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다 하니깐" 영어캠프·초등의대반 문전성시[디토사회]

박현주 2024. 7. 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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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뒤처지면 안된다는 공포에 사교육 증가
"친구들은 다 영어캠프 간다는데 우리 애도?"
초5에 고2 수학 선행·영유 위해 지방 유학도
7세에 영어유치원 입학 테스트 대비 과외까지

편집자주 -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2024년 10대 키워드 중 하나로 꼽은 '디토(Ditto) 소비'. 디토는 '마찬가지'라는 의미의 라틴어로, 디토소비는 제품을 구매하거나 콘텐츠를 소비할 때 유명인의 취향과 유행을 그대로 따라하는 경향을 뜻한다. 점차 소비 연령대가 낮아지는 명품 소비, 늘어나는 유행 편승 투자 등 한국 사회의 맹목적 '디토'들을 분석해본다.

"주변 얘기 들어보면 아이들 방학 때 해외 영어캠프 보낸다던데 고민됩니다", "우리 애 친구들은 다 영어캠프 간다는데, 저도 보내야 할까요?"

여름방학을 앞두고 학부모들이 분주해졌다. 미국·필리핀·호주 등 영어권 국가에 일정 기간 머무르며 공부하는 영어캠프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자신의 자녀도 영어캠프에 신청해야 할 지 고민하는 학부모들이 늘어난 것이다.

13일 인터넷 맘카페 커뮤니티에는 자녀의 연령·영어 수준별로 보낼 수 있는 영어캠프의 일정 및 비용 등에 대한 질문글이 여럿 올라와 있다. 영어캠프는 비교적 시간이 여유로운 방학 동안 영어권 국가에서 언어 노출을 늘릴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해외에 일정 기간 체류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만만찮다. 체류 국가와 일정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는데, 적게는 200~3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을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세 자녀를 뒀다는 한 학부모는 학원상담 게시판에 글을 올려 "카페 글을 보다 보니 영어캠프가 갑자기 훅 끌린다"며 "평범한 집이라 남편한테 말하면 미쳤냐고 하겠지만 아이들에겐 평생 추억이 될 것 같다. 한 달 정도 영어캠프 괜찮겠냐"고 물었다.

서울 강남 등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선 아이가 태어나면 정해진 루트가 있다는 말도 나온다. 아이가 5살이 되면 영어유치원에 보내 영어에 친숙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7세가 되면 유명한 초등 영어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부모들 사이에선 원어민 과외를 통해서라도 학원 레벨테스트를 미리 대비해두지 않으면 유명 영어학원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도 나온다. 영어학원 레벨테스트의 높은 벽을 '7세 고시'라고 하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자녀를 영어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지방 유학'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7세 자녀를 둔 김모씨(39·서울 강남구)는 "서울에선 영어유치원 보내려면 비싸고 경쟁률도 심하다"며 "그래서 지방에 집을 얻어서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엄마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영어유치원, 영어학원 레벨테스트에 대비하기 위한 기출문제가 맘카페에서 떠돈다"며 "미리 아이를 훈련시켜서 보내는 것"이라고 전했다.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서울 목동·대치동 학원가에선 '초등의대반' 간판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이 초등학생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선행학습 불을 지핀 것이다.

지난 1일 교육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부 초등 의대반에서는 초고속 선행교육을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강남 대치의 G 학원은 초등 5학년을 대상으로 고2 수학1 과정까지 가르치는데, 이는 정상 과정보다 14배 앞선 선행교육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초등 3, 4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이 학원의 의대 프라임반 역시 정상 교육과정보다 10배 빠른 수준의 학습을 진행한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제로섬'의 교육 구조에서 학부모와 아이들 모두 강한 압박을 받으면서 과도한 사교육에 내몰린다고 지적했다. 구 국장은 "자기 아이를 잠 못 자게 해서 공부시키고 싶은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나"라며 "경쟁 교육 구조에서 사교육을 통해서라도 이겨야한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부모들이 유아기부터 교육시장으로 내모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대학 입시가 전부가 되는 구조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며 "전반적인 교육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서 사교육을 줄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선행학습, 사교육으로 모든 아이가 승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어린아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 되기도 전에 스트레스로 나가떨어지거나, 고등학교 때까지 사교육으로 달려도 패자가 됐다고 인식하는 아이들이 생겨나는 악순환 구조"라고 비판했다. 그는 "부모는 과도한 사교육비로, 아이는 학습 노동으로 고통을 겪는 구조"라며 "이런 구조 속에서 저출산을 해결하겠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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