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세 시간 내린 비에 싹쓸이... 이게 실화일까

오창경 2024. 7. 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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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연속 극한 호우의 피해를 입은 부여

[오창경 기자]

▲ 산에서 토사와 함께 밀려온 컨테이너 기록적인 폭우에 휩쓸려버린 컨테이너가 논으로 떠내려왔다. 인가가 가까이에 없어서 덮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 정운수
 
부여에서 살아온 지난 20여 년의 시간 속에는 5백원 동전 크기의 눈이 내려 순식간에 양계장을 붕괴시키는 장면도 있었고, 태풍 볼라벤에 작업장 한쪽이 날아가 막대한 손해를 본 적도 있었지만 절망보다는 극복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여기며 살고 있다.

지난 7월 8일에서 9일 밤사이 내린 비는 지옥을 경험하게 할 만큼 잔혹했다. 천둥 번개 속에 하늘 문이 열리고 지상으로 마구 빗물이 쏟아지는 빗물 폭탄이 터진 것 같았다. 하늘의 거대한 둑이 터져서 물이 마을을 집어삼키는 장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두려움 이전에 이게 실화일까 하는 마음부터 생겼다.

집 뒷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곧 집을 덮칠 것 같더니, 순식간에 흙탕물 강이 현관 앞에 생겼다. 배수구는 이미 기능을 잃어버렸고 한밤중이라 피난 갈 데도 생각이 나지 않고 호우를 뚫고 나갈 용기도 나질 않았다. 진퇴양난, 속수무책으로 발만 동동 구르는 밤이 지나고 세상이 조용해졌다. 마당에 나가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뉴스를 보기도 겁이 났다. 다행히 현관 쪽에 약간 물이 차오르다가 비가 그치고 물이 빠져나갔다. 천만다행으로 수해를 당하지는 않았다.
 
▲ 메론을 심은지 이틀만에 닥친 극한 호우 피해 내리 3년째 폭우의 피해를 입은 하우스. 백마강 펄이었던 곳을 막아 농토를 만들었으나 배수 용량의 한계로 매년 호우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기후 위기로 극한의 호우가 계속되는 한 하우스 농업도 위기가 될 수 있다.
ⓒ 박윤근
 
멜론을 심은 지 이틀이 지난 지인의 하우스가 생각났다. 농작물을 심은 농민들의 피해가 더 걱정되었다.

"물어보들(물어보지도) 말어. 성한 디(곳)가 한 동도 읎어. 올해도 소용 읎어. 다 물 담었지 뭐여.(물에 잠겼지)"

내리 3년째 폭우 피해를 당한 규암면의 지인이었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피해를 확인하기도 민망해서 SNS를 열어보았다. 피해 상황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단체 대화방들에서는 비명 소리가 들려오듯 피해 사진들이 속속 올라왔다.

사진들 속에는 양계장에 물이 차서 병아리들이 쓰러져 있고, 왕대추나무가 크고 있는 하우스마다 흙탕물이 흥건하다. 토사가 밀려와 땅이 되어버린 논에는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가 끊어져 엎어져 있는 장면 등 셀 수 없는 비 폭탄의 피해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부여의 오랜 세월이 함축된 문화재들의 피해도 심각했다.
 
▲ 양계장 수해 현장 너무 많은 양의 비가 쏟아져 배수가 되지 않아 양계장으로 물이 넘쳤다.
ⓒ 신수철
 
시끄럽던 4대강 사업의 효과는 어디에 있는지

문제는 이런 피해가 3년 연속 지속되는데 근본적인 대책 부재가 문제다. 재난에 대한 해결책을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기후 변화는 어쩔 수 없지만 배수로 정비와 지반이 약한 곳은 미리 점검했어야 한다. 하긴 200년 만이라는 역대급 이번 폭우는 무슨 짓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폭우였다. 인명 피해가 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였다.

부여는 오랜 세월 백마강 중심으로 발달한 곳이다. 서해로 흐르는 백마강은 백제를 해상왕국으로 발돋움하게 했고 강변의 비옥한 토지에서 생산되는 작물은 백제인들을 먹여 살리고 찬란한 문명을 발달시켰다.

