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덮친 AI]⑤영상산업 대변혁…수천억 제작비 블록버스터 사라진다
‘콘텐츠 창작 민주화’ 시대 열리나
한국어 실종, 데이터 전쟁 우려
편집자주 - 대중문화계가 AI(인공지능)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제작비 절감과 풍부한 영상 제작은 장점이다. 아역배우나 동물 촬영의 어려움도 해소할 수 있다. 반면 대중문화계가 AI 기술을 활용할수록 연예인들은 딥페이크를 이용한 불법 광고나 보이스피싱에 더 쉽게 노출될 수 있다. 대중문화계에 스며든 AI 기술은 현재 어디까지 왔을까. AI 기술의 활용 현주소와 발전 가능성, 제도적 보완점은 무엇인지 들여다본다.
영화산업은 지난 100년간 기술 발달로 변혁을 이뤘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전환됐고, CG(컴퓨터그래픽), VFX(시각특수효과)가 발달하며 블록버스터가 탄생했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가 생기며 극장에 가지 않아도 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 국내외 영상산업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이 향후 2~3년 이내에 영상 문화의 판도를 완전히 바꿀 것이라고 입 모은다.
앞서는 미국, 할리우드 촬영장 AI 도입할리우드에서는 영화 제작에 AI프로그램을 활용해 예산과 시간을 줄이고 있다. 최근 촬영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신작 ‘히어’에서 67세 배우 톰 행크스의 19세, 25세 외모를 AI 디에이징(현시점보다 나이를 어려 보이게 하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만들었다. 챗GPT 개발사 오픈AI가 지난 2월 생성형 AI ‘소라’를 출시하자, 영화제작자 타일러 페리는 8억달러 규모의 스튜디오 확장을 중단했다. 제작에 AI를 활용하는 방법이 더 효율적이라고 본 것이다.
업계는 수천억원 제작비 없이 우주 영화 제작도 가능하다고 기대한다.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는 “AI를 활용해 다양한 영상을 만들 수 있다”며 “기발한 상상력만 있으면 초자연적 현상도 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완성도 높은 ‘100% AI 영화’를 볼 날이 머지않았다고 내다보고 있다. 미국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이미 ‘AI 영화’를 기획 중이다. AI 영화 플랫폼 ‘큐리어스 레퓨지’ 대표 데이브 클락은 “디즈니가 자체 IP(지식재산권)를 AI 디퓨전 모델로 활용 중”이라며 “앞으로 2억달러짜리 블록버스터 영화는 제작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6개월 사이 AI 프로그램 업데이트 속도는 전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빠르다. 스타트업 런웨이는 지난달 17일 출시한 AI 영상 제작 프로그램 ‘젠-2’ 최신판 버전 ‘젠-3 알파’를 이달 초 선보였다. 구글은 지난 5월 프리뷰 버전으로 출시한 ‘제미나이-1.5플래시’ 업그레이드 버전을 이달 8일 선보였다.
대학 교수들조차 발전 속도를 따라가기 벅차다. 이 교수는 “새 학기 시작할 때 가르친 것들이 종강할 때 무의미해질 때가 있다”고 했고, AI 영화 ‘원 모어 펌킨’을 만든 스튜디오 프리윌루전의 권한슬 감독은 “AI 콘텐츠 창작자들도 자고 일어나면 새 기술이 나와 학습이 소용없을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급변하는 기술을 빠르게 흡수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실무자들은 영화 제작에 활용되는 ‘미드저니’, ‘루이스’, ‘수노’, ‘루마 드림머신’ 같은 생성형 AI 프로그램을 배우며 현장 적용 가능성을 톺아보는 분위기다. 권 감독은 “국내에는 올바른 AI 정보가 많지 않다. 어떤 기술인지, 얼마나 발전했는지 모르는 창작자들이 많다. 논의의 장을 활발히 마련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창작 민주화 시대’ 열리나AI로 누구나 창작하고 다양한 형태로 소비하는 날이 머지않았다. 뉴미디어 플랫폼 ‘오나시스 오닉스’ 기술디렉터 매튜 니더하우저는 “AI가 ‘창작의 민주화’ 시대를 열 것”이라며 “영상 미디어에 엄청난 변혁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권 감독은 “모두에게 창작 기회가 평등하게 제공될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칸 영화제 ‘칸 넥스트’ 책임자 스텐 크리스티앙 살루비어는 제작사가 감독·작가를 고용해 제작을 주도하던 시장 흐름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 전망했다. 스텐은 “기성 창작자들의 권력이 분산되고 젊은 사람들이 플랫폼 혁신을 주도할 것”이라고 했다.
긍정적 영향만 기대할 순 없다. 이진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는 시대지만, 예술적 향상을 이루지는 못했다”며 “AI를 통해 창작·소비 방식이 변화하면서 콘텐츠가 하향 평준화돼 산업창작자들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재 유출, 데이터 전쟁 우려
미국 스탠퍼드대는 올해 AI 인력이 7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글로벌 ‘AI 스타트업’ 투자액은 1000억달러였으며, 올해 상반기에만 520억달러가 투자됐다. 우리 정부도 AI 인재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 예산 739억원을 들여 AI 석·박사급 핵심 인재 양성 사업 규모를 2배 이상 확대했다. 2028년까지 1만7800여명의 디지털 핵심 인재를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육성된 인재의 해외 유출 문제는 숙제다. 지난해 한국은 인도, 이스라엘에 이어 ‘AI 인재 유출이 많은 나라’ 3위에 꼽혔다. 향후 초거대 영상산업을 갖춘 미국 등으로 인력이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AI프로그램의 정보 학습 문제도 화두다. AI 프로그램 대부분 영어 기반인 탓에 학습 활용 면에서 영어권 국가보다 발전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AI가 ‘백인 남성’ 중심 데이터를 불러와 ‘데이터 편향’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매튜 니더하우저는 “다양성, 대표성을 약화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기업이 자정능력을 발휘해 규제해야 한다”고 했다. 이진준 교수는 “데이터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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