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호·이영표·이천수 이어 박지성도 협회에 직격 "참담한 기분…절차대로 감독 선임하겠단 약속 무너져"
[풋볼리스트] 김희준 기자= 선배 축구인들이 연이어 이번 감독 선임 사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7일 홍명보 감독은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 차기 사령탑으로 전격 내정됐다. 8일에는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가 브리핑을 통해 홍 감독 선임을 확정했다. 11일 홍 감독이 울산HD와 상호 계약 해지를 하며 공식적인 절차도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그러나 홍 감독 내정이 발표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대표팀 선임 과정에서 있던 논란들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애당초 외국인 감독 선임이 가까웠던 상황에서 급격하게 홍 감독으로 선회한 이유에 대해 납득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이 이사가 브리핑을 통해 스스로 감독 선임 프로세스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면접 없이 홍 감독을 선임했다고 밝히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력강화위원으로 있던 박주호의 양심적 폭로가 나왔다. 박 전 위원은 8일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이번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있었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짚었다.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는 동시에 일부 전력강화위원이 좋은 감독을 선임하기보다 국내 감독을 선임하거나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데 급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축구협회에 대한 규탄이 커졌다. 축구협회가 박주호를 비밀유지협약 위반으로 법적 조치까지 고려한다는 사실이 퍼지면서 이러한 비난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박주호의 선배 축구인들도 하나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영표는 여러 방송에 출연하며 '축구협회는 실력이 없고, 큰 변화가 필요하다', '다시는 축구협회를 믿지 못할 것 같다'는 등 강도 높은 발언으로 축구협회 행태를 비판했다. 이천수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못 났다, 선배들이. 축구인들이 멋있게 늙어야 하는데 멋없게, 얼마나 답답했으면 주호 같은 후배가 (그랬겠나)"라며 "사람이 그렇게 '짖으면' 한번 들어볼만하지 않나. 안 들어주니까 답답하다. (들어보면) 잘못됐다는 걸 알 텐데 왜 못 바꿀까" 하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박지성 역시 이번 감독 선임 파행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던졌다.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문화행사 'MMCA: 주니어 풋살'에 참여한 뒤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대표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가감없는 발언들로 축구협회에 직언했다.
우선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이 촌극으로 비화되는 상황에 대해 "첫 번째로 드는 감정은 슬픔이다. 한국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지금도 축구계에 있는데, 우리가 이거밖에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며 "가장 슬픈 건 답이 없다는 거다. 2002년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는 변했는데 그때와 달라진 게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이런 식으로 받았다는 게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한 기분"이라며 이번 사태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갔다고 평가했다.
축구협회가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고도 진단했다. 박지성은 "축구협회에서 일한다는 게 누구에게나 의미가 있고, 누구나 하고 싶어야 하는데 지금은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됐다.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현재 나온 사실만으로는 나올 수 없는 답을 받아들었다. 어떻게든 해결책을 제시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 멈춰 서서 한국 축구가 끝나는 걸 바라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결과적으로는 진실이 답이다. 이미 축구협회 신뢰는 떨어졌다.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거다. 회복하기 위해서는 진실을 말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절차대로 감독을 선임하겠다는 약속 자체가 무너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진 않을 거다. 사실에 입각해 투명한 과정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서 믿음을 쌓아나가야 한다"며 축구협회가 감독 선임을 절차대로 진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지성은 이번에 폭로를 통해 감독 선임 문제에 불을 지핀 박주호를 위로하며 회의 기간 내내 느낀 무력감은 절차대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축구협회가 좋은 인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제물로 소비하고 있다는 점을 짚으며 안타까워했다.
박지성은 또한 "한국 축구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이대로라면 한국 축구 대표팀을 넘어 유소년 축구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을 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몽규 회장이 어떤 조치를 취해서든 신뢰를 재구축해야 한다는 것도 강조했다. 박지성은 "체계가 바로잡혀 앞으로 나아갈 거란 기대감은 5개월 전에 끝났다"며 "장기적으로 협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재확립시키고 신뢰를 심어주는 게 우선이고, 그 과정에서 사퇴가 맞는 답이라면 그렇게 해야 하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소신 발언했다.
후배 선수들에게 미안함을 전한 박지성은 이번 발언을 한 이유에 대해 "박지성이라는 축구선수가 갖고 있는 책임이 있다. 이런 상황을 맞이했는데 아무 말도 안 한다는 건 한국 축구를 배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바뀔 거란 기대는 없다. 그럼에도 내 생각은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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