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이 파리에 특사단을 파견하는 이유

황상현 2024. 7. 12. 14:5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고] 황상현 탈시설장애인당 공동대변인... 왜 지금 파리 패럴림픽인가?

[황상현, 탈시설장애인당 공동대변인]

 
(에이블리즘은) 어떠한 종(種, species)만이 본질적이고 완전한 인간이라는 특정한 종류의 자아와 몸을 만들어내는 신념, 과정, 실천의 체계이다. 장애는 인간의 위축된(diminished) 상태에 포섭된다.
(Campbell, 2001, p. 44)
 
우리는 에이블리즘(ableism, 비장애중심주의)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에이블리즘은 내면의 믿음부터 개인 간 관계, 사회 구조, 국제 질서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문화 등 전 사회 영역에 침투하여 은밀하게 작동한다. 이상적인 몸과 정신에 대한 믿음은 '정상'과 '비정상', '안'과 '밖', '우리'와 '그들'이라는 경계를 만들어 장애 억압과 배제를 정당화한다. 안티에이블리즘(anti-ableism)은 우리 주변에 은폐된 에이블리즘을 알아차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패럴림피즘과 에이블리즘

패럴림픽 무브먼트(Paralympic movement) 역시 재해석의 대상이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는 장애인스포츠 확산을 통한 포용적인 세계(Inclusive world) 구현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IPC Handbook, 2023). 국내외〮 수많은 책자들과 연구물들은 패럴림픽 무브먼트가 포용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보고한다. 패럴림피즘(Paralympism: 패럴림픽 정신, 또는 패럴림픽 철학)은 패럴림픽 무브먼트를 통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그러나 패럴림피즘이 에이블리즘과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는지, 또 역사적으로 패럴림피즘과 에이블리즘이 어떠한 이데올로기와 공명하며 발전해왔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장애인운동(Disability movement)의 역사에는 패럴림픽 무브먼트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는 국내외〮 모두 유사한 양상으로 두 운동의 관점과 목표에 차이가 있음을 시사한다.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국제 컨퍼런스에서 나타난 두 운동 사이의 긴장은 이러한 차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패럴림픽 전문가들은 패럴림픽 무브먼트의 효과와 의미를 강조했지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공동대표 박경석은 한국 내 장애인 차별과 억압 문제를 지적하며 상반된 입장을 드러냈다.
 
▲ 2012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 2012년 8월 29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패럴림픽 개막식 오프닝 공연 모습.
ⓒ EPA/연합뉴스
영국의 패럴림픽 유산 프로젝트(National Paralympic Heritage Trust) 매니저 비키 홉워커는 2012 런던하계패럴림픽(런던 패럴림픽)이 영국 대중의 인식을 급진적으로 변화시켰다고 언급했다(최한별, 2018). 실제로도 런던 패럴림픽은 패럴림픽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대회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영국의 장애인운동계와 정반대이다. 런던 패럴림픽 준비 과정에서 영국 정부는 장애인을 세금 도둑으로 몰아세워 장애인 복지 예산을 삭감했고, 이는 장애인의 자살률이 급증하는 결과로 이어졌다(Crow, 2014).

장애인운동의 비판에는 성찰할 지점이 있음에도 패럴림피즘은 '포용사회 구현'이라는 규준에 부합하는 이야기만을 선별하여 패럴림픽 역사 '안'으로 포함시킨다. '안'에서 '우리'가 이끌어가는 역사는 '밖'에 있는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면서 내적 질서를 유지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패럴림피즘은 패럴림픽 무브먼트로 인해 야기되었던 억압을 은폐하며 권력을 존속시킨다.

'우리'를 선별해내는 패럴림피즘

패럴림피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우리'를 선별하는 기능으로 작동하고 있다. 대부분의 장애 관련 연구물과 보고서는 1988년 서울하계장애자올림픽(서울 패럴림픽)을 장애인 복지의 중요한 기점으로 기록해 왔다. 대표적으로 최근 출간된 '어둠을 뚫고 새벽을 열다'(차흥봉, 박삼옥, 안이문, 2022)는 서울 패럴림픽을 설명하면서 장애인 복지 패러다임 전환, 비장애인(전문가 또는 국가)의 헌신, 장애 극복 등의 전형적인 패럴림픽 서사를 반복하며 오늘날의 에이블리즘과 결을 맞추었다. 패럴림피즘은 비장애 중심의 내러티브를 끊임없이 불러와 재기술하며 권력을 견고하게 하고, 시혜자의 정체성을 가진 이해관계자들에게 '우리'라는 동질성을 재확인시킨다.

