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압도적 핵응징 첫 문서화…글로벌 안보협력 격상시킨 尹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일정을 마치고 11일(이하 현지시간) 귀국길에 올랐다. 2박 5일 동안 하와이와 워싱턴DC를 순방한 윤 대통령은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밀착하는 안보 위기 상황에서 글로벌 안보 협력을 한층 강화하는 데 주력했다.
이번 미국 방문에서 특히 주목받는 성과는 11일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때 채택한 ‘한·미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에 관한 공동 성명’이다. 양국 정상은 확장억제 협의체인 한·미 핵협의그룹(NCG)이 지난 1년여 동안 논의한 공동지침 문서를 승인했는데, 여기엔 북한이 선제 핵 공격을 할 경우 한·미가 미국의 핵무기와 한국의 재래식 무기체계를 통합해 북한에 응징 보복을 가하는 절차 등이 담겼다. 한·미가 함께하는 일체형 확장억제 시스템이 구축된 것으로 미국 핵자산이 북핵 억제와 북핵 대응을 위한 임무에 배정될 것이라고 문서에 명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현지 브리핑에서 “양국 정상은 한국에 대한 북한의 모든 핵공격은 즉각적·압도적·결정적 대응에 직면할 것임을 재확인했다”며 “(미국이) 동맹국 한국에 제공하는 특별한 공약”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4월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당시 양국 정상은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담은 ‘워싱턴 선언’을 채택했고, 이에 따라 NCG가 출범해 지난해 7월부터 가동됐다.
10일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에서 북·러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 체결 등 군사 협력에 우려를 표하며 공동 대응을 약속했다. 지난 5월 한·일·중 정상회의 이후 45일 만에 기시다 총리를 다시 만난 윤 대통령은 “(최근 북·러의 밀착은) 한·미·일의 캠프 데이비드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일 정상은 지난해 8월 미 대통령 전용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모여 군사 협력을 강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윤 대통령은 10~11일엔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취임 첫 해부터 3연속 참석이었다. 인도·태평양 파트너 4개국(IP4,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정상 자격으로 초청된 윤 대통령은 11일 나토 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의에 참석해 “유럽과 인·태 지역의 안보를 동시에 위협하는 북·러 군사 협력을 포함해 북한의 군사력 증강에 도움을 주는 모든 협력을 철저한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한 한국과 나토 간의 군사 협력과 정보 공유도 강화됐다. 김태효 1차장은 “점증하는 북·러 군사 협력에 대응해 우크라이나 전장의 북한 무기에 관한 정보 등 한국과 나토 간 정보 공유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초청국 정상 자격이지만 윤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의에서 개최국인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발언권을 얻으며 한국의 글로벌 위상이 재확인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최근 우리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제공도 가능하다고 시사한 만큼 북·러 밀착에 대한 윤 대통령의 입장에 주목하는 외신 기사도 잇따랐다. 특히, 미국 블룸버그는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윤 대통령을 평가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회의 때 무기 지원 관련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에너지·보건·교육·인프라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우크라이나 국민이 꼭 필요로 하는 지원을 계속할 것이며, 또 이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IP4 정상회동에선 “역내 가치 규범 질서를 수호하는 안전판이 되자”는 윤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북·러의 불법적 군사 협력에 맞선 국제 공조를 촉구하는 4개국 공동성명이 발표되는 성과를 거뒀다. 이 회동 뒤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4개국 정상의 회동이 이어졌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속적인 연대와 지원을 요청했다.
윤 대통령은 워싱턴DC에 머무는 동안 미국과 일본을 포함해 독일·캐나다·네덜란드·스웨덴·체코·핀란드·노르웨이·영국·폴란드·룩셈부르크 정상과 양자회담을,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면담을 진행했다. 체코·네덜란드·핀란드·스웨덴과의 정상회담에선 신규 원전 건설 때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며 세일즈 외교 행보도 이어갔다.
윤 대통령은 나토와 미국·유럽 5개 싱크탱크가 공동 주최하는 나토 퍼블릭포럼의 인도·태평양 세션에선 나토 측이 초청한 학계 전문가, 전직 외교·안보 관료 350여명 앞에서 “강압을 통한 현상 변경 시도를 차단하는 유일한 방법은 동맹과 우방국이 압도적인 힘을 갖추고 단결하는 것”이라고 연설했다.
워싱턴DC로 건너가기 앞서 윤 대통령은 8~9일 하와이를 들렀다. 김영삼 전 대통령 이후 한국 대통령으로선 29년 만에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부를 찾았고, 1만여명의 6·25 전쟁 전사자가 안장돼 있는 미 태평양 국립기념묘지(펀치볼 국립묘지)를 방문해 헌화했다.
김태효 차장은 순방을 마무리하면서 “대한민국은 이번 나토 정상회의를 통해 글로벌 안보를 확고히 하고 우리 안보를 한층 더 강화했다”며 “앞으로도 윤석열 정부는 강력한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 체계를 바탕으로 인·태 지역 파트너, 나토 회원국과 연대를 한층 확충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진 기자, 워싱턴=박태인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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