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갈아쓰는 야간 노동의 나라... 이대로는 안 된다
[정흥준]
▲ 야간 근무는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 |
ⓒ unsplash |
저녁 무렵 산책하다 보면 무리를 지어 달리는 사람들을 만난다. 검은색 또는 흰색으로 옷도 통일하고, 발걸음을 맞춰 경쾌하게 달린다. 대부분은 젊은 사람들이다. 젊은 사람들도 건강을 생각해 운동을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실제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인상적이다.
요새 들어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삶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그중 하나가 '잠'이다. '적어도 7시간은 잘 자야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 '11시 전에 자야 숙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이 활발하게 분비된다', 심지어 '충분히 자야 살이 찌지 않는다' 등 잠과 건강 간의 관계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나 역시 11시 전후에 잠들어 6시 반경에 일어날 때 컨디션이 좋았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자야 할 때 잠을 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야간에도 일을 해야만 하고 누군가는 굳이 야간에 일하지 않아도 되는데 일하기도 한다.
야간에만 일하는 직업, 무엇이 있나?
야간에만 일하는 직업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구직사이트 검색창에 '야간전담'이란 단어를 입력해 보았다. 총 215개의 일자리가 나타났다. 유형별로 나눠보니 첫 번째는 제조업 생산직 일자리인데, 저녁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일하는 형태였다. 두 번째는 야간전담 간호사를 구하는 구인 정보였다. 세 번째는 시설 관리직으로 주로 경비·보안 등의 일자리였다. 저녁 8시부터 다음날 8시까지 12시간을 일하는 데 3시간의 휴게시간을 보장한다고 나와 있었다. 네 번째 유형은 새롭게 생겨나는 일자리였는데, 야간에 공유자전거나 퀵보드를 수거하거나 배터리를 교체하는 일이었다. 근무시간은 새벽 3시부터 오전 11시까지였다.
이 외에도 쿠팡 물류센터 야간 일자리도 모집 중이었다. 대한민국 국민 1000명 중 한 명이 쿠팡에서 일한다는 광고 문구도 포함되어 있었다. 구인 광고에는 야간전담 일자리가 주간 근무에 비해 20~30만 원 정도 야간수당이 추가된다고 설명되어 있지만, 그래도 고임금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야간 노동 임금은 280만 원 전후였다. 이 중 반드시 야간노동이 필요한 일자리는 아마도 병원 정도일 것이다.
야간에만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매우 소수는 야간에 일하는 것을 즐길 수 있으나 대부분은 낮에 일하고 저녁에는 쉬고 싶어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은 고립된 삶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데서 행복을 느낀다. 친구를 만나고, 취미를 갖고 가족을 꾸리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낮에 일하고 저녁에 쉬는 생활 패턴이 중요하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도 '잠이 있는 저녁'이 필요하다. 야간노동이 우울증, 심혈관질환 등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음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반복적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야간전담 노동은 야간에 일하고 싶은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야간에도 일하도록 만들어 놓은 기업의 생산구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기업은 야간노동을 활용해 제품을 생산하거나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이를 위해 야간노동을 거부할 수 없는 취약한 노동자를 모집한다.
야간전담 노동자 중에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낮에 일하고 잠시 쉬었다가 저녁에도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가족 돌봄 등으로 낮에 일할 수 없거나, 주간 일자리를 찾지 못한 노동자도 포함된다. 어쩌면 이들은 노동력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마지막 보루인 건강도 싼값에 팔고 있을지 모른다.
야간노동, 왜 늘어나나?
야간노동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 발전, 병원, 공항 등 공공서비스 영역이 대표적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과 관련된 야간노동은 불가피하다. 다만, 야간노동이 증가하는 것은 공공서비스 때문이 아니다.
야간노동 증가는 생산량과 고객 편의만을 우선시하고 노동자의 건강은 아랑곳하지 않는 기업의 속성 때문이다. 기업은 새로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려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배송서비스이다. 새벽배송, 로켓배송, 익일배송 등은 소비자의 시간을 줄여주는 대가로 돈을 벌지만, 이면에는 밤에도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 노동자의 희생이 필요하다. 새벽배송만이 아니다. 24시간 운영되는 상점이나 헬스클럽도 비슷하다.
제도적 허술함도 늘어나는 야간노동에 기여한다. 우리나라 법에는 야간에만 전담해서 일하더라도 별다른 제약이 없다. 주간노동과 같은 규제(하루 8시간, 주 40시간)만 지키면 된다. 해외의 경우 야간노동만 전담하는 경우는 거의 찾기가 어려우며, 주야 교대근무를 하더라도 야간노동 시 건강검진을 필수로 진행하고, 어린 자녀가 있거나 가족 돌봄이 필요한 경우 주간 업무만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가장 약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야간노동을 전담하도록 떠넘기고 있다.
야간노동을 줄일 수 있을까?
야간노동을 줄일 수 있을까? 당연히 가능하다. 우선, 인간의 몸과 마음을 모두 피폐하게 만드는 야간전담 노동은 금지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일정 기간 이상 연속해서 야간노동을 하지 않도록 규정하면 된다. 특히 정규직은 주간 근무만 하고 일용직이나 특수고용 노동자를 활용해 야간전담을 하도록 하는 야간노동의 외주화는 경계해야 한다. 야간에도 꼭 일할 필요가 있다면 교대제로 운영하는 것이 그나마 타당한 방식이다.
둘째, 단계적으로 야간 영업시간을 줄여야 한다. 우선 지하철, 버스 등 공공영역의 영업시간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심야 운행은 자제하는 방향을 고려할 수 있다. 또한 민간 부문도 대형 상점이나 마트는 심야영업은 중단하고 영업시간도 줄여 나가야 한다. 사적 부문의 경우 재산권 침해를 주장할 수 있으나, 개별 기업의 이윤이 시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할 수 없으므로 적극적인 제도 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새벽에 일하는 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개인들은 소비자로서 나의 편리함을 위해 야간노동자의 건강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정부도 야간노동에 대해서는 엄격한 근로감독과 휴게시간 보장을 통해 기업 스스로 비용이 많이 드는 야간노동을 포기하고 가급적 주간 업무를 설계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면 늘어나는 야간노동의 폭주를 충분히 막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흥준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장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 일터 7월호에도 실립니다. 한노보연 후원 문의 : 02-324-8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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