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한국서 통하면, 세계를 홀린다…삼성동 그 파도처럼 [비크닉]
■ b.피셜
「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지난달 21일부터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고 있는 미디어아트 전시 ‘reSOUND: 울림, 그 너머’가 오픈 일주일 만에 1만 2000명 이상 다녀가며 화제입니다. 주중에는 1500명이 방문하고 주말 사전 예매는 일찌감치 매진되었죠. 8월 25일까지 무료로 운영되는 전시는 총 8개의 섹션으로, 대규모 설치작품부터 4D SOUND, 키네틱 사운드, 인터랙티브 아트, ASMR 등 공감각적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구성돼 있어요.
이 전시는 디지털 미디어 기술을 활용해 공간 경험을 디자인하는 ‘디스트릭트’의 20주년 기념전이기도 합니다. 디스트릭트는 지난 2020년 실감 나는 파도를 표현한 미디어 아트 ‘웨이브’를 비롯해 다음해 뉴욕 타임스퀘어 한가운데서 102.5m의 폭포를 연출한 ‘워터폴’을 만든 회사죠. 세계 3대 디자인어워드인 iF어워드에서 6년 연속 수상은 물론 캠페인 부문 세계 1위를 차지하며 업계 최고에게 수여하는 골드어워드만 2년 연속 수상했어요. 게다가 2020년 제주에서 개관한 미디어아트 전시관인 ‘아르떼뮤지엄’이 큰 성공을 거둔 이후 국내외에서 발 빠르게 확장을 하고 있죠. 19일에는 부산관 오픈도 앞두고 있습니다. 이처럼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이들이 아트프로젝트를 계속 시도하는 이유는 뭘까요. 오늘 비크닉에서는 국내를 넘어 세계에 한국 미디어아트를 알리는 디스트릭트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① 무료 전시 맞아요? 남녀노소 ‘파도 멍’하는 이곳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아트 프로젝트는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에서 존재감을 키워온 디스트릭트의 확장판입니다. 비바람 치는 바다 위 파도가 몰아치는 대표작 ‘오션’을 비롯해 국내외 예술가들과 협업한 작품 8점을 공개해요. 독일 베를린의 공간음향 예술가인 ‘모놈’의 4D사운드, ‘커넥트 BTS’에 참여했던 덴마크 출신 야콥 쿠즈크 스틴센의 디지털 원시림, 털로 덮인 벽을 쓰다듬으면 촉각에 반응하는 음악이 들리는 필립스튜디오의 설치작품 등 보는 것뿐 아니라 만지고, 듣고 느끼는 전시죠. 오감으로 느끼는 전시다 보니 예술 전시임에도 대중에겐 즐거운 경험으로 느껴집니다. 어린이 단체, 학생, 군인, 직장인, 가족 등 전시장을 방문한 남녀노소 관람객들이 이를 방증하죠.
전시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은 ‘세상의 모든 경계’를 주제로 문화역서울 284 공간에 맞게 새롭게 제작했어요. 특히 디스트릭트가 영국 런던 아우터넷에서 초연한 작품 ‘플로우’를 국내 최초 소개해 이목을 끕니다. 미술사의 흐름을 담은 초현실적 퍼포먼스로 호주 출신 작곡가 트라스탄 바튼과 협업해 웅장한 예술미를 뽐내죠. 이성호 대표는 “이번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시각 예술 중심에서 공감각적인 경험으로 콘텐츠 저변을 확장할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서울 삼성동 디스트릭트 사무실에서 그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들어봤습니다.
② 돈 안되는 예술? 디스트릭트의 이유있는 고집
인터뷰를 하는 오늘(6월 28일)이 딱 20주년 되는 날이라고요.
"‘아 이제 우리도 어른이 된 건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너무 고생을 하면서 크긴 했지만요(웃음). 디스트릭트는 2004년 웹 에이전시로 출발했어요. 그러다 2009년 오프라인 공간 기반의 몰입형 디지털 콘텐츠 사업으로 피보팅했습니다. 2011년부터는 자체 콘텐츠 IP를 확보하고 여기에 기반한 수익모델을 만드는 시도를 했어요. 많은 자본을 투자한 실내형 4D 아트파크가 잘 안되면서 어려웠던 시기를 겪었죠. 그러다 2020년 ‘웨이브’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면서 기회가 찾아왔어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시도했던 아르떼뮤지엄이 감사하게도 잘 되면서 급성장하게 되었죠."
디스트릭트는 클라이언트 없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꾸준히 제작해 왔어요. 지금 보니 일종의 투자였던 셈이네요.
