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명품백'에 권익위원들 "무기명 투표""부담" 발언
[유지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0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75주년 정상회의가 열리는 미국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전용기인 공군 1호기 편으로 도착해 인사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사안 자체가 민감한 부분이 있으니 의결 절차를 무기명으로 했으면 한다."
"당사자가 임명권자다. 심리적 부담감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가 청탁금지법 위반이 아니라며 종결 처리한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위원장 유철환)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나온 말이다.
일부 권익위원들은 종결-송부-이첩을 결정하는 의결을 무기명으로 하자고 주장하고 대통령이 당사자인 점을 거론하며 심리적 부담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그동안 권익위 전원위회의는 기명 표결을 해왔다. 때문에 전례가 없다며 무기명 표결은 채택되지 않았다. 이날 표결은 종결 8표, 수사기관 송부 7표였다.
권익위원들 "무기명 투표" 여부 놓고 설전
권익위는 지난 6월 10일 오후 '공직자와 그 배우자 등의 청탁금지법 위반 의혹'에 대해 제11차 전원위원회 회의를 열었다. 안건으로 다뤄진 공직자는 윤석열 대통령이고 배우자는 김건희 여사다. 회의 참석자는 총 15명으로 유철환 위원장을 포함 정승윤·김태규·박종민 부위원장, 권석원·최명규·한삼석 상임위원, 최정묵·송현주·홍세욱·홍봉주·김태영·최진영·신대희·이흥주 비상임위원이다.
▲ 권익위 회의록 3쪽에 나온 무기명 투표에 대한 논의 내용 |
ⓒ 권익위 |
권익위원들은 안건 논의에 앞서 의결을 공개로 할 것인지 비공개로 할 것인지부터 먼저 논의했다. 관련 논의는 회의록 2쪽부터 5쪽에 걸쳐 기록될 정도로 상당 부분이 할애됐다.
먼저 한 위원이 "사안 자체가 민감한 그런 부분도 있고 해서 의결 절차를 진행할 때 무기명으로 진행했으면 한다"라고 제안한다. 이어진 논의에서 동일인으로 추정되는 위원이 "(회의록) 비공개 결정이 아니고, 의사결정을 할 때 어느 안을 의결할 것인데 거기에 대한 투표할 때 무기명으로 해줬으면 좋겠다는 취지"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에 대한 사안에 대해 누가 어떤 의견을 냈는지 남기지 말자는 취지다.
이에 또 다른 위원이 한번도 비공개 표결을 한 적이 없다며 반대한다. 그는 "(권익위원) 15명이 대법원 전원회의와 같기 때문에 이 결정에 대해서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처럼 다수의견인지, 소수인지 자기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해서 그것이 결국 공개돼서 기록에 남는 것이 책임지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과거에 논의가 크게 됐던 사건을 언급하면서 "그 당시에도 비공개로 표결해서 무기명 투표한 사례는 없었다. 여기는 합의체 기구고, 15명이니까"라면서 "대법원도 마찬가지죠. 다수의견, 소수의견 밝히듯이 결정에 대해서 책임지는 것이 좋지 않나 해서 당시에도 공개하고, 실명 공개했고 국회 나가는 것만 비실명 처리 했다"고 설명했다.
▲ 임명권자가 당사자임을 거론한 권익위 회의록(3쪽). |
ⓒ 권익위 |
비공개 표결 주장은 계속됐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가 임명권자라 심리적 부담감이 있다"는 '고백 아닌 고백'도 나왔다.
대법원을 거론한 발언이 끝나자 곧장 한 위원이 나서서 "이번 건의 당사자가 어떻게 보면 임명권자"라고 호소한다. 그는 "심리적 부담감도 있고 독립성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고민이 되실 수도 있고 해서, 어떤 결정이 나든 그거야 위원회의 결정으로 나는 거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조금 자유로운 의견표시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취지도 일부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한다"라며 무기명 투표에 힘을 실었다.
이에 다른 위원들은 지금까지 무기명 투표를 한 적이 없는데 이번 사안에 한해 그렇게 한다면 더 부적절하다고 응수한다. 한 권익위원은 "작년에도 위원회에서 논란이 많았지만 다 실명으로 의견을 밝혀서 했다"고 덧붙였다.
작년 권익위는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부부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에 대해 수사 필요성을 인정하고 대검에 이첩한 바 있다.
"손 들지 말고 종이에 쓰자" 제안 나온 이유
권익위원들의 부담감은 회의록 전반에 묻어났다. 한 위원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을 대통령실에서 대통령기록물로 보고 있다면서, 대통령 직무 관련성과 상관 없이 신고 의무가 없으니 사건을 종결하자고 의견을 내기도 한다. 대통령기록물이라는 대통령실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을 언급한 권익위 회의록 17쪽. |
ⓒ 권익위 |
표결 직전에는 한 권익위원이 손을 드는 방식이 아닌 종이에 이름과 의견을 써서 내자고 제안하기까지 한다. 공개석상에서 손을 들어서 표결하면 대통령 부부 사건에 이첩이나 송부 의견을 낸 사람들이 부담을 느낄 수 있으니, 좀더 보안이 보장되도록 종이에 이름과 의견을 적어내자는 의견이었다.
그는 "제가 몇 년 동안 위원으로 와 있는데, 중요한 사건이지만 투표까지 가는 건 처음 봤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나는 종결이다, 나는 이첩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보다는 종이에 써서 제출하는 것이 낫지 않겠가?"라고 제안한다. 이 위원은 "제 얘기는 말로 하는 것보다는 종이에다 자기 이름을 써서 내자는 것이다. 개표하듯이 하면 될 것 아닌지?"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다른 위원이 "저는 거수로 하는 게 제일 간편하지 않을까"라고 밝혔고 다수 위원들도 "네", "그러시죠"라고 말하면서 표결은 거수로 진행됐다.
사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뒤에 나온 종이에 이름을 적자고 한 의견은 좀더 눈치를 보지 않도록, 여지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한 의견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권익위 회의록, 법원 판결문처럼 실명 공개해야"
한편 권익위 전원회의 회의록에서 위원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것을 놓고 법원 판결문처럼 이름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장동엽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선임간사는 지난 10일 <오마이뉴스>에 "법원 판결문에도 판사 이름이 다 공개되는 것처럼 권익위의 의결서나 결정문, 회의록 또한 판결문에 준하는 수준으로 위원 실명을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어떤 위원이 어떤 근거로 의견을 내고 그것이 모여 권익위의 최종 결정이 이루어진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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