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빛·선·소리로 불안과 억압의 시대를 감싸 안다
43m 구조물, 벽면에 포갠 목탄 드로잉 눈길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의 속도, 그 속에서 인간의 존재론적 기록과 자각을 통해 현실 비판의 메시지를 전해온 김도희 작가의 기획전이 개최된다.
성북문화재단 성북구립미술관은 '김도희·빛선소리'’展을 오는 8월 3일까지 성북예술창작터에서 진행한다고 12일 밝혔다.
전시는 지역 기반 활동 작가 가운데 세계무대로 도약할 저력 있는 젊은 현대미술 작가에 대한 재단 지원의 일환으로, 이번 전시는 그 첫 시도로 기획됐다.
작가는 압도적인 규모와 독창적 형식으로 큰 감흥을 주는 신작 벽면 사운드드로잉 ‘빛선소리’(2024)를 포함해 신작의 본질과 맥락을 보여 줄 수 있는 과거 작품으로 사포 위에 손톱으로 그린 ‘손톱산수’(2004), 퍼포먼스 기록영상 ‘물새의 깃털처럼’(2020)과 ‘하울링’(2015), ‘관객 체험 작품’ 등 총 9점을 선보인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43m에 달하는 신작 ‘빛선소리’(2024)다. 전시장 1층부터 2층 나선형 구조물의 구석진 공간에 이르기까지 약 43m 길이의 벽면, 그리고 그 위에 겹겹이 올려진 목탄 드로잉의 향연은 큰 충격과 감동을 준다. 온몸을 뚫고 들어오는 듯한 묘한 사운드, 믿을 수 없는 노동량을 떠올리게 하는 선들의 총합인 ‘빛선소리’(2024)는 ‘소리를 그림으로 옮긴’ 작업이자 ‘소리와 함께 완성된 그림’ 작업이다.
작가는 ‘자기 신체’인 손바닥으로 전시장 벽면을 마찰하며 듣게 되는 소리를 중첩된 선들로 표현했다. 그는 이를 "촉각적 소리에 감응한 움직임이 시각화된 작업"이라고 말한다. 사실 ‘소리와 진동’, ‘행위와 노동’은 작가가 과거부터 표명하고 실천해 온 주요 가치로, 이번 신작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작품 제작에 있어 과거의 여러 시도와 작업적 철학이 현재에 이르러서도 일관되게 이어지고, 그것이 미래에도 지속해서 연결되는 것은 ‘위대한’ 예술가들이 보여주는 능력이다. 이러한 점에서 신작과 나란히 주목받고 있는 작품은 바로 작가가 20년 전에 캔버스 대신 사포를 이용해 제작한 ‘손톱산수’(2004)다.
제목 그대로 사포 위에 손톱으로 긁어서 산수를 그려낸 이 작품은 겸재 정선의 ‘만폭동도(萬瀑洞圖)’를 깔깔한 사포 위에 손톱으로 모사했다. 2004년 대학원 실기 수업 당시 작업한 것으로, 제한된 형식적 틀에 갇혀야 했던 시절에 ‘진짜’를 갈망한 예술가의 괴짜다운 천재성을 보여준 일면이자 일화다. 이는 서구 미술 담론의 기계적 답습이 아닌 바로 자신의 신체와 감정, 생각과 경험의 토대 위에서 ‘진짜 예술’이 가능하다는 믿음의 발로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고 획일적이며 경쟁적이고 억압 그 자체인 현대사회, 작가 역시 이러한 사회의 일원임이 틀림없다. 작가는 자신의 ‘지친’ 상태를 그 누구보다 선명하게 깨달았고, 그 회복을 위해 혼자만의 조용한 공간과 시간을 기획자에게 요구했다.
이번 전시를 앞두고 작가는 성북예술창작터를 일종의 ‘아트 레지던시(Art Residency)’, 즉 작가의 작업실로 삼고 20여 일간 오가며 신작 사운드드로잉설치 ‘빛선소리’(2024)를 제작해 냈다. 이는 깊은 고요와 몰입의 시간이 준 산물이자 선물이다. 관객은 캄캄한 은둔의 시간을 통해 자기(self) 회복을 이루는 변증법적 현장을 오롯이 경험할 수 있다.
1979년생인 김도희는 실험성과 독창성을 갖춘 신진작가를 지원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모색2014’에 선정되며 일찍이 큰 주목을 받았다. 다소 파격적이며 인상적인 작품 활동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계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작가는 설치와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회화, 사진, 영상, 출판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룬다.
성북에서는 2016년 제1회 ‘성북 N 작가공모’에 선정됐다. 2023년 성북구립미술관 기획의 일환으로 추천된 ‘공립미술관 추천작가-전문가매칭 지원사업(국립현대미술관, 이하 비평지원사업)’에 선정돼 비평 지원을 받기도 했다. 이번 기획전은 2023년 비평지원사업과 연계한 연속지원이다.
오는 23일에는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아티스트 토크’도 개최한다.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 휴관이며,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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