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 실권시킨 탄핵 상소
[김삼웅 기자]
▲ 흥선대원군. 서울시 종로구 운니동의 운현궁에 전시된 그림. |
ⓒ 김종성 |
권력자의 주위에는 어느 시대나 아첨배들이 들끓기 마련이다. 권력자가 암울하거나 전횡이 심할수록 그들의 아첨은 도를 넘는다. 면암의 상소문은 파격적이었다. 대원군의 10년 세도에 입도 벙긋하지 못했던 조정의 대소신료들은 크게 놀라고, 이참에 충성심을 보여야겠다는 기회주의자들은 때를 놓치지 않았다.
영의정 홍순목·좌의정 강로·우의정 한계온을 비롯 육조의 장관·사헌부와 사간원 등 소속 관원들이 총동원되어 면암을 탄핵했다. 형조참의 안기영은 특히 심하여 면암을 국문하고 귀양 보낼 것을 주창하는 상소를 올렸다. 면암의 상소문 중 "인륜이 없어졌다."는 대목을 들어 중벌을 청하였다.
'인륜이 없어졌다'는 것을 어느 책에서 보았으며, 어느 때에 한 말인가. 지금 없어졌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일에 대해서이며, 무엇을 지적하는 것인가 우리 성명(聖明)이 임어한 이래로 구족을 친목하게 하고 백성을 밝게 하며, 정도를 부식하고 간사한 무리를 물리쳤으므로, 인륜이 위에서 밝아졌고, 백성이 아래에서 친목하게 된 것은 만인이 다 같이 보고 칭송하는 바이다.
인륜이 없어졌다고 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비슷한 것이 어디에 있기에 감히 이것으로 저척하는가. 속히 의금부에 명하여 국청을 설치하고 엄중히 문초하여 기어코 죄의 실정을 알아내게 하라. (주석 1)
여타의 신료들은 대부분 속성이 권력지향이어서 그렇다치더라도, 아무리 대원군의 심복이라지만 사간 권종록이 면암을 역적으로 모는 상소는 너무 지나쳤다.
"장령 최익현은 임금을 걸·주와 진시황에 견주었으니 역적입니다. 최익현의 머리를 베어 경박한 신하를 경계하옵소서."라고 그의 처형을 촉구하였다.
면암은 대원군 탄핵 상소를 올리고 관직을 떠났다. 이하응은 초야 시절 석파(石坡)라는 호를 쓰면서 많은 명필을 남기고 기국(器局)이 큰 인물이었다. 그런데 권력자가 되면서 돌변한 것인지, 그것이 본성이었는지, 그는 폭정을 일삼았다.
절대권력자 대원군에 대한 비판 불허의 금기를 깬 인물이 면암이었다. 그는 대원군을 탄핵한 같은 해 11월 3일 2차로 상소문을 올렸다.
정사(政事)는 옛법을 변경하였고 사람은 주견이 없다. 대신이나 육경(六卿)은 건백하는 의론이 없고, 대간과 시종은 일 좋아한다는 비방을 피하기만 하고 있다. 조정에는 속론(俗論)이 자행되어 정의는 사라졌으며, 아첨하는 사람이 뜻을 얻어서 곧은 선비들은 떠나가고 있다.
가렴주구는 그치지 않아 백성이 어육이 되었고, 윤리와 법도는 무너지고 사기는 떨어졌다. 공정한 사람은 괴이하고 과격하다는 말을 듣고, 사사로이 도모하는 자를 유능하다고 일컫고 있다. 염치를 모르는 사람은 제때를 만났고, 지조 있는 사람은 나른히 죽게 되었으니, 하늘의 재앙이 위에서 나타나고 땅의 변괴가 아래에서 일어나서 자연의 질서조차 모두 그 정상을 잃고 말았다.(<면암집>)
상소문 중에 대원군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목이다.
그 어떤 지위에도 있지 않고 친친(親親)의 열(列)에만 속한 사람에 대해서는 다만 지위를 높이고 녹을 많이 주고 호오를 같이할 뿐이요, 나라 정사에는 관여하지 말게 하기를 중용·구경의 교훈과 논어의 '지위를 벗어나 정사를 논한다'는 경계처럼 하여 어기지도 말고 잊어버리지도 말라.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롭게 하여 이미 무너진 인륜을 세우고 장차 위태로워질 국세를 안정시키면 생민은 태평한 즐거움을 만나게 되고 종사는 만년의 향사를 누릴 것이다.(<면암집>)
면암이 예리한 붓끝으로 절대 권력자를 겨냥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지만 고종의 은근한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원군이 권력을 휘두르고 있을 때 12세 소년 고종은 20대 청년으로 성장하였다. 명색이 국왕인 처지에 아버지의 전횡으로 '바지왕'의 신세가 되었다. 여기에 영특한 민왕후의 '벼게 밑 송사'도 따랐다.