반면, 연동교회 점거 후 단식 농성(3월 28일), 최초의 대중집회인 장애인권익촉진 범국민결의대회(4월 16일), 88장애자올림픽조직위원회 점거투쟁(7월 2일), 기만적인 장애자올림픽 폭로 및 장애인 인권쟁취 결의대회(10월 9일) 등은 서울 패럴림픽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사건임에도 여전히 패럴림픽 역사에서 다뤄지지 않는다.

물론, 이 시기 장애인 활동가는 영웅도 아니었고, 장애인운동은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킬 만큼 체계적이거나 영향력이 있지 않았다. 다만, 여기서 주목해야하는 것은 패럴림피즘과 에이블리즘이 결합하여 권력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서울 패럴림픽은 다수의 장애인의 권리를 묵인하며 개최된 행사였음에도 그 성공의 서사는 지금까지 균열 없이 에이블리즘을 공고히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패럴림피즘은 "장애인의 역량을 강화하여 장애를 극복하도록 지원하고, 개최국의 사회 통합을 촉진하여 진보적 변화를 이끈다"라는 믿음을 만들어낸다. 대부분의 시민은 패럴림피즘의 헤게모니에 자발적으로 동의한다. 에이블리즘에 기초하여 세워진 사회 체계에서 '장애 극복'과 '사회 진보'는 모두 긍정적인 신호로 표상되므로 반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패럴림피즘은 비장애인 시민들의 직간〮접적인 지지를 동력 삼아 유지되고 확산된다.

하지만 문제는 패럴림피즘이 패럴림픽 무브먼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통합사회 실현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문화적 우월성을 은연 중에 내면화시킨다는 점이다. 사회 진보를 이뤄내고 있다는 공동 의식은 매우 은밀하게 '우리'를 빚어낸다. 반대로 패럴림픽 무브먼트에 참가하지 않는 장애인 커뮤니티와 일부 시민들은 '그들'로 호명된다. 패럴림피즘은 차별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우리'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열등한 '그들'의 배제를 정당화한다. 패럴림피즘이 말하는 포용은 에이블리즘에 저항하는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 아닌, 에이블리즘에 동화된 사람들을 식별하기 위한 언어적 수사에 가깝다.

역사적으로 패럴림피즘의 등장은 제국주의, 식민주의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우월과 열등이라는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전략은 전형적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통치 논리이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는 '오리엔탈리즘'에서 서구의 헤게모니가 동양의 후진성뿐만 아니라 유럽의 우월함을 반복하면서 그 권력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해낸다고 말했다(Said, 1978).

일본 제국주의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동일한 전략을 적용했다. 그들은 제국주의적 침략과 식민지 수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야마토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했으며, 그 근거로 다른 아시아 국가들보다 빠르게 달성한 근대화와 문명화를 내세웠다. 반대로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은 미개하고 열등하다고 규정했다(Choi, 2003). 일본 제국주의에 동조하였던 일부 식민지 조선인들은 일본 제국으로부터 정상적인 몸으로 인정받았고, 그들은 식민권력과 하나된 정체성을 통해 제국의 우월성을 공유할 수 있었다.

박정희가 장애인 스포츠를 육성한 이유
 
 지난 1월 2일 아침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제56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 활동가와 시민들을 가리지 않고 시위에 참가한 이들을 승강장 밖으로 끌어냈다.
ⓒ 복건우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 역시 통치 질서에 일치하는 사람들을 국가 제도 안으로 포섭하고, 동질성과 우월함을 느끼도록 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국가 재건과 민족 중흥을 이루기 위해 반공주의를 가장 강조했던 두 정권은 사회주의를 전염병으로 정의하며 북한 체제의 열등함과 남한의 우월함을 부각했다. 또한, 개인과 민족, 개인과 국가가 완전히 합치된 통치 이데올로기 아래, 이승만과 박정희는 민족과 국가의 번영에 기여하는 자들에게만 한정적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부여했다.

특히 장애 영역에서 선택과 배제의 기술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승만, 박정희 정부는 원호정치를 펼치며 전체 장애인 중에 일부 상이군경에게만 사회서비스를 제공했다. 상이군경의 몸은 그 자체로 반공주의의 상징이자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우월함을 재현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유용성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게 원호정치는 상이군경에게 실제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보다 국가의 자비로움을 보여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국가는 예산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이군경의 수를 줄이는 데 집중했다(박은영, 20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호정치는 전체 장애인 중 통치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소수만을 선별하여 국가 제도 안으로 편입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장애인 스포츠의 등장도 이러한 정치사회적 맥락과 궤를 같이 한다. 패럴림픽 무브먼트는 1965년 국제척수장애인체육대회에 처음 참가한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선수는 상이군경이었으며, 소수의 엘리트를 집중적으로 양성하는 구조였다. 정부는 국제 대회 참여를 지원하고 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에게 국민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장애인 스포츠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복지 서비스가 전무했던 다른 장애 영역과 예산 삭감을 목표로 이루어진 원호 정치와 비교할 때 매우 이례적이었다. 이는 장애인 스포츠가 박정희 정권의 국시였던 반공주의와 성과에 따라 보상을 극대화하는 차별적 발전 논리에 부합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패럴림픽 무브먼트에 참여하는 것은 제국주의 이후 모든 우월함의 근원인 서구 사회와 부분적이나마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시에 한국 사회가 후진성을 벗어나고 있다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이를 통해 장애인 복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담론을 형성하고, 정권의 정당성과 자비로움을 국내외에 선전할 수 있었다.

