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80%, 한번은 감염…여성만 걸린다? 남성도 위험한 HPV
[HPV 습격] ① 남성 HPV 감염 오해와 진실
성 접촉을 통해 확산하는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의 습격은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성인의 80%는 일생 동안 한 번은 HPV 감염을 경험한다는 보고도 있다. HPV에 반복적으로 감염되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암에 걸린다.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암의 5%는 HPV가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성별에 상관없이 HPV 백신 접종을 강조하는 이유다. 한국은 2016년부터 만 12세 여아를 중심으로 2·4가 HPV 백신을 지원하고 있지만, 남녀 동시 HPV 예방은 전 세계적인 트렌드다. HPV 백신이 개발된지 17년이 넘은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38개국 중 미국·영국·호주·프랑스·독일 등 33개국이 성별에 상관없이 국가필수예방접종(NIP)으로 HPV 백신을 지원한다. 이중 28개국은 남녀 모두에게서 HPV 예방 범위가 넓은 HPV9가 백신으로 접종한다. 남성 HPV 감염과 관련한 오해와 진실을 짚어 봤다.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남성의 HPV 감염률은 낮다
(X) 남성이 여성보다 HPV에 덜 감염된다는 의학적 근거는 없다. 성 접촉으로 확산하는 HPV 감염은 성별·연령에 관계 없이 퍼진다. HPV는 첫 성적 접촉 이후 2~10년 안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다. 전 세계 25~29세 남성의 31%가 HPV에 감염됐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고도 있다. 미국에서는 25~49세 성인을 대상으로 HPV 감염 여부를 살펴봤더니 HPV 양성을 보인 여성의 비율은 35% 이상이었고, 남성은 45% 이상으로 나타났다. 여성보다 남성의 HPV 감염률이 더 높게 조사된 것이다. 참고로 여성은 자궁경부세포검사 등으로 HPV 감염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남성은 HPV 감염을 점검할 수 있는 선별 검사가 없어 상대적으로 확인이 어렵다. 그렇다고 남성 HPV 감염률이 낮다고 할 수 없다. HPV는 성 접촉으로 확산하는데 감염 여성의 HPV는 누구로부터 전달된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남성 HPV 감염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HPV에 감염되더라도 남성은 치명적인 암에 걸리는 경우는 드물다
(X) 대표적인 오해다. 국제인유두종협회(IPVS)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암의 5%는 HPV 감염이 원인이다. HPV 감염으로 남성이든 여성이든 암에 걸릴 수 있다. 그런데 HPV가 유발하는 여러 암 중 여성에게 호발하는 자궁경부암은 HPV 감염 여부를 선별 검사로 확인할 수 있지만, 남성에서 호발하는 구인두암·편도암 등 두경부암은 검증된 선별 검사법이 없다. 남성에서의 HPV 감염 위험성이 간과되는 이유다. 참고로 HPV에 감염됐다고 모두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1~2년 내에 자연적으로 소멸된다. 개인에 따라 고위험 HPV 감염이 반복·지속하면서 암으로 진행한다. 중앙대병원 이비인후과 이세영 교수는 “HPV의 공격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남성은 HPV 선별 검사(스크리닝) 등으로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만큼 오히려 더 적극적인 암 예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HPV 감염으로 인한 남성암 발생이 늘고 있다
(O) 최근 자궁경부암 스크리닝 확대와 여성 HPV 백신 접종 보편화로 자궁경부암 발생 건수는 조금씩 줄고 있다. 반면 HPV 감염에 의해 발생하는 남성암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12~2016년 HPV 7가지 유형의 구인두암 발생 모델에서 여성보다 남성에서 5배 더 흔하게 구인두암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미국의 2015~2019년 데이터 분석을 통해 HPV 관련 남성의 구인두암 발생률이 여성의 자궁경부암 발생률보다 높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대한요로생식기감염학회 임동훈(조선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회장은 “여성에 비해 남성은 HPV 백신 접종률이 낮다. HPV 감염에 의한 남성 구인두암, 생식기 사마귀 발생률이 여성에 비해 월등히 높고 시간이 가면서 그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며 “HPV 백신 접종을 통한 예방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HPV 감염이 남성의 생식 능력에도 영향을 준다
(O) 사실이다. HPV 감염은 정자수와 운동성에 영향을 줘 남성의 생식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2017~2018년 리투아니아의 한 대학병원 불임센터에서 체외수정 치료를 받는 100쌍의 부부로부터 정자 샘플을 분석한 결과 HPV에 감염된 남성은 정자에 문제를 보인 비율이 75%로 미감염 남성(43.8%)보다 30%p 이상 차이를 보였다. 남성의 HPV 감염이 정자 운동성에 유의하게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다. 특히 HPV에 감염된 남성은 정자의 DNA가 손상된 정자 유전자 분절지수(SDF)가 유의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SDF 지수가 높으면 유산율이 뚜렷하게 높아져 난임 위험이 커진다.
