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된 '박근혜 풍자화' 전,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다
[김성호 기자]
2017년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였다. 전년도 말 불거진 국정농단,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국회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지 겨우 한 달여가 지났을 때였다. 초유의 대통령 직무정지 사태 속 국회 로비에서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다. 시국비판 풍자 전시회, '곧, BYE'였다.
표창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주최한 이 전시는 그야말로 전국을 들끓게 했다. 특히 사전 공개 없이 전시 당일 로비에 도착한 그림 한 점이 화제의 중심에 섰다. 작품 제목은 '더러운 잠'.
에두아르 마네의 명작 '올랭피아'와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를 중첩시켜 재창조한 것으로, 중심에 누운 여자의 얼굴을 박 대통령으로, 뒤에 선 하녀의 얼굴을 최순실로 합성해 놓았다. 창 밖에는 침몰하는 세월호의 모습이, 누워 자고 있는 박 대통령의 몸 위엔 사드(THAAD) 미사일과 박정희 대통령의 얼굴 초상이 올려져 있었다.
국정농단과 세월호 침몰참사 당시 대통령의 행적, 사드로 대표되는 현안 등을 두루 비판하고 풍자한 이 작품은 의외의 논란으로 이어졌다. 대통령의 얼굴을 여성의 나신 위에 합성한 것이 성적 모욕이라는 주장이 일어난 것이다. 특히 진보진영에서조차 여성의 나체를 이용해 정치인을 비판한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거세게 일어난 건 주목할 만한 일이다.
▲ 황보람의 저니 책 표지 |
ⓒ 출판공동체편않 |
작년 말 발간된 <황보람의 저니>는 위 전시를 둘러싼 일련의 이야기와 관련해 미처 전해지지 않았던 사연을 전한다. 황보람은 당시 표창원 의원실의 보좌진이자 '곧, BYE' 전시의 기획자였다. 그리고 표 의원의 입장 발표 직후 의원실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당사자이기도 했다.
통보를 받고 그날로 의원실을 나와야 했던 그녀는 스스로 벼랑 끝에 선 것 같은 심정이었다고 말한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노동계의 말에 비로소 공감을 하였다는 이야기도.
천직일 수도 있었던 기자직도 던져 버리고 선택한 길이었는데 의도도, 예상도 못한 채 졸지에 벼랑 끝에 섰으니 삶에 자신이 없었다. 너는 페미니스트는커녕 여자도 아니라고 낙인찍힌 것 같았다. 받아들일 수 없었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었다. 외통수.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외통수였다. -96p
그녀는 받아들일 수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었다고 말한다. 전시회 기획 당시로 돌아가 다시 결정을 내릴 수 있대도 같은 결정을 하리라는 그녀에게 나는 깊은 공감을 표한다.
작품을 창작한 작가가 수차례 말하였듯, 작품의 근간이 된 '올랭피아'는 인간 여성이 나신으로 정면을 응시함으로써 시선의 주체를 여성에게 돌려놓은 미술사적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 상스럽다는 당대의 비난에 맞서 에밀 졸라가 이 작품을 옹호한 건 알려진 이야기다. 진실한 인간을 묘사하고 주체적 여성의 시선을 담았다고 말이다.
그녀가 전시장에 들어온 작품을 가려 받기라도 해야 했을까. 권력을 가진 정치인을 풍자할 수 있다는 건 민주주의의 힘이다. 표현의 자유는 예술의 본질이다. '올랭피아'는 인간 여성에게 주체성을 안긴 미술사적 걸작이라고 나는 본다.
그 모두를 알면서도 비판 앞에 무릎 꿇어야 했을까. 그로 인해 일순간에 직장을 잃었으나 그녀는 다시 돌아가도 그럴 수는 없다고 한다. 나는 그녀에게 지지를 표한다.
<황보람의 저니>는 기자였고, 보좌관이었으며,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황보람의 기록이다. 수시로 소속팀을 옮기는 운동선수를 가리키는 '저니맨'이라는 말처럼, 수많은 명함을 가졌다가 놓아버린(때로는 잃어버린) 작가 자신의 '저니' 이야기를 담았다.