권력은 부자 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말이 전한다. 고종은 이참에 실권을 회복하고 싶었고 대원군은 10여 년 누려온 패권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양자 간에 암투가 벌어졌다. 고종 측에서 은근히 면암을 지원하였다. 상소는 어디까지나 임금을 상대로 하는 것이어서 형식 논리상 대상이 된 고종이 처벌을 원치 않음으로 대원군은 속내만 부글거렸다.
민비는 유생의 대표적인 최익현을 꼬드겼다. 1873년 최익현은 흥선대원군의 실정을 규탄하고 섭정의 자리에서 물러나 정치에서 손을 떼라고 정면으로 공격했다. 그 명분은 왕이 친정할 수 있는 나이인 스무 살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 상소가 들어오자, 민비는 온갖 책략을 구사하여 "아버지에게 기대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제구실을 하라"고 꼬드겼다. 일단 사리로 따져 당연한 권고가 아닌가.
고종은 사실 아버지를 누구보다 따르기는 했으나, 아버지의 빛에 가려 자신의 무능이 드러난다고 생각해오고 있던 터였다. 이에 고종은 용단을 내렸다. 섭정인 아버지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흥선대원군의 전용 출입문인 연추문을 봉쇄한 것이다. 흥선대원군은 갑작스런 이런 조치에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찌 해볼 길이 없었다. (주석 2)
면암의 상소가 올라온 그날부터 고종은 친정을 서둘렀다.(…)고종의 친정 움직임에 당황한 대원군은 이를 정지해 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대원군의 10년 전횡에 대해 관민이 모두 혐오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대원군은 할 수 없이 병이라 칭하고 운현궁을 떠나 자하문 밖 삼계동(종로구 부암동에 있던 마을) 산장, 곧 석파정으로 물러났다.
그뒤 대원군은 예산군 덕산에 있는 부친 남영군의 묘소를 참배한 다음 양주군 직공산장으로 은퇴하고 말았다. (주석 3)
결국 대원군은 실권하였지만 그가 양육한 조정의 신료들은 그대로였다.
"대원군 10년 독재는 끝이 났으나 선생은 삼사(三司)의 탄핵과 거의 모든 관인들의 공격을 받으며 금부 남간에 수감되었다. 이어 삭탈 관직된 선생은 제주도로 위리안치의 명을 받고 귀양길에 오른다. 12월에 제주도에 위리안치 되었으나 서울에서는 다시 양사(兩司)의 탄핵을 받았다." (주석 4)
면암은 국청에 끌려가 재판을 받았다. 재판장은 영돈령부사 홍순목이었다. 면암은 당당하게 진술하였다.
이 몸은 나이 41세에 일찍부터 국은을 입어 사적(士籍)에 올랐으니, 온몸이 모두 나라의 큰 은덕인데, 조금도 갚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근년 이래로 시골에 물러가 있으면서 폐척(廢斥)된 것을 분수에 달게 여기고 시사에 간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항간에 떠도는 말을 듣고 시세를 침작해 보면 국운의 어려움과 민생의 위급함이 이때처럼 심한 적이 없으므로 하찮은 정성이나마 그만둘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침 성상께서 치세를 원하는 마음이 있어 천한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고 파격적인 은전을 내리니, 이른바 '미묘한 도심(道心)의 본체와 발현하는 천리의 묘용(妙用)'이라는 것으로 옛날에 찾아보아도 견줄 만한 것이 드물었다.
이에 고루한 성품이 은권을 망령되이 믿어 스스로를 헤아리지 않고 감히 전에 올린 상소에서 다하지 못한 말을 부연하고 더 보태어 횡설수설 장황하게 늘어놓았으니, 임금께 올리는 문자에 심히 합당하지 않은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캐어보면 결단코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일념에서 나온 것이지 다른 뜻은 없었다.
간혹 과격한 발언과 불경한 언사는 옛글만 읽어 변통할 줄 모르고 시골뜨기의 문견이 상소 격식을 익히지 못한 소치이며 별도로 다른 뜻을 없었다. 이것으로 죄를 삼는다면 상제(上帝)가 위에서 질정하고 귀신이 옆에서 지켜볼 것이다. 그 밖에 아뢸 만한 사연은 없다.(<면암집>)
주석
1> 박민영, 앞의 책, 46쪽.
2> 이이화, <대원군과 민비>, <이야기 인물한국사5>, 112~113쪽, 한길사, 1993.
3> 박민영, 앞의 책, 54~55쪽.
4> 최창규, <해적이>, 25쪽.
5>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면암 최익현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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