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값 비싼데 기왕이면"...예술영화에 몰린 2030
[한국경제TV 박근아 기자]
"요즘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로 저렴하고 쉽게 영화를 볼 수 있는데 극장에서 보려면 1만5천원이나 내야 해서…. 기왕이면 '타율'이 높은 완성도 있는 작품을 보고 싶어서 예술영화를 찾곤 합니다." (29세 한모 씨)
최근 젊은 관객들이 예술영화에 몰리면서 흥행작까지 잇달아 나오고 있다.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13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누적 관객 수 18만명을 넘겨 올해 개봉한 예술영화 중 최고 흥행작이 됐다.
2차 세계대전 시기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옆에 사는 독일 장교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칸국제영화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등에서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글레이저 감독의 국내 인지도가 낮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작품이라 흥행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배급사인 찬란에서도 당초 5만 관객을 목표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일 극장에 걸린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도 개봉 열흘 만에 3만명을 동원했다. 주연 배우 야쿠쇼 고지는 한국 관객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내한 행사까지 잡았다.
이 작품은 일본 도쿄 공중화장실 청소노동자의 일상을 그린 차분한 영화라 이 정도의 흥행은 예상 밖이다.
올해 나온 예술영화 중 '가여운 것들'(15만6천여명), '추락의 해부'(10만3천여명), '악마와의 토크쇼'(10만여 명), '로봇 드림'(4만7천여명),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4만5천여명), '프렌치 수프'(3만8천여명) 등이 선전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일본 작품인 '괴물'은 지난해 개봉해 관객 수 53만여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예술영화 흥행은 20∼30대의 젊은 관객이 이끌고 있다.
CGV 예매 시스템에 따르면 '괴물'의 관객 중 20대가 35%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28%로 뒤를 이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경우 20대가 30%, 30대가 39%였다.
'가여운 것들'(20대 30%·30대 34%,), '추락의 해부'(20대 33%·30대 35%), '악마와의 토크쇼'(20대 27%·30대 36%), '로봇 드림'(20대 29%·30대 36%) 등도 모두 비슷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OTT가 떠오르고 영화산업은 침체 일로를 걷는 중인 가운데 젊은 세대의 예술영화 붐은 뜻밖의 현상이다. 영화계에선 이른바 '힙한' 콘텐츠를 선호하는 젊은 층의 소비문화를 요인으로 꼽는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최근 흥행한 예술영화들의 특징은 형식적으로 신선하다는 것인데, 이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요즘 젊은 세대의 소비 성향과 잘 맞아떨어진다"며 "콘텐츠 홍수 속에서 하나를 골라봐야 하는 만큼 남들이 보지 않고 뻔하지 않은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20∼30대가 SNS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세대라는 점이 예술영화 열풍에 영향을 끼쳤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SNS에는 예술영화를 본 관객이 게시한 티켓이나 포스터 등 굿즈(팬 상품)를 찍어 올린 사진이 자주 보인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이런 게시물을 올림으로써 자신이 고품격의 문화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걸 전시할 수 있지 않으냐"며 "SNS가 최근 예술영화 붐에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 예술영화를 주로 배급하는 영화사 관계자는 "'괴물'부터 '퍼펙트 데이즈'에 이르기까지 모두 온라인상에서 화제성이 높았던 작품들"이라며 "젊은 세대는 이슈가 되는 작품을 찾아보려는 경향이 강해 결국 흥행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짚었다.
다만 예술영화 내에서도 '흥행 쏠림'이 뚜렷하다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유명 국제영화제나 시상식에서 조명된 외화는 흥행에 성공하지만, 한국 독립영화는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어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일례로 배우 조현철이 연출한 영화 '너와 나'는 실 관람객의 호평이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4만 관객을 채 넘기지 못했다. 업계에선 이마저도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른 김장하'(2만7천여 명), '비밀의 언덕'(1만6천여 명), '괴인'·'드림팰리스'·'막걸리가 알려줄거야'(각각 1만2천여 명) 등도 작품성에 비해 성적은 아쉬웠다.
정지욱 평론가는 "한국 영화에서도 충분히 좋은 작품이 많기 때문에 이런 양극화를 극복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박근아기자 twilight1093@wowtv.co.kr
Copyright © 한국경제T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