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나 편리한 로켓배송, 과연 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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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연 기자]
어제는 쿠팡으로 멸균우유 6개를 주문해 오늘 받았다. 지난 일요일에는 냉동 도시락을 주문해 월요일 새벽에 받았으며, 며칠 전에는 샴푸를 주문해 역시 하루 만에 받아 사용했다. 금융 앱 토스에서는 가장 빈번하게 소비하는 분야를 분석해 소비 태그를 붙여주는데, '로켓배송 마니아'는 최근 몇 년간 떨어진 적이 없는 소비 태그다. 장바구니에는 머지않아 결제할 시리얼과 섬유유연제가 담겨있다.
대학생 때는 방학 중 야간 셔틀을 타고 물류창고에 출근하기도 했다. 컨베이어벨트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라인 사이에 서서 기계가 뱉어낸 송장을 확인하고, 표시된 위치로 가면 포장할 물건이 준비되어 있었다.
들고 자리로 돌아와 적당한 상자를 골라 테이핑 하고, 송장 뒤편의 스티커를 떼어 상자에 붙인 뒤 벨트에 던졌다. 분유와 아기 물티슈를 포장할 때면 잠들어있을 엄마와 아기를 상상했고, 방충망 보수 테이프와 청소포, 무드등을 포장할 때면 갓 자취를 시작한 청년의 설렘에 공감했다. 6~7년 전의 일이다.
언제부터인지, 쿠팡이 없을 때는 어떻게 살았었던가 하는 섬뜩한 생각이 들곤 했다. 당장 집에 음식이 떨어졌는데 마트에 갈 시간이 없을 때, 멀쩡한 무지 양말이 몇 개 남지 않았을 때, 갑작스레 친구의 생일이 다가왔을 때 로켓배송보다 나은 선택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사실, 더 나은 것은 고사하고 원래 어떻게 했었는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로켓배송을 가능하게 하는 와우 멤버십 가격이 월 2900원에서 4990원으로, 이젠 7890원으로 늘어나며 무시할 수 없는 고정지출로 자리 잡으니 이 섬뜩함은 더 크게 느껴졌다.
지난 5월에도 쿠팡으로 쇼핑했다. 우유와 시리얼, 요구르트 등 1인 가구의 식료품과 액정보호필름, 세제, 영양제를 샀는데, 대략 20만 원은 썼을 것이다. 그달 28일은 내 생일이기도 했는데, 그날 쿠팡 택배 노동자 정슬기 씨가 과로로 사망했다는 것을 며칠 전 <오마이뉴스> 기사로 알았다(관련 기사: "할아버지, 우리 아빠가 로켓배송 '연료'가 됐대").
▲ 쿠팡은 유족에게 사죄하고 재발방지대책 마련하라! 서울지역 시민사회단체가 10일 오전 서울 중랑구 상봉역 1번출구에서 '쿠팡 로켓배송 택배노동자, 고 정슬기님을 추모합니다. 쿠팡은 유족에게 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 마련하라! 쿠팡 규탄 서울지역 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고 정슬기씨의 배송구역이었던 서울시 중랑구 상봉동, 상봉역 1번출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은 고인의 로켓배송 업무는 "물품을 싣는 캠프와 배송지의 편도거리는 약 20km로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100km가 넘는 거리를 오가야 했으며, 아침 7시까지 그날 할당된 물품을 모두 배송해야만 하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참혹한 노동이었다"라며 "쿠팡의 유족에 대한 사과, 재발방지대책 마련, 책임회피에 급급한 쿠팡 규탄" 등을 촉구하고 고인을 추모했다. |
ⓒ 이정민 |
그는 대리점에서 물량이 많이 남았으니 달려 달라는 문자를 받고, 개처럼 뛰고 있다는 답장을 보냈다. 쿠팡 본사는 그의 죽음을 하청 대리점의 문제로 미루고 본사의 책임을 부정했다. 누군가 정리한 걸 보니 2020년부터 열 명이 넘는 택배 노동자의 사망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간 '쿠팡의 편리함이 느림의 미학을 앗아간다'는 투의 글들에 조소하던 나다. 활발한 기업활동으로 생활이 편리해지면, 며칠에 한 번 장 보는 수고가 덜어지면, 나는 그 편리함과 절약한 에너지를 딛고 더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냐는 심산이었다.
빠른 배송 속 택배 기사들의 노고와 과로가 조명될 때도, 나는 그들이 합리적인 경제활동 중임을 의심치 않았다. G마켓과 SSG, 네이버 등 다른 모든 쇼핑몰이 힘을 내서 더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를 더 저렴하게 내어주길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거대한 법인(法人)들은 스스로 얼마나 비인간적일 수 있는지만을 증명하려 애쓰는듯하다. 몇 년 전 제빵기업 SPC에서 샌드위치를 배합하던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그리고 그 사고 자리를 천으로 대충 가린 후 기계가 다시 가동되었음을 알았을 때 나는 한동안 샌드위치를 먹지 못했다. 이번 사건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최근 쿠팡은 순위 조작에 매겨진 공정위의 과징금에 항의하며 "이런 식이면 앞으로는 로켓배송이 없어질 수도 있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단다. 불법과 부정을 용인해 달라는 근거로 나와 같은 이들이 볼모로 활용된 것이다. 편리함에 취해 쿠팡 없이 살 수 없게 된 내가, 온갖 부도덕함의 동력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려운 동시에 미안해졌다.
그럼에도 학습된 편리함은 얼마나 강력한지. 착취된 노동자와 기업의 부도덕함을 애써 외면하고 싶은 듯하다. 쿠팡을 끊었다고 일침 놓는 댓글을 보면, 나는 그 진의를 의심하면서 열심히 부채감을 희석하기도 한다. 정말? 이렇게 편한데? 급한 물건이 필요할 때는 어쩌려고?
나는 부끄럽게도, 편안함과 도덕적 책임감 사이에서 여전히 갈등 중이다.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존엄이 이토록 취약한 도덕적 책임감에 기대야만 하는 것인지에도 생각이 이른다.
이러나저러나, 쓰던 멤버십을 중단하고 쿠팡 앱을 삭제하기에는 아직 용기가 부족하다. 얼마나 많은 부조리를 목격해야 충분한 용기가 생길지 모르겠다.
나는 과연 쿠팡을 지울 수 있을까. 일단은 장바구니의 섬유유연제와 시리얼을 삭제하고 마트를 방문하는 것부터 시작해 본다. 이 작은 꿈틀거림이 더 높은 곳에 닿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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