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반란에 골머리"…기로의 뉴욕타임스, 국장 직접 나섰다
"뉴욕타임스(NYT)가 스스로를 취재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4월 낸 기사의 첫 문장이다. 이 기사의 제목은 "NYT의 보스들, 편집국 내 반란을 제압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로 달았다. NYT가 지난해부터 시작해 올해부터 겪고 있는 편집국 내 분란과 논란에 대한 기사다.
NYT가 디지털 유료화 성공 신화를 쓰고 있는 건 뉴스가 아니다. 언론업계 안팎의 영향력도 막대하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가 최신호에서 "미국의 언론업계 종사자 중 약 7%는 NYT에서 일한다"고 전했을 정도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는 것일까. NYT는 내부 단합이라는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NYT의 편집국장 조셉 칸(59)이 직접 내분 진화에 나섰다. 뉴요커의 해당 내용 역시 칸 국장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나온 것이다. 언론사 편집국의 최고 리더가 다른 언론사에 인터뷰에 응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뉴요커가 주목한 NYT의 최근 내분 사례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뉴요커가 "NYT 편집국에서 벌어지는 문화 전쟁"이라고 표현한 사례. 먼저 지난해 2월, NYT 일부 기자들과 외부 필진이 "NYT의 성소수자 보도가 편파적"이라고 공개 비판 집단 성명을 낸 것이다. 이 성명은 NYT의 특정 기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쓴 기사들을 적시하며 논란을 키웠다. NYT 편집국 내부에서 서로 손가락질하는 집안 싸움이 만천하에 공개된 셈이다. 칸 국장은 "이런 식의 집단 행동은 우리의 윤리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메일을 편집국에 전체 메일로 보냈다고 한다.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가자 지구 전쟁 보도는 논란의 불길을 키웠다. NYT뿐 아니라 미국 내에서 가자지구 전쟁을 보는 시각은 복잡하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유태인과,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일부 세력 간의 갈등 때문이다. NYT의 내분 역시 이 갈등의 축소판이다. 칸 국장은 짧은 기사를 많이 내는 것을 선호하는데, 이같은 지침이 논란을 키우는 면도 없지 않다고 뉴요커는 분석했다. 발생 사건을 두고 그 순간의 팩트를 전달하는 데 집중하다보니, 그 팩트의 맥락을 두고 논란이 커진다는 분석이다.
속보뿐 아니라 NYT 특유의 탐사보도 역시 논란이 됐다. 이스라엘을 공격하며 가자지구 전쟁을 발발시킨 무슬림 무장정파 하마스가 지난해 10월 이스라엘을 공격하며 강간과 폭행 등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무기화(weaponized)"했다는 보도가 대표적이다. 칸 국장이 총지휘한 이 탐사보도는 150여개 이상의 인터뷰와 증언을 토대로 작성됐지만, 일각에서 과도하게 친 이스라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이 희생되는 것에 대한 면죄부 아니냐는 논란도 벌어졌다. 칸 국장 역시 유대계다.
여기에다 NYT 디지털의 첨병 중 하나인 팟캐스트, '더 데일리'는 최근 보도를 앞둔 취재 내용이 유출되는 일까지 겪었다. 칸 국장은 "있어선 안 될 일"이라며 자체 조사를 진행 중이다. WSJ가 "NYT가 스스로를 취재하고 있다"고 표현한 게 이 맥락이다.
칸 국장이 뉴요커 인터뷰에 응한 건 이런 내우외환에 대해 직접 소명하겠다는 의지다. 하마스 관련 보도 논란에 대해 칸 국장은 "우리는 팔레스타인 일반 시민의 고통에 대해서도 절대적으로 큰 중요도를 두고 보도를 해왔다"며 "하지만 다른 쪽에서 보면,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이 남긴 트라우마를 다루는 것 역시 우리에겐 중요한 일이다"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모든 일엔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 (하마스 관련 보도엔) 특히나 열정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목소리들이 많았다"고 표현했다.
편집국 내 기자들 사이 내분에 대해 그는 다른 언론계 학술지 인터뷰에서 "편집국이라는 곳은 원래 안전한 곳이 아니며, 서로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이 존재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뉴요커엔 이런 요지로 말했다. "편집국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지금 NYT 편집국엔 디자이너들과 데이터 분석 전문가, 영상 감독과 편집자들과 같은 이들이 모여있다. 이들과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선 우리의 가치를 끊임없이 공유하고, 의견을 듣고 들려주는 걸 반복해야 한다. 편집국 문화라는 건 자동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칸 국장은 미국 언론계의 영예인 퓰리처상을 두 번 수상했다. 텍사스 지역신문에서 시작해 WSJ를 거쳐 NYT 중국 특파원으로 10년 가까이 재직했다. 그는 "(베이징 특파원을 자원했던) 1990년대 말엔 다들 일본에 빠져있었지만, 나는 중국이라는 새로움에 빠져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친중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다가 추방당한 이력이 있다. 집안은 유복하다. 스테이플스라는 미국 내 유명 문구 기업을 세운 창업자가 아버지다. 그의 아버지 역시 언론학을 공부했고 하루에 신문을 5개 이상 정독하며 아들과 토론하는 걸 즐겼다고 한다.
뉴요커는 "침착한 성정의 칸 국장은 NYT의 덩치와 영향력이 그 어느때보다 더 커진 상황에서 일종의 '경찰관' 역할을 하고 있다"며 "성장한 편집국의 치안을 다스리는 게 그의 현재 역할"이라고 분석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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