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이어 침착맨 딸 살해 협박…잡아봤자 벌금 100만원?
최근 유명인을 상대로 살해 협박 글이 온라인에 잇따라 올라오면서 경찰이 수사하고 있다. 지난해 7월 21일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 이후 온라인상 살인‧테러 예고 글이 다수 게시되면서 수사기관이 초강경 대응에 나섰지만 1년 만에 다시 유사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단순 협박 글의 경우 대부분 벌금형으로 풀려나 처벌 수위를 높일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12일 경찰에 따르면 경기북부경찰청은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뛰고 있는 축구선수 손흥민과 황희찬을 살해하겠다며 지난 9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협박 글이 올라온 것에 대한 입건 전 조사(내사)를 진행하고 있다. 해당 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로, 경찰은 글 게시자의 신원을 특정하고 있다.
공교롭게 같은 날 구독자 252만명의 유튜버 ‘침착맨(웹툰작가 이말년)’의 딸을 겨냥한 살해 협박 글도 온라인에 올라왔다. 누리꾼의 신고를 받은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지난 11일 해당 글이 올라온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해서 관련 자료를 받고 있다.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 등을 확인해 글 작성자를 추적하기 위해서다.
침착맨의 법률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영의 이혜윤, 정소영 변호사는 “수사기관에 신속하고 강력한 수사 및 신변 보호 요청을 드렸으며 게시자의 신원이 밝혀지는 대로 엄중한 법적 조처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신림역 사건 이후 경찰은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살인·테러 예고 글을 올린 혐의를 받는 298명을 검거하고, 이 중 28명을 구속했다. 대검찰청도 올해 1월 온라인상 살인 예고 글 등 불특정 다수를 위협한 혐의로 32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수사 등 행정력 낭비를 이유로 협박 글 게시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런 정부의 초강경 대응 기조에 따라 살해 협박·예고 범죄 건수는 감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관련 범죄로 검찰로 송치된 피의자는 지난해 ▶8월 52명에서 ▶9월 46명 ▶10월 40명 ▶11월 27명 ▶12월 15명으로 줄었다. 그런데 최근 다시 손흥민·침착맨 등의 피해 사례와 같이 유명인을 상대로 한 살인 협박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주로 언론 등에 자주 노출된 유명 인사가 타깃이 되고 있다”며 “가장 최근 접한 대상이 머릿속에 크게 남는 걸 심리학에서 ‘최신 효과’라고 하는데 이들을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대상으로 삼아 살인 협박 글을 쓰는 등 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구체적인 준비 행위가 없을 경우 무거운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점도 온라인상 살인 협박 및 예고 범죄가 계속되는 이유로도 꼽힌다. 지난해 7월 23일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대림역에서 특정 지역 출신 사람을 살해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모씨는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신림역에서 여성 20명을 죽이겠다’고 예고하는 글을 올렸다가 재판에 넘겨진 이모씨도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신민영 법무법인 호암 변호사는 “온라인 살인 예고 글은 (게시자가) 칼을 직접 사거나 상대방의 동선을 탐문하는 등의 구체적인 행위가 없었다면 살인예비죄를 적용하는 게 어렵다”며 “피해자 입장에선 신변의 위협을 받는 건데도 피의자는 협박죄 정도가 유죄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통상 협박죄 초범의 경우 100~500만원 수준의 벌금형에 그친다.
박사훈 법률사무소 A&P 변호사는 “구체적인 준비 행위 없이 이뤄진 살인 예고라도 누구나 볼 수 있는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것이라면 불특정 다수가 사회적 공포를 느낄 수 있다”며 “이를 엄격히 처벌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어렵게 범인을 잡고 보니 ‘장난이었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아서 수사력이 낭비되는 걸 막을 수 없다”며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사전 예방 교육 및 엄격한 법 집행·법 개정을 통한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현직 검사도 “장난으로 살인 예고 글을 썼다고 하더라도 무거운 처벌을 통해 비슷한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독일의 경우 온라인상 살인 예고를 일종의 혐오 범죄로 규정해 처벌한다. 독일 정부는 지난 2021년 4월 형법을 개정해서 온라인상 협박에 대한 처벌 범주를 넓혔다. 살인 협박 및 성 정체성 등에 대한 모욕·협박을 할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신혜연‧김서원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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