"궁극적으로는 프로젝트를 수주하는데 의존하지 않고 디자인 회사로서 우리 창작물들을 가지고 성장하겠다는 의지가 있었어요.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영향력 있는 디자인 회사가 되는 것이 목표였죠. 삼성동 케이팝 스퀘어에 선보였던 ‘웨이브’와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웨일 넘버투’도 아무 기대수익 없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아트프로젝트를 전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게 평가받기를 바라지도 않아요. 오히려 순수예술과는 다른 지점에서 새로운 시각 경험을 하는 모멘텀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아르떼뮤지엄 같은 공간이고요. 처음엔 트렌드에 민감한 2030 여성 고객을 타겟했으나 막상 개관하고 보니 어르신들도 많이 오시고 아이들도 좋아하는 걸 알게 됐어요. 디스트릭트의 저변을 확장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고 마침 대림미술관에서 성공했던 몇몇 전시를 보면서 확신을 가질 수 있었죠. 디뮤지엄・대림미술관 수석 큐레이터였던 김지현 본부장을 비롯해 미술계 출신으로 구성된 ‘라이브엑스’라는 조직을 꾸렸고 그 첫 결과물이 이번 전시인 셈입니다. 그동안은 상업 영역에서 내부 디자이너들이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면, 이제는 외부 작가나 유명 IP와 협업을 넓혀가려고 해요."
③ 650만 명이 봤다, 실패가 낳은 성공
아르떼뮤지엄 관람료만으로 매출을 견인하고 있다고요.
"지금까지 국내 누적 관람객 수는 650만 명으로 집계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10명 중 1명은 관람했다는 이야기죠. 해외까지 합치면 700만 명이고요. 올해 디스트릭트 매출은 800억 원으로 예상하는 데 그중 아르떼뮤지엄 관련 매출이 70% 이상입니다."
성공 비결이 궁금합니다.
"실패에서 얻은 교훈이죠. 실내형 4D 아트파크를 표방한 라이브파크(2011)는 시대를 앞서간 프로젝트였어요. 하지만 기술을 뽐내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아르떼뮤지엄은 주제부터 보편적인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골랐어요. 이후 많은 미디어아트 전시관이 생겼지만 다 잘 되지는 않았어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치열하게 콘텐츠를 만들어온 사람들이 디스트릭트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④ 까다로운 한국인, 전 세계 홀린 K미디어아트
아르떼뮤지엄은 2022년 홍콩을 시작으로 중국(청두), 미국(라스베가스), 아랍에미리트(두바이)까지 글로벌로 빠르게 확장했습니다. 2027년까지 전 세계 20곳에 개관하는 걸 목표하는데, 이렇게까지 속도를 내는 이유가 있나요?
"첫째는 경험을 소비한다는 트렌드가 언제까지 유효할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둘째는 아르떼뮤지엄이 잘 된다고 하니까 유사한 곳들이 많이 생겨났고 그중에는 대놓고 베끼기식인 곳도 있으나 저작물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그래서 우리의 전략은 ‘빠르게 성장 하자’인데요. 마켓리더로 시장을 선점하면 안정적인 운영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기 때문이에요. 내년에는 중국 션전, 미국 LA 산타모니카와 뉴욕 맨해튼에 새로운 아르떼뮤지엄이 문을 엽니다."
현지에서 반응은 어때요?
"사실 외국에서 반응이 훨씬 더 좋아요. 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제일 까다로운 것 같아요. 드라마나 영화도 한국에서 좋은 피드백을 받으면 전 세계에서 인기가 있다고 하는데 그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콘텐트에 돈을 지불하는 것에 높은 수준을 기대하는데다 평가도 엄격한데 디스트릭트는 어쨌든 거기에서 살아남은 선수인 거예요. 라스베가스, 두바이점 구글 리뷰를 보면 지금까지 약 4000개가 올라와 있는데 5점 만점에 4.9점을 유지하고 있어요. 라스베가스의 경우 오픈한 지 7개월에 접어드는데 하루 평균 1000명 방문하고 있어요."
라스베가스점에서 조선시대 산수화를 홀린 표정으로 감상하는 관람객들을 보니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모든 아르떼뮤지엄에는 ‘가든’이라는 공간이 있는데 각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콘텐트를 선보입니다. 여수점에는 ‘여수 밤바다’ 음악에 맞춰 여수 10경과 바다 속을 표현한 작품을, 강릉점에는 국악인 송소희 씨가 부른 ‘아리랑’을 배경으로 영동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 있어요. 마찬가지로 라스베가스에는 그랜드 캐니언과 카지노를 표현한 영상이 있고요."
디스트릭트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요?
"19일 부산점이 문을 엽니다. 약 1700평 규모로 70%가량 새로운 작품으로 구성했고 처음 선보이는 테마관도 있어요. 프랑스 오르세미술관과 파트너십을 맺고 만든 특별전을 최초로 선보입니다. 또 미디어 아트 라이선스 기반의 ‘led.art’이나 ‘아르떼 키즈파크 제주’와 같은 새로운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미디어 아트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디스트릭트가 떠올랐으면 해요. 구성원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이 브랜드를 잘 발전시켜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이소진 기자 (lee.soj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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