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수욕장 '평상 갑질', 이 정도일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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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도 기자]
▲ 유료 평상에서 타업체 치킨을 주문해 먹지 못하게 했다는 평상 업체 사진 |
ⓒ 온라인커뮤니티 갈무리 |
얼마 전 제주도 협재 해수욕장에 놀러 간 관광객이 '평상 갑질'을 당했다는 사연이 온라인커뮤니티에 올라왔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가족과 함께 협재해수욕장 찾은 작성자가 평상 대여 업체에 6만원을 주고 평상을 빌렸습니다. 2시간 뒤 전단지를 보고 치킨을 주문해 먹으려고 했는데 평상업체가 제휴업체 아니면 평상에서 취식할 수 없다고 막았답니다. "왜 사전에 말을 하지 않았느냐, 돈을 주면 먹을 수 있느냐"고 항의도 하고 부탁도 했지만 평상 업체는 막무가내로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결국 기분이 상한 관광객은 가족과 함께 호텔로 돌아와서 치킨을 먹었답니다.
며칠 뒤 '제주 해수욕장 관련 당사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작성자는 "1년 전 옆집과 다툼이 있었고, 너무 힘들어 고소까지 진행됐다"며 "당사자가 올해 치킨 브랜드를 바꿔 새로 오픈을 했는데 사이가 나빴던 그 사람이 배달온 걸 보고 손님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 사건은 온라인커뮤니티에 올라오자마자 화제가 됐고, 수많은 언론 매체와 방송에서도 다뤘습니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바다와 해변을 간직한 제주이지만 해수욕장에서는 눈살이 찌푸려지는 일들이 해마다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 제주 해수욕장에 설치된 그늘막과 평상 |
ⓒ 임병도 |
여름철 제주도 해수욕장을 가면 어디나 평상과 그늘막이 설치돼 있습니다. 규모가 큰 해수욕장에는 파라솔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유료입니다. 가격도 꽤 비쌉니다. 평상은 6만원에서 12만원, 파라솔은 2만원에서 4만원대입니다. 평상만 빌려주는 곳도 있지만 일부 해수욕장에서는 음식을 반드시 주문해야 하거나 식사 손님들만 이용할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평상과 그늘막의 비싼 요금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자가 텐트조차 설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보통 해수욕장의 평상과 그늘막, 파라솔은 가장 뷰가 좋은 곳에 설치돼 있습니다. 그래서 텐트나 그늘막, 파라솔 등을 준비한 사람들도 그 주변에 설치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평상 대여 업체는 막무가내로 막습니다.
이들은 "해수욕장을 우리 마을에서 임대했기 때문에 이곳에선 개인 텐트나 그늘막을 설치할 수 없다"며 설치를 할 수 있는 곳은 해안가 암석 근처뿐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텐트를 가져왔지만 설치하지 못하고 울며겨자먹기로 비싼 평상이나 그늘막, 파라솔을 이용합니다.
매년 여름에 아이들과 해수욕장을 찾을 때마다 이런 일을 당해 해당 법률을 찾아봤습니다. '해수욕장의 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22조를 보면 "관리청으로부터 비치베드, 파라솔 등의 피서용품 대여영업허가를 받은 자가 그 허가구역 외 구역에서 해수욕장 이용객의 자기 소유 피서용품의 정당한 설치나 이용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영업허가를 받은 업체가 해수욕장 전체를 임대하지 않았기에 명시된 평상과 그늘막, 파라솔 설치 이외 지역에서의 자가 텐트 설치를 막을 순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 2019년 제주 협재해수욕장에 설치됐던 불법 평상들, 마을회와 주변 상인들 싸움으로 철거됐다. |
ⓒ 제주시 제공 |
제주 해수욕장에 설치된 유료 평상과 그늘막, 파라솔은 대부분 마을회에서 운영합니다. 보통 마을회에서 청년회에 다시 운영권을 넘기거나 마을 주민 몇 명이 운영합니다. 전대(임대한 것을 다시 임대)가 금지돼 있지만 운영자가 마을 주민이거나 청년회원이라 가능합니다.
여름에 해수욕장에서 평상과 그늘막, 파라솔 대여 사업을 하면 꽤 많은 돈을 번다고 합니다. 일부는 마을회의 기금으로 사용되지만, 실제로는 마을회로부터 운영권을 넘겨받은 일부 업자가 돈을 가져갑니다.
문제는 이들이 허가된 사항 이외에 불법적인 운영을 해도 처벌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대부분 계도로 끝납니다. 공무원이 마을회에 전화해서 "이런 민원 들어왔으니 조심하세요"라는 말을 전하는 게 전부인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제주에 사는 15년 동안 여름마다 이런 일을 목격하고 취재 후 기사를 작성하거나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전혀 개선되지 않아 직접 물어봤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공무원은 '제주는 괸당문화다. 마을 이장이나 마을회, 청년회 모두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이다. 과태료까지는 부과할 수 있지만, 운영권을 취소하면 난리가 난다'라고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 2019년 8월 협재해수욕장 불법시설물 철거 행정대집행에 투입된 제주시 공무원들 |
ⓒ 제주시제공 |
2019년 협재해수욕장에선 마을회와 상인들 간의 평상 쟁탈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마을회가 평상 대여 운영권을 받았지만, 일부 상인들이 사유지에 평상을 설치하면서 다툼이 생긴 것입니다. 마을회의 민원으로 제주시가 철거 명령을 내렸지만 상인들은 버티다 행정대집행을 한다고 하니 그제야 철거를 했습니다.
당시 제주시 관계자는 "민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면서 "강력한 단속을 통해 이용객 불편과 민원을 해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읍사무소나 제주시 공무원이 단속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당시에도 마을회의 이권이 달려 있으니 행정대집행을 했을 것이라는 뒷말이 나왔습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제주를 찾는 내국인 관광객수는 50만 명 가까이 감소했습니다. '바가지요금' 등의 불만과 민원, 언론 보도가 쏟아지자 제주도는 지난 5월 "제주 관광 대혁신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제주관광불편신고 센터'는 아직도 설치되지 않았습니다. 제주도는 오늘 15일부터 관광불편신고센터를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늦장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제주는 관광산업 비중이 20%를 넘어 전국 1위입니다. 그런데도 부가가치액은 전국 최하위입니다. 관광정책이나 행정이 관광객들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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