한 층 한 층 쌓아 올려 써내려간 저니의 어느 순간에 저 유명했던 전시의 뒷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나는 그 부당함을 목도하면서도 그저 침묵했던 나를 반성한다. 책임 있는 이들의 비겁과 무지성적인 비판 가운데서 더 나은 역할을 할 수 있었고 해야만 했던 귀한 이가 무릎 꿇고 마음을 다치는 과정이 안쓰럽게 보인다.
언론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거듭 책으로 펴내고 있는 '출판공동체 편않'의 '우리의 자리' 시리즈 네 번째 권으로, 황보람을 고른 건 꽤나 흥미롭다. 앞서 소개한 다른 기자들과 달리 황보람은 쭉 언론인의 길을 걷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써내려간 기록 가운데는 한국 언론사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또 오늘날 언론의 병폐라 불러도 좋을 이야기가 생생한 사례와 함께 담겨 눈길을 끈다.
「"세월호 안 슬픈데 이상해?"... '공감 교육' 없는 사회의 비극」이라는, '공감 교육'의 필요성을 다룬 내용이었는데 당시 우리 회사에서 야심 차게 도입한 1면 '오늘의 기사'로 나가게 됐다. 다음 날 새벽, 신문을 본 <머니투데이> 홍선근 회장이 분노했다고 한다. 기사 말미에 인용된 정몽준 전 의원 아들의 트위터 내용이 화근이 됐다. 그 트위터를 사진으로 실은 편집기자는 감봉됐고, 기사는 즉시 삭제됐다. '오늘의 기사' 섹션도 폐지됐다. -43p
미처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뒷얘기
언론사에서 어떻게 기사가 검열되고 삭제되는지를, 언론인이 어떻게 깎여나가고 길들여지는지를 위 내용과 같은 구절이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일련의 국지전 끝에 결과는 참패. <연합뉴스> 사태는 회사에 치명상을 입혔다. 홍 회장이 연합뉴스 사장을 찾아가 글자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는 말이 돌았다. 뭔가 덜미를 잡혔을까. '정쟁'이 아닌 '정책'을 다루겠다며 야심차게 출범시킨 '한국 언론 최초 정책 전문 뉴스' <the300> (300이라는 숫자는 국회의원 정수에서 나왔다)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후배들의 독보적인 존경을 받았던 정치부장은 (일시적으로) 사표를 냈다. 어른이 그렇게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44p
한때 꽤나 흥미롭게 보았던 매체인 <the300>이 꺾여나가는 과정 또한 얼마쯤 솔직히 묘사한다. 창립멤버 중 한 명으로 이 매체의 프로젝트에 상당한 애정을 드러내던 그녀의 기록은 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언론사적 의의를 갖는다 생각한다.
수많은 언론과 언론인이 출입하는 국회이지만, <the300>이 진행한 프로젝트만큼 지속적으로 정책을 심도 깊게 다룬 매체가 없었단 점에서 이들의 좌초를 아프게 여겼던 나다.
애독자로서 그 상실이 여전히 실망스럽지만 뒤늦게나마 어느 어른의 눈물이, 어느 기자의 고통이 있었다는 사실이 위로 아닌 위로로 다가오기도 한다.
다만 <황보람의 저니>를 훌륭한 책이라고 추천하긴 민망한 구석이 있다. 저니맨이란 성격과 꼭 맞게 실린 글들이 응집력 있게 모여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 발췌한 것과 같이 곳곳에서 송곳처럼 뚫고 나오는 대목이 있었단 건 기록할 만하다.
개중에선 아직 아물었다 할 수 없는 상처와, 그리하여 충분히 깊이 열고 따져볼 수 없었던 기억들이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 정도로도 어느 기자, 또 보좌관의 절실한 발버둥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때가 있다. 곁에 선 이에게 관심을 갖고 좀 더 애정 담긴 시선으로 오래 바라보는 일, 때로는 손을 내밀고 때로는 고함을 치기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관심 갖고 보았던 어느 매체의 추락 가운데, 또 부당함을 알면서도 충분히 알아보지 않았던 어느 사건 가운데서, 거듭 분투하고 고투했던 황보람이란 인간이 있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그녀의 미래를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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