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벙커 만들어주세요" 하루 주문 1000건, 뜻밖 이 나라 [세계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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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유럽에서 안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가운데, 독일에서 개인 벙커 주문량이 2년전에 비해 3배 늘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립자나 할리우드 스타인 킴 카다시안 등 극소수 부자들이나 관심을 갖는 사치품으로 여겨졌던 벙커·패닉 룸(건물·가옥 내 안전실)이 독일 중산층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독일의 벙커 열풍을 조명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독일 베를린의 벙커 제조업체 BSSD는 벙커를 사겠다는 전화를 하루 약 1000건 받은 적도 있다. 2014년에 설립돼 직원 100명을 둔 이 회사는 우크라이나 전쟁 시작 당시만 해도 독일 내에서 개인용 벙커를 만드는 유일한 회사였다.
설립자인 마리오 피에이데는 이코노미스트에 "더 많은 독일인이 전쟁이 통제 불능사태로 번질 것을 염려하면서 우크라이나전 이후 개인 벙커 주문이 평소의 3배로 늘었다"고 전했다. 그는 "과거엔 부유층이나 찾던 벙커를 이제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찾고 있다"며 수영장이나 차고를 만드는 대신 벙커를 만드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BSSD의 벙커 증 가장 작은 건 면적 9.6m²(화장실 포함)인데, 가격이 7만9000유로(약 1억1800만원)에 이르지만 물량이 동날 정도다. 특수 소재로 된 대형 벙커 중에는 침실·거실·주방을 갖춘 경우도 있다. 벙커보다 안전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한 패닉 룸은 최저가가 1만5000유로(약 2200만원)인데 이 역시 수요가 많다.
"공공벙커 다 지으려면 25년"
이렇게 독일에서 벙커 구매 붐이 분 건 냉전 이후 정부가 공공 벙커 관리에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3월 독일 도시·지방자치단체 협회장인 앙드레 베르게거는 공영방송 DW에 "독일에 더 많은 벙커를 건설해야 한다"면서 "냉전 당시 건설된 공공 대피소 2000개 중 현재 남아있는 것은 600개뿐이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독일 공공벙커가 수용가능한 인원은 48만명 수준이다. 다른 유럽 국가인 스위스와 핀란드 정부는 공공벙커로 각각 880만명과 550만명에 달하는 국민을 거의 모두 보호할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독일 국민 8400만명을 모두 보호하려면 21만개 이상의 대형 벙커를 건설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21만개를 다 지으려면 건설에 25년이 걸리고 1400억 유로(약 209조원)이란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앞서 독일 정부는 우크라이나전 발발 후인 2022년 4월, 유사시 대피 장소로 쓰일 벙커를 보강하고, 비상용 비축품을 늘리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현지매체 디벨트는 독일 정부가 공공 벙커 보강을 검토 중이며, 주차장·지하철역·지하실 등을 대피소로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전했다. 또한 의료 장비·보호복·의약품 등 비상시 비축 물품도 늘린다고 했지만, 국민을 안심시키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이런 상황 속에 정부에 손을 벌리지 않고 자체적으로 안전을 담보하려는 사람들이 늘었다. 벙커 수요가 늘면서 BSSD는 본사 외에도 지사를 두기 위한 채비에 나섰다. 독일에선 '저먼 쉘터 센트럴' 등 벙커 민간기업도 생기고 있다. 이밖에 모듈 주택을 건설하는 델타 모듈은 모듈 주택과 벙커를 같이 판매하겠다고 나섰다. 이코노미스트는 "독일인들은 자신만의 안전한 은신처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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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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