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머나먼 반지하의 여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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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눅한 공기가 코끝을 짓누른다. 내리는 비는 스미어 벽을 타고 내려온다. 들뜬 장판 사이로 축축하게 물기가 차면 물걸레를 든다. 닦고 짜다가 하루가 간다. 잠들기 전에는 비가 그쳤으면 하는 것이 유일한 바람이다."
반지하에서는 비에 젖은 시멘트 비린내인지, 방 구석구석에 퍼져나간 곰팡내인지 모를 눅눅한 냄새를 없애려 창을 여는 것도 쉽지 않다.
매입 비용이 문제라면 반지하 전세민의 보증금이나 월세라도 지원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현실성 있는 지원이 있어야 반지하의 전쟁은 끝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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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눅한 공기가 코끝을 짓누른다. 내리는 비는 스미어 벽을 타고 내려온다. 들뜬 장판 사이로 축축하게 물기가 차면 물걸레를 든다. 닦고 짜다가 하루가 간다. 잠들기 전에는 비가 그쳤으면 하는 것이 유일한 바람이다."
한 지인이 털어놓은 반지하방 거주기(記)의 일부다. 서울 시내 20만가구가 매년 여름이면 맞는 비와의 전쟁에 한 단락이다. 그래도 이만하면 다행이다. 영화 ‘기생충(2019)’에 나온 기택의 집처럼 비가 가득 찰 수도 있다는 것이 공포다. 기택의 딸이 허리춤까지 물이 찬 화장실에서 변을 토해내는 변기를 붙들고 막아선 장면은 누군가에게는 재미있거나 신기한 장면일 수 있다. 그러나 반지하 거주민에게는 공포 그 자체다.
반지하에서는 비에 젖은 시멘트 비린내인지, 방 구석구석에 퍼져나간 곰팡내인지 모를 눅눅한 냄새를 없애려 창을 여는 것도 쉽지 않다. 비가 들이치는 것도 무섭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 없는 세간살이로 꽂히는 것이 참 불편하다.
이렇다 보니 반지하에 살면 물에 민감해진다. 위층에서 물청소만 해도 소스라친다. 반지하에는 홍수가 나는 정도니 어쩔 수가 없다. 물청소를 하는 집부터 계단을 타고 내려온 오수는 각 층의 먼지와 쓰레기를 싣고 반지하 현관 앞으로 모인다. 배수가 되면 다행인데 대부분의 반지하는 오래된 주택에 박혀 있다. 막힌 수챗구멍 위로 모인 물은 마르지 않고 썩는다.
전국 32만7000가구(2020년 인구총조사) 정도가 매년 여름이면 이런 물과의 전쟁에 돌입한다. 한 집에 4인 가족이 산다고 보면 100만명 이상이 참전한다고 볼 수 있다.
매년 전세(戰勢)는 더욱 불리해진다. 노후화라는 복병이 반지하의 주거 기능을 갉아 먹고 있다. 서울시가 2022~2023년 조사한 반지하 가구 수는 23만7619가구다. 이 중 80% 이상은 1995년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집계된다. 거주 공간이 아니었던 지하층에 사람이 살게 한 것은 1976년부터였다. 1960년대 방공호 목적으로 설치했던 지하층에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서울로 인구가 집중되자 지하에 사람을 살게 했다. 1976년 이전까지 건축물의 7%에 불과했던 지하층은 1980년대 91%, 1990년대 주택의 95%까지 많아지게 됐다. 오래된 반지하가 서울 각지에 퍼지게 된 계기다.
날씨는 더 가혹해졌다. 더 많은 비가 더 짧은 시간 안에 쏟아진다. 기상청의 기후변화 시나리오(SSP)에 따르면 2041∼2060년 우리나라 연 강수량은 현재보다 6~7% 늘지만 비가 내리는 날은 8∼11% 감소할 것으로 관측됐다. 기상청은 평균 강수 강도가 지금보다 16∼20%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대비할 시간도 없이 갑작스레 불어난 물이 반지하를 덮칠 확률이 커진 것이다.
늦기 전에 이들의 전쟁을 끝내야 한다. 반지하를 없애야 할 집주인들은 협조적이지 않다. 건물을 다시 짓거나 리모델링하면서 반지하를 없애면 세 줄 집 하나 이상을 날리게 된다. 이들 중 일부는 ‘침수주택’이라는 낙인이 집값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반지하 창에 물막이판 설치도 반대한다.
반지하를 퇴출하겠다는 정부가 약속을 지켜야 한다. 정부와 서울시의 지원을 통해 지난해까지 2년간 반지하를 탈출해 임대주택으로 이사한 가구는 5000여가구에 불과하다. 20만 반지하 가구 중 2.5% 정도다. 매입 비용이 문제라면 반지하 전세민의 보증금이나 월세라도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이마저도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어느 쪽이든 현실성 있는 지원이 있어야 반지하의 전쟁은 끝이 날 것이다.
황준호 기자 reph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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