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를 향한 첫걸음 떼기

정호갑 2024. 7. 1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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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이네 시골살이 19] 물건은 버리고 덕은 쌓고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정호갑 기자]

주말 시골살이를 퇴임하면서 온전한 시골살이로 전환했다. 이사할 때마다 느끼는데, 쓰지 않는 물건이 너무 많다. 그런데 막상 버리려 하면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쓰지 않는 물건들이 한쪽 구석에 쌓이고 쌓이게 된다. 이번에는 '정리는 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쓰지 않는 물건은 망설임 없이 버리기로 다짐했다. 만약 다음에 필요하다면 돈이 들더라도 사면 된다고 생각했다.

먼저 물건을 정리하면서 현재 사용하는 물건인지 그렇지 않은 물건인지 생각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나눔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생각했다. 나눔할 수 있는 물건들은 지인들에게 물었다. 지인들이 필요 없다면 기부받을 단체에 연락했다. 그렇게 하고 나머지 것들은 분리수거했다. 가전, 침구, 옷, 그리고 자잘한 물건들을 이렇게 정리했다.

지인들에게 나눔하니 '고맙다', '잘 쓰겠다'는 기분 좋은 말을 듣는다. 선물을 주는 지인도 있다. 물건을 가져간 기부단체에서는 기부금으로 처리하여 영주증도 보내준다. 집 앞까지 와 가져가고, 연말정산 혜택까지 볼 수 있다. 짐 정리도 한결 쉽고, 집도 깔끔하게 정리된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셈이다.

어머니가 갑자기 편찮으셔서 입원했다. 아버지도 연세가 있기에 어머니가 퇴원하면 함께 살기로 했다. 퇴원을 며칠 앞두고 부모님 댁을 정리했다. 정리하면서 '필요 없는 것이 와이래 많노'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사용하지 않는 몇십 년 된 물건들이 곳곳에 먼지만 잔뜩 쌓여 있었다. 우리집으로 가져와도 놓을 자리도 없고, 앞으로 사용할 일도 없다고 생각하여 말끔하게 다 정리했다.

퇴원하시고 우리집으로 온 어머니가 이 물건 저 물건을 물어보신다. 사용하지도 않고, 놓아둘 곳도 없어 다 버렸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어머니는 마음대로 버렸다며 심하게 역정 내신다. 나도 맞받아 지금까지 먼지만 잔뜩 쌓여 있었는데, 언제 어디에 사용할 것인데, 며칠 동안 정리한 수고도 모르고 그렇게 역정을 내시면 어떻게 하느냐며 짜증 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생각이 짧았음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물건 하나하나에는 어머니의 삶이,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다. 그 물건 하나하나는 어머니의 지나온 삶이었다. 그 물건들을 단순히 효용으로 판단하고 버렸으니 역정 내실 만하다.

머지않아 나 또한 이런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는 추억이 담긴 물건이라 소중하지만, 아들과 딸에게는 아무런 쓸모없는 버려야 할 물건들일 것이다. 내 물건들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정리하는 사람의 정신적·육체적 수고로움을 덜어 주어야 한다. 정리할 때가 되었다.

책이 문제다. 책에는 내 젊음이 오롯이 담겨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전자책을 보고 있지만, 지금까지 한 권, 한 권 사 모은 것이 3,000여 권이 된다. 그동안 배우고 가르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해 왔을 뿐만 아니라 장식품 역할도 톡톡히 해 왔다. 하지만 아들과 딸에게는 전혀 필요 없는 책이다. 관심 분야가 다르고, 오래되고, 활자도 작고, 한자도 섞여 있다. 어떡하지?

먼저 대학에 전화했다. 대학 도서관도 책이 넘쳐 나 도서관에 없는 책만 기증받는다고 한다. 가진 책이 희귀본도 아니고 그저 내가 알기 위해, 배우기 위해 읽은 책인데 어찌 대학 도서관에 없겠는가? 일일이 목록을 만들어 대학에 확인하는 것도 번거로워 대학에 기증하는 것은 포기했다. 그래도 막상 버리려 하니 너무 아쉽다. 그래도 할 수 없지 않은가? 언제 다시 이 책에 손이 가겠는가?

책장도 나눔하고 최소화하기로 했다. 남은 책장에 꽂을 수 있을 만큼만 남겼다. 전공 서적과 교양서적으로 나누었다. 전공 관련 글은 이제 다시 쓸 수 없을 것이다. 가르치는 일 또한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전공 서적은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침 학교 국어과 교실 책장이 비어 있는 곳이 많아 전공 관련 서적은 거기에 가져다 놓았다. 교양서적은 내가 거듭 보아야 할 책만 남겨두고 모두 버리거나 나눔했다.

당장은 사용하지 않지만 그래도 간직하고 싶은 물건들은 최소화하여 눈에 보이는 곳에 둘 수 없으면 버렸다. 눈에 띄지도 않은 물건을 언제 다시 찾아보겠는가? 다시 한번 생각한다. 정리는 버리는 것.
 
▲ 읽을 책 정리하고 남은 교양서적
ⓒ 정호갑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집이 시원하다. 그런데 가끔 찾아오는 지인들에게 미안할 때가 있다. 모든 물건을 현재 우리 가족에 맞춰 정리했다. 아들과 딸이 결혼하여 배우자와 함께 올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릇과 이부자리가 모자랄 때가 있다.

미안하지만 집 근처에 있는 자연휴양림을 권한다. 잠은 자연휴양림에서 자고, 식사와 차는 함께 하자고 한다. 고맙게도 당연하다는 듯 모두 그렇게 해준다.

이렇게 말하기가 힘들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이부자리는 가져와 달라고 부탁한다. 가져갈 다른 것은 없나 하면서 흔쾌히 그러하겠다고 한다.

그릇도 마찬가지이다. 손님이 많이 오면 그릇이 부족하다. 이 그릇 저 그릇에 담고 붓다 보면 제대로 대접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 그럴 때마다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앞으로 우리도 그렇게 가야 되지 않나'라며 공감해 준다.

물건은 버리지만, 덕은 곁에 두고 싶다. 노자의 <도덕경>을 읽으면서 '덕(德)'이란 말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덕(德)은 누군가에게 자발적으로 무엇인가를 하게 하는 힘이지만, [그 힘이] 바로 나에게 있는 것, 그게 바로 덕(德)이다. (전통문화연구회, <도덕경> 22장 풀이에서).

지금까지 집에서나 학교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지 못했다. 늘 앞서 말하고, 꾸지람하기에 바빴다. 너무 엄격했다. 아직 배우고 커 가는 아이들에게.

덕이 없음을 깨닫는다. 지금까지 나에게 없었던 덕을 기르고 싶다. 덕을 지니기 위해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너그러워져야 한다. 앞서 판단하고, 말하기보다는 기다려야 한다. '버럭'하는 성질머리도 고쳐야 한다. 이해하고 공감하는 인품을 이제라도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행히 시골살이는 자연과 함께하면서 배우고 느끼며 정신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덕을 기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제 그럴 나이가 되었다.

미니멀라이프라고 했지만 아직은 갖고 있는 것이 차고 넘친다. 더 채우지 않고 거북이걸음으로 하나, 둘 정리하면서 시골살이해야겠다. 물건은 버리고 덕은 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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