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교회, 놀라움에 기도하는 공간임을 잊었습니다

전영선 2024. 7. 1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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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신리성지에 다녀와서... "제일 좋았슈" 극찬하는 이유를 알겠네요

[전영선 기자]

지난 일요일, 충남 당진시립중앙도서관 해오름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캘리그라피 전시회를 찾았다. 동서가 전시회에 작품 2점을 출품했다고 해 보기 위해서였다. 관람을 마치자 동서가 '신리성지'를 언급했다. 동서의 말에 곁에 있던 서방님이 주저 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가봐유. 다녀본 중에 제일 좋았슈."

웬만해선 과장스레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서방님의 이런 반응이라니. 신리성지가 어떤 곳일지 기대가 되었다.

당진을 그리 드나들면서도 당진의 명소는 많이 찾아다니지 못했다. 텃밭에 할 일이 많아서이기도 하고, 나고 자란 한진의 집터만을 최고의 명소라 생각하는 남편 때문이기도 했다. 동서가 아니라면 당진에 있는 근사한 카페와 명소는 구경도 못했을 것이다. 이번에도 남편은 시골집으로, 동서와 나는 신리성지로 향했다.

신리성지는 당진 시내에서 승용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성지에 가까워지자 너른 평야가 먼저 우리를 반겼다. 내포평야였다. 내포평야는 예산군과 당진시에 걸쳐 넓게 발달되어 있어 예당평야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끝없이 펼쳐진 평야에 마음이 탁 트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게 마련인데 신리성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입구로 접어들자 푸른 잔디밭이 시선을 압도했다. '내륙의 제주도'라 불린다는데 하나도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잔디 위 미술관, 그림 같다  
 
▲ 신리성지 입구에서 바라본 전경. 풍광이 사진에 제대로 담기지 않아 무척 아쉬웠다.
ⓒ 전영선
 
▲ 신리성지 멀리 왼쪽에 보이는 갈색 건물은 성당이고, 오른쪽 하얀 건물은 경당이다. 이곳에는 5개의 경당이 있는데 이는 다섯 성인(다블뤼, 오매트르, 황석두, 손자선, 위앵)을 기리는 공간이다.
ⓒ 전영선
 
푸른 잔디 위로 드문드문 놓인 경당과 멀리 낮은 언덕을 어깨 삼아 서 있는 미술관이 마치 그림 같았다. 자연스레 미술관으로 걸음이 향했다. 
신리성지 미술관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성화 미술관이라고 한다. 전시장에는 다섯 성인의 영정화와 순교기록화 13점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다블뤼 주교였다.  
 
▲ 신리성지 순교 미술관 가로로 길쭉한 건물은 사무실이고, 우뚝 솟은 건물이 미술관이다. 미술관 앞쪽으로 성 위앵 신부의 경당이 보인다.
ⓒ 전영선
다블뤼 주교는 프랑스인으로 1845년 10월 김대건 신부와 함께 강경에 첫 걸음을 내디딘 후 1866년 갈매못에서 순교하기까지 21년 동안 조선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내포지방 천주교 유력자였던 손자선의 집에 은거하면서 황석두의 도움을 받아 천주교 서적을 저술하거나 이를 한글로 번역하였다고 한다. 또한  조선 천주교사와 순교자들의 행적도 수집하였다는데 이 자료들은 훗날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의 기초가 되었고, 103위 성인을 탄생시키는데도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고 한다. 
 
▲ 신리성지 순교미술관 다섯 성인의 영정화와 순교기록화 13점이 전시되어 있다.
ⓒ 전영선
 
미술관을 나와 다블뤼 주교가 거처했다는 다블뤼 주교관으로 향했다. 주교관에는 다블뤼 주교의 아담한 동상과 함께 초가집이 예전 모습 그대로 복원되어 있었다. 
이곳 신리는 천주교가 조선에 들어오기 시작했던 시기에 가장 먼저 교리를 받아들였던 지역이라고 한다. 조선에서 가장 큰 교우 마을이었으며, 선교사들의 비밀 입국처이기도 했단다. 그래서 '조선의 카타콤바(로마시대 비밀교회)'로 불리기도 한다고.
 
▲ 신리성지 다블뤼 주교관 다블뤼 주교가 거처했던 곳으로, 비밀리에 신자들이 예배를 보던 곳이기도 하다. 2004년 복원작업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 전영선
 
주교관 옆으로는 성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성당 측면 벽에는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는 듯 두 팔 벌린 조각상이 붙박여 있었는데 그 앞에 제단이 놓인 것을 보니  이곳에서도 미사를 드리는 모양이었다.  
 
▲ 신리성지의 성당 측면 벽에는 두 팔을 벌린 조각상이, 그 앞에는 제단이 놓여 있다.
ⓒ 전영선
 
주변을 두루두루 둘러본 후 카페에 들렀다. 카페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창 밖으로 너른 평야가 펼쳐져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인테리어가 서울 도심에 있는 카페 못지않아서였다.  
  
▲ 신리성지 카페 치타누오바 측면 모습이다.
ⓒ 전영선
   
▲ 신리성지 카페 치타누오바 마침 이원경 작가의 '푸른 심장'전이 열리고 있다(~9월 30일까지). 뒤로 보이는 그물 모양의 푸른색 설치물이 작품이다.
ⓒ 전영선
 
신리성지는 기존의 성당이나 성지 이미지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안겨주었다. 익히 보아온 고풍스러움이 아니라 유럽의 어느 한적한 전원 풍경에서나 느낄 법한 소박함과 정겨움을 물씬 풍겼다. 세련미는 덤이다.    
 
▲ 신리성지는 공원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공간'이라는 안내문과 함께 출입금지 항목(반려동물, 놀이기구, 드론, 이륜차)을 적은 표지판.
ⓒ 전영선
 
이곳에 발을 들이고 멋진 풍경에 '와~' 탄성을 지르고 이곳저곳을 카메라에 담느라 부산을 떨었다. 놀라움이라는 감정은 에너지를 가만두지 않으니까. 그러다 '기도하는 공간'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만났다. 그제야 놀라움을 가라앉히고 행동을 자제했다. 걸음도 사뿐사뿐, 목소리도 나지막하게.

맞다. 이곳은 공원이 아니라 기도하는 공간이다. 믿음에 대한 헌신에 경의를 표하는 곳. 그러니 조용히, 살며시 둘러보아야 한다. 놀라움을 죽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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