-HPV에 감염됐을 때 남성이 여성보다 자연 회복력이 낮다
(O) HPV 감염은 성생활을 시작한 이후 3~4년 이내 누적 감염률이 50%에 달할 정도로 흔하다. 일반적으로 HPV에 감염되더라도 자연 소실 되는데 성별에 따른 면역 반응 차이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 여성의 HPV 감염은 20대에 가장 높은 감염률을 보이다가 점차 감소하지만 남성은 10대 후반에 HPV 감염이 시작돼 감염률이 낮아지지 않고 지속하는 경향을 보인다. HPV 감염 이후 여성은 70% 이상에서 항체가 형성되지만 남성은 20~30%만 항체가 만들어진다고 알려진다. 남성은 HPV 감염에 의한 자연 항체 획득률이 낮다는 의미다. 다만 HPV 백신에 의한 항체 생성은 성별에 성관없이 거의 100%로 확인돼 HPV 백신에 대한 면역 효과는 동등하다. 의정부성모병원 비뇨의학과 배상락 교수는 “여성과 달리 남성은 HPV 감염에 지속 노출되는 양상을 보이지만 항체 형성이 비교적 낮다. 남성은 주로 표피의 가장 표층에 감염이 일어나는데, 이 바이러스를 인식해 항체를 형성해 자연 항체를 획득할 가능성이 여성보다 매우 낮다”며 “낮은 항체 형성률을 극복하고 HPV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남성의 예방접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HPV 백신을 여성에게만 접종해도 집단면역 효과를 얻을 수 있다
(X)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이지 않다. 집단면역의 효과는 접종 대상의 접종률이 매우 중요하다. 여성의 40%에게 HPV 백신을 접종하면 70년 뒤 남성 HPV 16형의 감염률이 36% 줄고, 여성의 80%가 HPV 백신을 접종하면 남성 HPV 16형 감염률이 86% 줄어들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그런데 여성 접종률이 50% 미만이면 집단면역 효과가 거의 없다는 보고도 있다. 전 세계에서 백신 접종률이 가장 높은 수준인 한국의 여성 HPV 백신 접종률은 60~70% 수준이다. 여성만을 대상으로 HPV 백신을 접종해 단기간에 효과적인 집단면역을 달성하자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남녀 모두에게 HPV 백신을 접종한 스웨덴 연구를 보면 HPV 백신 여성 접종률 45%와 남성 접종률 20~30%에서 접종했을 때 집단면역 효과는 여성에게만 HPV 백신을 접종했을 때와 비교해 20~30% 증가한다. 이런 집단면역 효과는 백신 대상이 아닌 다른 종류의 HPV에서도 관찰됐다. 남성도 NIP로 HPV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높아지는 이유다. 임동훈 회장은 “여성에게만 HPV 백신을 접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미래 세대의 건강을 위해 우리나라도 남성 HPV 백신 접종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예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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