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글러브' 6만개 선물에도…日야구계 웃지 못하는 이유 [줌인도쿄]
■ 줌인도쿄
「 가깝고도 먼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고요? 아는 것 같지만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일본의 이야기,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들이 현장에서 만나본 다양한 일본의 이모저모를 독자 여러분들께 전해드립니다.
」
일본엔 여름하면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바로 '고시엔(甲子園)'으로 불리는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대회 이야기입니다. 올해도 무더위와 함께 일본 전국 각지에서 지방 예선대회가 시작되면서 고시엔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는데요. 작년엔 명문대인 게이오대 부속 학교인 게이오 고등학교가 무려 107년만에 전국 우승을 거둬 큰 화제가 됐습니다.
앞서 지난해 3월엔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경기에서 일본이 세계 1위를 차지하면서 열도 전체가 야구에 열광했었고요. 특히 WBC에서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한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30·LA다저스)도 야구 열기를 한층 뜨겁게 하는 데 큰 몫을 했죠.
오타니는 왜 글러브를 기증했을까
물론 많은 야구팬들이 스타의 기부에 감동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일본 야구계의 표정은 조금 달랐습니다. 글러브 기증의 이면엔 국민적인 야구 사랑에도 불구하고 학생 선수가 급감하는 현실에 대한 야구계의 고민, 위기감이 담겼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저출생 때문만은 아닌 위기
일본은 한국처럼 저출생 문제가 심각합니다. 아이들의 숫자가 줄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하지만 그 속도 이상으로 ‘야구 이탈’이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본 스포츠계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통계를 한번 보겠습니다. 일본 스포츠 소년단에 등록된 초등학생 야구선수(남자연식) 수를 보면 ‘탈 야구’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2014년만해도 약 12만명에 달했지만 2022년엔 약 10만명으로 줄어든 겁니다. 일본고등학교야구연맹에 등록된 야구부원 수는 더 큰 감소폭을 보입니다. 2014년엔 약 17만명(가맹 학교수 4030곳)에 달했지만 올해는 약 13만명(3798곳)으로 4만 여명이 줄어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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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야구 이탈’ 왜일까
야구 열기가 대단한데도 왜 이렇게 줄고 있을까요? 원인 중의 하나로는 아이들이 야구를 즐길 장소가 줄었다는 점이 꼽힙니다. 수십년 전만 해도 아이들은 방과 후 집 근처 공원에서 야구를 하며 노는 것이 평범한 일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만화 ‘도라에몽’에서도 아이들이 흔히 동네 공터에서 야구를 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지요.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시끄럽다”거나 “위험하다”는 이유로 많은 공원에서 캐치볼이 금지된 겁니다. 과거엔 저녁마다 매일같이 지상파 TV에서 프로야구가 중계된 덕에 아이들은 저녁식사 때마다 저녁을 먹으며 야구를 볼 수도 있었지만, 이 마저 달라졌습니다.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게 되면서 대부분 야구 경기는 위성방송이나 케이블TV에서나 볼 수 있게 된 겁니다. 아이들에게 야구는 예전만큼 친밀한 운동이 아닙니다.
두번째는 비용 문제입니다. 야구를 즐기는 사람들은 줄고 물가는 급등하면서 현재 일본에선 초등학생용 배트, 글러브가 저렴해도 약 5000엔(약 4만3000원)은 되죠. 인기상품은 2만엔(약 17만원)이 넘는 것도 많고요. 이런 용품들은 아이들이 자랄 수록 바꿔줘야 하는데, 유니폼까지 생각하면 비용이 상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축구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허들’ 높은 스포츠가 된 겁니다.
세번째 원인은 부모의 부담입니다. 앞서 언급한 게 경제적 부담이라면, 이번엔 부모의 시간적, 육체적 부담입니다. 상당수의 경우, 초등학생 팀 아이들이 경기를 하는 운동장엔 음료수를 준비하고, 아이들의 건강을 돌봐주는 ‘당번’(주로 엄마), 야구를 가르쳐주는 코치(대체로 아빠)가 있습니다. 대체로 주말마다 당번 교체를 하는데요. 선수 수가 줄면, 부모의 당번 부담도 늘어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야구를 기피하는 가정이 늘면서 야구팀에 들어가는 아이들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생겨난 겁니다.
오타니의 바람, 이뤄질까
오타니 선수가 일본 전역 아이들에게 보낸 6만개의 글러브엔 이런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이 글러브가 다음 세대에 꿈을 심어주고,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심볼이 되기를 바랍니다. 야구야말로 제가 인생을 충실히 살 수 있는 기회를 준 스포츠이기 때문입니다. 야구하자!”
오타니 선수의 글러브를 받은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캐치볼을 즐기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야구부 매니저였던 기자도 오타니 선수의 바람이 이뤄지길 기대해봅니다.
도쿄=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onuki.tomok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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