 일은 어렵다. 단순히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다른 누군가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버섯이 피어날 때>는 우리가 잊고 지냈던 마음을 다시 상기시키게 하는 또 하나의 소중한 작품이다. 자신의 세상을 구축하고 싶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기도 한 단순하고도 복잡한 아이의 마음이 잘 그려지고 있다. 우리가 지나온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부분도 작품의 전반적인 환기를 균일하게 유지하도록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여기에는 극 중 중심인물인 현서(최자운 분)가 단순히 이야기 속에 놓여 있는 어린아이로만 기능하지 않도록 만드는 부분도 있다.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이 들여다 보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

02.
현서는 혼자 노는 것도 좋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하다.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지만 여러모로 눈치가 보이는 순간이 많다. 부모님은 바이올린을 배우는 누나 민주(곽세영 분)에게 집중하느라 자신에게 소홀한 것 같다. 그 관심을 자신도 받고 싶지만 누나처럼 뭔가 배우게 해달라고 하기에는 부담이 될 것 같다. 누나는 항상 짜증만 낸다. 같이 놀자는 말에도, 바이올린 연주를 구경하고 싶다는 말에도 자꾸 밀어내기만 한다.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종종 눈치를 본다. 친구는 꼭 자신이 아니더라도 함께 시간을 보낼 형이 곁에 있어서다.

이처럼 영화가 중심인물인 현서를 다루고 있는 방식이 흥미롭다. 그는 어느 곳에서도 주변인으로 머문다. 어리지만 눈치가 늘 수밖에 없는 것도, 부당한 요구에도 일단 동참하고 보는 것도 모두 그래서다. 아직 어린 아이다. 행동에 대한 선악을 구분하기 전에 외부의 요구를 수용하는 일은 성정이 나빠서라고 보기는 힘들다. 친구 형과 함께 연필밥을 물에 적신 휴지로 뭉쳐 옥상 위에서 밑으로 던지던 날에 느끼던 죄책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버섯이 피어날 때>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03.
그런 현서의 주변에는 그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하나 더 있다. 상황은 완전히 다르지만 어떤 구성원으로도 소속되지 못하고 늘 혼자인 인물. 매일 아파트 입구의 벤치에 앉아 있던 옆집 할아버지(박대규 분)다. 두 인물이 직접적으로 교류하는 계기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현서는 그런 그의 부재를 제일 먼저 알아차리는 존재가 된다. 물론 이 설정에는 어른들이 잊고 살아가는 자리를 아이가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경종을 울리기 위한 의도도 깔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후에 드러나는 할아버지의 고독사는 단순히 극 중 한 인물이 퇴장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지독한 개인주의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라서다.

실제로 할아버지 집 현관문의 배달 가방 속에 하루하루 쌓여가는 우유와 우편함 속에 늘어만 가는 수신되지 못한 우편물을 발견하는 것은 아이인 현서가 유일하다. 어른들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알아차리고도 모른 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이웃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이 있다. 이 장면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이 옥상에서 위험한 물건을 던질 때도 동네 어른들은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는다.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상황에서 홀로 어떤 문제를 감지한 아이가 우연에 의한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조금씩 새어 나오는 악취와 아파트 뒷마당의 낯선 아저씨다.

집집마다 놓인 가정용 전화기나 컴퓨터의 큰 모니터, 가정통신문의 종이 재질과 오래된 슬라이드폰 등 영화 속 곳곳에서 과거의 한 시점을 연상하게 하는 물건들이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가 드러내고자 하는 시대상은 분명히 지금보다 과거다. 우리가 아직 '이웃사촌'이라는 단어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고, 이웃과 직접적인 교류를 가지며 살아가던 시기다. 여기 위에 지금 우리의 모습이 놓인다.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어떤 상황이 와도 먼저 손 내밀지 않는. 그리 멀지 않지만, 한 자리에 놓인 두 시점의 대비는 생각보다 훨씬 더 극명하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버섯이 피어날 때>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04.
어느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이들은 모두 불행한 결과를 얻는다. 홀로 머물던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어른들로부터 멀어져 있던 현서는 잘못된 행동을 이제 자신이 주도해 벌이곤 한다. 뒷마당의 아저씨를 오해하는 일도 같은 맥락 위에 있다. 매일 연습하고 학원을 가는 일로 본인은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지만 그나마 제대로 된 걸음을 걷고 있는 것은 민주뿐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변의 애정 어린 관심이 필요한 법이다. 그것이 우리를 키우고 돌본다.

낯선 아저씨가 아파트 뒷마당에 심고 있던 작은 나무토막 위에는 이제 이름 모를 버섯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현서가 어딘가로부터 새어 나오던 악취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던 그 자리다.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던 자리이기도 하다. 현서와 할아버지가 존재했던 공간과도 닮아 있다. 그런 자리에서 무언가 새 생명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은 내일에 대한 어떤 희망과 기대를 갖게 만든다. 지금 현서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와 공간의 어른은 물론, 다음 세대의 어른이 될 현서와 같은 아이들의 시대까지도 모두 말이다.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이 충만한 과거의 시간 속으로부터 성장하고 나아왔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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