근대에 와서 백마강을 의지해 살았던 부여 사람들은 강변에 제방을 쌓고 강 갯벌에 농토를 조성했다. 경지정리를 하고 벼농사를 짓던 시대를 지나 대단위 비닐하우스 단지가 생겼다. 4대강 사업으로 부여의 르네상스를 만들겠다던 정부에서는 백마강에 거대 자본을 들여 강변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을 이주시켰다. 그 대가로 어릴 적 백마강 변 수박밭에서 수박 서리를 해서 강 건너 모래톱까지 헤엄쳐서 수박을 깨 먹곤 했다는 추억의 백마강은 사라져 버렸다. 시끄럽던 4대강 사업의 효과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군청 앞으로 곡괭이 데모라도 하러 가야 한다니께."
"공무원들이 무슨 죄가 있어요? 정부예산이 부족하다쟎아요."
"이제 정말 농사짓기 싫어지네유. 울화통만 터지네유."

백마강 둑에 제방을 쌓아 생긴 농토에서 시설 하우스를 재배하는 농민들의 대화엔 분노와 자포자기 등 복잡한 심경이 난무했다. 

70년대 경지정리로 농토를 조성하면서 만든 도랑이 배수 용량의 한계를 넘어서 농토로 범람하는 피해가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서야 배수로가 설계부터 잘못됐다고 비난하지만 당시 기술적 한계를 어쩌겠는가. 그것을 현재 바로잡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예산과 시간이 투입되어야 한다고 한다. 부여처럼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의 예산으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배수로 정비 예산을 감당할 수가 없다.

작년 수해 피해로 재난 지역이 선포되면서 부여군에서는 국비 80%, 지방비 20% 비율로 예산이 투입되어 작년의 피해를 복구하는 중에 다시 수해를 입었다. 도로가 유실된 곳과 산 절개지 피해 현장 등 시급하게 예산이 투입되어야 하는 곳부터 국가 예산이 쓰인다.

부여군에서도 피해 복구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지만 연이은 폭우와 예측 불가의 기후 재난에는 대책이 없다. 예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쏟아지는 비에 대응하는 농업 정책도 미흡하다.

"영양제도 새로 주고 살균제도 새로 줘야혀. 물 먹은 나무에서 계속 대추가 떨어지고 있으니 영양을 보충해 줘야 살지 않겄어. 하우스 안만 쳐다보고 있으면 속에서 더 천불이 나니께 오늘은 들여다 보지도 않았어."

손 시린 이른 봄부터 한증막 열기를 방불하게 하는 최근까지 하우스를 드나들며 농사를 지은 농민의 정성이 무색하게 두세 시간 내린 비에 싹쓸이 당한 심정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다.
 
▲ 주차된 화물차가 도로 유실로 떠내려 갔다. 도로 유실과 지반 침하, 제방 붕괴 등의 피해가 가장 심각하다.
ⓒ 정운수
 
3년 연속 비피해... 대책은?

지난 8일부터 10까지 3일간 내린 집중호우로 부여 지역 공공 시설물과 사유 시설물의 피해는 이날 오후 기준 152억으로 추정됐다. 이번 집중호우 피해는 지역을 특정하지 않고 부여 전지역에서 일어났다.

물 폭탄의 집중 공격으로 지반이 약해져 길이 유실되고 토사 유출 피해가 유독 심한 상태이다. 통행량이 많은 지방도부터 산에서 흘러내린 토사를 치우고 있지만 인가와 먼 곳과 인적이 드문 곳은 언제 복구의 손길이 닿을지 모른다. 부여는 가구마다 크고 작은 수해를 당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집중호우가 지나간 흔적이 너무 크다.

천재지변이든 인재든 재난 현장마다 쫓아다니며 죄인처럼 조아리며 비난을 감수하는 지자체장과 공무원들도 안되어 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3년 연속 특별 재난 지원금을 요청하는 지자체장의 표정도 유난히 어둡다.

대책이 없다. 원인을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 작년 은산면에 집중된 피해는 밤나무를 심느라 무분별하게 산을 개발했던 것이 원인이었지만 부여 사람들은 그 주장에 겉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 알고 있다. 지금의 기후 재난은 난개발, 환경 오염, 자연 훼손 등의 총체적인 결과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인간이 조금 더 나은 여건에서 살기 위해 자연을 그대로 놔두지 않고 인간 위주로 개발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다 안다.

'빗낱 던지고 있슈' 라는 말은 부여 사람들이 비가 오는 모습을 표현할 때 쓴다. 시적이고 아름다운 표현인데 3년 연속 비 피해 속에 쓰기에는 부끄럽고 민망한 말이 되고 말았다. 
 
▲ 서동용 둘렛길 데크 아래 지반이 유실되었다. 데크 아래 지반의 유실로 데크를 지지하는 시멘트 구조물이 공중에 떠 있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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