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차 도시농부, 장마철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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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규현 기자]
오락가락하는 장맛비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도시농부로 살고 있는 나는 장마철이 되면 온통 신경이 농작물에 쏠린다. '이 집중호우에 작물들이 무사할까?, 이 비바람을 작물들이 쓰러지지 않고 견뎌낼까?' 노심초사하는 농부의 마음으로 기상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장마에 배수로를 정비하고 두둑을 높여서 물 빠짐을 좋게 하는 등 나름대로 대비를 해 보지만, 대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역부족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한 다음에는, 평소 다듬고 가꾸어 온 농장과 농작물의 피해가 최소한으로 그치기를 바라면서 장마가 끝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집중호우나 강풍 같은 기상 조건에서는 농부가 아무리 대비를 한다고 해도 크고 작은 피해가 발생한다. 큰비가 내리면 하천이나 배수로를 넘친 물이 농장을 휩쓸고 지나가서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다. 농장의 토양이 유실되고 농작물은 물에 잠겨서 한 해 농사를 망친다. 강풍이 불면 키가 큰 작물들은 쓰러지거나 꺾이고 아직 여물지도 못한 열매들이 우수수 떨어져 못 쓰게 된다.
살아남은 작물들도 온전하지 못하고 각종 병충해로 작황이 나빠져서 농부의 시름을 깊게 한다. 올해는 우리 지역에 아직 큰비가 오지 않아 큰 피해는 없지만 장마는 진행 중이며, 끝나는 시점은 한참 멀어 보인다.
▲ 두둑의 물 빠짐이 좋지 않아 병든 토마토가 시들어 가고 있다. |
ⓒ 곽규현 |
엊그제 농장에 나가보니 고추와 토마토 몇 그루가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었다. 며칠 동안 내린 비로 인하여 물 빠짐이 좋지 않아 생긴 병인 듯하다. '아뿔싸, 토마토는 수확이 코앞인데 이럴 수가...' 토마토는 지금이 수확 시기라 얼마 전부터 먼저 익은 것은 따기 시작했고, 고추도 7월 하순부터 빨갛게 익은 것부터 따기 시작한다.
열매를 수확하는 작물들은 한꺼번에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먼저 맺어서 익은 것부터 순차적으로 수확하기 때문에 수확 기간이 길다. 수확하는 중에도 자라서 올라오는 새순에서는 계속해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 두 줄로 심어 놓은 고추가 병들어 뽑아낸 자리가 휑하니 비어 있다. |
ⓒ 곽규현 |
애써 키운 고추와 토마토가 주렁주렁 많이 매달려 흐뭇했던 게 얼마 전이다. 불과 며칠 사이에 익지 않은 시퍼런 열매를 매달고 죽어가는 작물의 모습을 보는 도시농부의 마음이 좋을 리 없다.
단순히 수확을 못하는 아쉬움, 그 이상의 무엇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농부에게 농작물은 자식처럼 소중하다. '자식 농사'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농부는 농작물을 자식 키우듯이 정성을 들여 가꾼다. 씨를 뿌리거나 어린 모종을 심을 보금자리를 만들 때부터 농부가 흘리는 땀방울은 그대로 농작물에 스며든다.
이른 봄부터 퇴비를 뿌려서 밭갈이를 하고, 비닐 멀칭을 하여 작물들이 자랄 수 있는 터전을 만든다. 작물이 자라는 상태를 보면서 알맞게 물을 주거나 거름을 보충하고, 작물의 성장을 방해하는 잡초를 뽑아주며 튼실한 열매가 맺도록 순지르기를 한다.
작물이 옆으로 쓰러지지 않고 제대로 자라도록 지지대를 세운다. 병충해를 예방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농사 고수의 유튜브를 보거나 검색하고 관련 카페에 가입하여 자료를 찾는다. 이웃에서 같이 농사짓는 사람들과도 수시로 작물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한다. 농작물에는 이런 농부의 수고가 녹아 있는 것이다.
▲ 필자가 가꾸고 있는 농장에서 각종 농작물이 자라고 있다. |
ⓒ 곽규현 |
나는 14년 차 도시농부다. 직장에서 은퇴하기 전에는 주말을 이용하여 작은 텃밭 농사 정도로 하다가, 은퇴 이후 작년부터는 텃밭 농장 규모를 확장했다. 농업경영체에도 등록하고 내가 사는 지역의 농협 조합원으로도 가입하여 제법 농업인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여전히 취미농 수준의 농사를 짓고는 있으나 은퇴한 이후로는 봄부터 가을까지 거의 매일 농장으로 출근하다시피 하다 보니 내가 가꾸는 농작물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이런 작물들이 호우와 강풍으로 위기를 맞을 시기에 접어들었으니 도시농부의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올해는 농작물이 큰 피해 없이 무사히 넘어가기를 바라지만, 그게 어디 농부의 뜻대로만 되는 일인가. 장마 기간에도 틈틈이 농장에 들러서 물길을 살피고, 작물의 상태를 확인하지만, 기상 악화로 언제 위기가 닥칠지 몰라 불안하다.
도시농부의 심정이 이럴진대, 농촌에서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농업인들의 심정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미 물폭탄으로 많은 피해를 입은 농가도 있다고 하니 그 심정을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렵다.
빠른 시일 내에 피해 복구가 이루어지길 바라며, 상처받은 마음도 빨리 아물었으면 한다. 아울러 앞으로 기상 악화로 인한 농작물의 피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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