장애인운동사의 관점에서 대한민국은 에이블리즘에 기반한 통치 이데올로기를 기준으로 지속적인 포섭과 배제의 기술을 펼치며 장애인을 철저히 타자화하며 발전해왔다. 정부는 국가 제도 안에 속한 사람들에게 우월한 '우리'라는 공통감각을 부여하고, 국가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는 열등한 '그들'을 문화적으로 다른 인종으로 간주하여 배제를 정당화했다. 우리나라 패럴림피즘 역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영향을 받은 비장애 중심의 통치 질서와 공명하며 등장했다. 다시 말해, 패럴림피즘은 장애인의 보편적인 권리를 보장하기보다 비장애 중심의 사회를 견고하게 유지시키는 여러 이데올로기와 결을 맞추며 성장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장애인운동과 패럴림픽 무브먼트는 마찰을 발생시킨다.
 
 2017년 9월 14일, 파리의 에펠탑이 내려다보이는 트로카데로 광장에 올림픽 성화가 설치돼 있다.
ⓒ AP=연합뉴스
 
올해 여름, 파리에서 하계 패럴림픽이 개최된다. 파리는 제국주의 권력을 전 세계로 퍼뜨린 서구 열강의 본거지다. 이곳에 전장연은 특사단을 파견한다. 한국 사회 밖에 있는 '그들'이 세계 질서를 (재)생산했던 제국주의 심장부를 타격하러 가는 것이다. 전장연의 파리 특사단 파견은 에이블리즘의 근간이 되는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와 백인우월주의(White Supremacy)에 대한 불복종의 행위이자, 장애인운동의 국제적 연대를 도모하는 저항적 외교의 실천이다. 그들은 패럴림픽이라는 국제적인 외교 공간에서 네팔의 장애인 권리 운동과 연대하며 전 세계적으로 권력을 행사해온 제국주의와 결탁한 에이블리즘의 존재를 드러낼 것이다.

어쩌면 특사단보다는 '특공대'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 모른다. 그들의 행위와 목소리에는 한국 내 장애인 억압을 알리는 것을 넘어 장애 차별의 근원을 흔드는 안티에이블리즘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에이블리즘은 신제국주의, 신식민주의와 연동하며 외형을 바꿔 진화하고 있다. 이번 전장연의 특공대 파견은 에이블리즘 해체와 함께 서구 중심의 권력이 만들어낸 억압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전세계에 던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참고문헌>
박은영 (2022). 1950∼60년대 상이군인의 이중적 입지와 일상 전략. 사학연구 (148). 263- 302. https://doi.org/10.31218/TRKH.2022.12.148.263
차흥봉, 박삼옥, 안이문 (2022). 어둠을 뚫고 새벽을 열다. 온북스
최한별 (2018). 막 오른 '평창 패럴림픽 국제 컨퍼런스', 장애인 사회통합 다방면 모색한다. 비마이너, 2018.03.08,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11953
Campbell, F, K. (2001). Inciting Legal Fictions: 'Disability's' date with Ontology and the Ableist Body of Law. Griffith Law Review. 10, 42–62. https://research-repository.griffith.edu.au/server/api/core/bitstreams/bdf45182-e5b6-59f6-8285-2c44ad749a65/content
Choi, J. B. (2003) Mapping Japanese Imperialism onto Postcolonial Criticism, Social Identities, 9(3), 325-339, DOI: 10.1080/1350463032000129957
Crowe, L. (2015). Summer of 2012: Paralympic Legacy and the Welfare Benefit Scandal. Review of Disability Studies, 10 (3-4). https://rdsjournal.org/index.php/journal/article/view/465
International Paralympic Committee (2023). IPC Handbook. https://www.paralympic.org/sites/default/files/2024-04/FINAL_IPC%20Constitution%20%28ENGLISH%20VERSION%29_16.11.22_Apr24.pdf
Said, E. W. (1978). Orientalism. Penguin

*********************

이 글을 쓴 황상현 탈시설장애인당 공동대변인은 한국체육대학교에서 특수체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캐나다 앨버타대학교 박사후 연구 과정에 있습니다. 탈시설장애인당 https://drparty.or.kr/31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