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시대의 렘브란트’…‘백남준의 조수’ 빌 비올라 영면, 73세

권근영 2024. 7. 1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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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서울에서 만난 빌 비올라는 "인생은 강과도 같기에 크든 작든 뭔가를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탄생은 시작이 아니며, 죽음이 끝도 아닙니다.” " ‘비디오 시대의 렘브란트’ 빌 비올라는 생전에 장자의 이 말을 자주 인용했다. 탄생과 죽음, 삶의 이면을 비디오로 그려온 ‘영상 시인’, 빌 비올라가 12일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의 자택에서 영면했다. 73세. 그의 아내이자 스튜디오 디렉터인 키라 페로프는 사인을 “조기 발병한 알츠하이머의 합병증”이라고 밝혔다.

비올라는 1974년 백남준이 뉴욕주 시러큐스의 에버슨 미술관 전관에서 ‘TV부처’‘TV정원’을 선보일 때 조수로 일했다. 백남준이 비디오라는 새로운 매체가 우리를 즐겁게 해 주고 예술적 영감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줬다면, 비올라는 비디오를 통해 미술에 시간성을 부여하며 삶과 죽음 같은 근원적 질문에 몰두했다.

빌 비올라 '순교자들' 중 '물' [사진 부산시립미술관]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대표 작가로 참여했고,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에 ‘순교자들’(2014)과 ‘마리아’(2016)를 영구 설치했다. 거꾸로 매달린 채 물ㆍ불ㆍ모래ㆍ바람을 사정없이 맞으며 조용히 견디는 사람의 모습을 느린 화면으로 보여준 그의 영상에서 르네상스ㆍ바로크 종교화가 줄 법한 감동을 맛본 이들은 비올라를 ‘하이테크 카라바조’라고도 평가했다. 2019년 런던 왕립 아카데미는 미켈란젤로의 작품들과 함께 그의 영상을 전시했다.

시작은 6살 때 호수에서 익사할 뻔한 경험. 삼촌에게 구조되기 전까지 수면 아래에서 본 세상이 가장 아름다웠노라고, "인생에는 보이는 것 외에 무언가가 더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그는 돌아봤다. 그의 영상 속 인물들이 쏟아지는 물이나 수막을 통과하면서 내면의 변화를 느끼는 것과도 겹쳐진다.

2011년 서울에서 만난 그는 “고통을 삶의 필수 요건으로 긍정하고, 인내에서 희망을 찾는다”고 했다.
" “인생은 강과도 같습니다. 작은 개울에서 시작해 여러 물줄기와 이어지고, 때론 폭포도 되죠. 인류는 이 물줄기에 들어왔다가 언젠가는 사라져요. 그러니 크든 작든 뭔가를 남겨야 합니다. 예술도 기술도 그래서 필요해요.” "

빌 비올라 '우리는 날마다 나아간다' 중 '행로' [사진 부산시립미술관]


2020년 부산시립미술관 개인전에서는 사람들이 줄지어 숲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 설치 '우리는 날마다 나아간다'가 소개됐다. 영상 속 사람들처럼, 그도 이렇게 피안으로 떠났을까. 오는 11월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그의 전시가 열린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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