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역 참사에 '페달 블랙박스' 관심 급증…의무화 법안·리콜 과징금 감면책까지
국토부도 "페달 블랙박스 장착 업체는 과징금 감면"
'법 개정 마냥 못기다려' 선제적으로 장착하는 운전자들도
"페달 블랙박스보다 급발진 방지 장치 장착이 우선" 지적도
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참사로 인해 자동차 '페달 블랙박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가해 운전자가 '차량 급발진'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 차량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는 단 1건도 없고 모두 운전자의 조작 실수인 것으로 결론났기 때문이다.
자동차 운전자들은 "사고 상황에서 나의 조작 실수가 없었음에도 급발진이라는 것이 증명되지 않아 벌을 받게 된다면 억울하기 그지없을 것"이라며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직접 페달 블랙박스를 설치하는 것이 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국회에서도 페달 블랙박스는 자동차의 결함을 증명할 수 있는 중대한 증거자료가 될 수 있다며 이를 차량 제조시 의무화 해야 한다는 법안까지 제출됐다. 하지만 이는 자동차 제조회사의 비용을 상승시키는 요인이 될 뿐더러, 국내에 수입되는 자동차에도 이를 강제한다면 수출국과의 무역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어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12일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2년까지 운전자가 급발진을 주장한 사고는 766건에 달한다. 하지만 이중 급발진을 인정받은 사례는 현재까지 한 건도 없다.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2013~2018년 급발진 추정 사고 269건을 분석한 결과 75%인 203건의 사고 원인이 '운전자의 조작 실수'인 것으로 판정됐다.
하지만 운전자들은 "분명히 급발진은 일어날 수 있다"는 입장이 우세하다. 실제로 급발진 의심사고의 영상을 보면 자동차의 브레이크등이 점등돼있는 상태에서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모습이 심심치않게 발견된다. 브레이크등은 브레이크페달과 직접 연결돼 있어 브레이크등이 점등됐다는 것은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조작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자동차가 고속으로 질주한다는 것은 차량 결함으로 인한 오작동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급발진의 핵심은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지 않았음에도 자동차가 오류를 일으켜 스스로 속도를 내느냐다. 특히나 최근의 자동차들은 각종 편의사양을 넣기 위해 각종 전자장치의 사용비중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이런 전자장치가 전기·물리적 요인으로 오작동을 일으킨다면 급발진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운전자들도 적지 않다.
자동차 전문 커뮤니티인 '보배드림'의 한 이용자는 "30년 전만 해도 자동차 주행성능에 관여하는 전자장치가 전혀 없었고 모든 조작과 구동은 기계식으로 이뤄졌다"며 "그때는 급발진 사고라는 말이 나온 적이 없다. 자동차의 전자기계화가 진행될수록 급발진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 분명한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남겼고, 이 글에는 많은 이용자가 공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페달 블랙박스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법안도 국회에서 발의됐다. 법안은 자동차 제작 및 판매자 등이 차종, 용도, 승차인원 등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페달 블랙박스 장착을 의무화하고, 이를 어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법안을 대표발의한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은 "자동차 페달 블랙박스 설치 의무화를 통해 자동차의 급발진 발생 여부에 대한 논란이 해소될 것"이라며 "사고 원인에 대한 명확한 규명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데 기여하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또한 이날 완성차업체들과 회의를 갖고 페달 블랙박스 설치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국토부는 시청역 참사를 계기로 완성차업체들이 페달 블랙박스 장착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인책도 내놨다.
국토부 관계자는 "리콜 발생시 기업들은 안전 강화 노력 등 정상 참작 사유가 있으면 일부 과징금 금액을 감면받을 수 있다"면서 "페달 블랙박스 설치도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인정되도록 시행규칙을 개정하는 안을 제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법 개정을 마냥 기다리기보다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운전자들도 상당수다. 실제로 이날 각종 온라인 오픈마켓에서 자동차 용품을 판매순위를 검색한 결과 페달 블랙박스 상품이 지난달에 비해 순위가 급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페달 부분만을 촬영하는 상품도 있지만, 대부분은 차량의 전방과 후방에 더해 운전자의 발밑까지 촬영하는 3채널 상품이었다.
이날 한 자동차용품 유통업체 관계자는 "차량의 진행상태와 페달 조작상태를 동시에 기록할 수 있는 3채널 블랙박스의 판매가 지난주부터 부쩍 늘었다"며 "아무래도 9명이나 사망한 시청역 참사의 영향이 큰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페달 블랙박스가 보편화되면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 운전자 측이 결정적인 증거로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운전자들이 이렇게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한다면 자동차 제조업체에서도 마냥 버틸 수만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페달 블랙박스는 원인 규명의 도구일 뿐이며 급발진을 예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기술적으로 급발진 예방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미 일본에서는 차량에 '급발진 방지장치'가 보편화 돼 있다. ACPE(Acceleration Control for Pedal Error·페달오조작방지장치)라 불리는 이 장치는 주행 중 분당 엔진 회전수(RPM)가 크게 증가할 때 엔진 연료를 차단해 급발진을 막는 기술이다. 시내나 골목길 등 차량이 저속으로 움직일 때 가속페달을 힘껏 밟아도 속도가 곧바로 올라가지 않는다. 현재 일본에 판매되는 차량 93%에 페달오조작방지장치가 장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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