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을 사람처럼 찍는 것으로 유명한 사진가
[김형순 기자]
▲ 칸디다 회퍼 I "Komische Oper Berlin IV 2022" Inkjet print Image: 180×250.8cm Frame: 184×254.8cm / 칸디다 회퍼[오른쪽]과 남편이자 동료, 비평가인 헤르베르트 부르케르트(Herbert Burkert)[왼쪽] |
ⓒ 김형순 |
'칸디다 회퍼(Candida Höfer)' 사진전이 국제갤러리 부산점(2020년)에 이어 2024년 7월 28일까지 서울점 갤러리 K2(1, 2층)에서 열린다. 제목은 'RENASCENCE', '르네상스' 유사한 의미로 잠든 영혼과 시각을 깨운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번에 신작 14점을 소개다.
회퍼는 1944년 독일 '에베르스발데'에서 태어났다. 현재 '쾰른'에 거주하며 활동 중이다.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미대)'에서 3년간 영화를, 1976년부터 '베른트 베허' 교수 밑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그녀는 동기생인 '토마스 스트루스'(1954년 생), '토마스 루프'(1958년 생), '안드레아스 거스키'(1955년 생) 등과 함께 '베허 학파'(1세대)를 이룬다.
그녀는 1975년 뒤셀도르프 '콘라드 피셔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 후, 지난 50년간 박물관, 도서관 등 공공공간을 정교한 구도와 특유의 섬세함으로 담아왔다. 일상과 문화생활 사이의 뒤섞이면서 일어난 사건과 인간사의 흔적을 포착해왔다.
회퍼는 2002년에 제11회 '카셀 도큐멘타'에 참여했고, 2003년 제50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마틴 키펜베르거'와 공동으로 독일관을 대표했다. 2018년 SONY '세계포토어워드' 공로상을 수상했다. 9월에는 베를린 예술아카데미가 주는 '2024 케테 콜비츠 상'을 받을 예정이다.
작가의 문화재급 건축 사진이 왜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독일 쾰른 루트비히 미술관, 스톡홀름 근대미술관,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자.
▲ 칸디다 회퍼 I 'Komische Oper Berlin II 2022' Inkjet print Image: 180×250.8cm Frame: 184×254.8cm ⓒ Candida Hofer / VG Bild-Kunst, Bonn 2022 |
ⓒ 칸디다 회퍼 |
회퍼 사진의 분위기는 고요하고 적막하다. 그리고 침묵이 흐른다. 외적으로는 고요하나 내적으로는 거대한 폭풍이 일어나는 것 같다. 작가는 조명보다 자연의 빛을 더 즐긴다. 사진에서 인위적인 꾸밈과 억지를 부리는 걸 피한다. 자신이 사는 시대에 대한 성찰과 자신만의 시각적 통찰력으로 사진의 주제에 접근하는 것 같다.
그녀는 건축물 자체에 관심을 두는 사진가와는 달리 공간에 새겨진 시간과 인간의 흔적을 정밀하게 관찰한다. 사진에 사람이 없다. 사람 대신 빛과 공기, 건물이 주는 흔적과 분위기로 관객이 추리해 보라는 것 같다. 그래서 관객에게 사진에 대한 상상력을 더 자극한다.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 등 서양 건축사에서 문화유산급 건물을 많이 찍는다. 어떻게 보면 서구 문명의 원류와 본질을 탐욕적으로 찾아내려는 욕망이 작가의 내부에 작용하는 것 같다. 거기에서 인류 미래의 비전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일까?
▲ 칸디다 회퍼 I "Stiftsbibliothek St.Gallen III 2021" Inkjet print Image: 180×160cm Frame: 184×164cm ⓒ Candida Hofer / VG Bild-Kunst, Bonn 2021 |
ⓒ 김형순 |
작가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사진을 찍을 때 사진을 더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건물 등 대상의 냄새마저 찍고자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이게 사진에서 가능한가? 그런데도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며 뭔가를 찾으러 한 것 같다. 오감 중 후각이 가장 오래 간다고 한다. 사진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현대 사진에서 이런 노력과 상상력은 꼭 필요하다.
오늘날 미디어아트는 시각·청각·촉각·미각·후각 등을 다 도입한다. 모든 감각으로 사람들을 만족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사진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기존의 경계를 넘어 무한도전이 필요하다. 건물도 사람은 아니나 그 냄새가 다를 텐데 작가는 그걸 잡아내려 한 것 같다.
현대미술은 음악이 들어가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사운드아트'가 대유행이다. 사진에도 스냅사진 등으로 리듬감과 율동감을 부가한다. 사진에 음악만 아니라 이런 후각적 요소까지 앵글로 잡아낸다면 사진은 이전보다 현대문명을 더 풍성하게 표현하는 길이 열리지 않겠나.
▲ 칸디다 회퍼 I 'Stiftsbibliothek St.Gallen III 2021'Inkjet print Image: 180×160cm Frame: 184×164cmⓒ Candida Hofer / VG Bild-Kunst, Bonn 2021 |
ⓒ 칸디다 회퍼 |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 사진가는 숭고하고 정교한 기념비적인 문화유산 사진이 많다. 서양 건축사의 다양한 면모가 담긴 이런 사진이 엄숙하고 무거울 수 있는데 왠지 가볍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왜 그런가? 작가는 인간의 부재를 통해 중립 매개자로 사진을 찍기 때문인가.
회퍼는 건축물을 사람처럼 찍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공간의 초상화>라고 한다. 그렇게 찍으려면 무생물인 건물을 사람처럼 살려내 그에게 말을 거는 능력도 갖춰야 하리라.
사진가는 시공간의 흐름 속에 일어나는 울림의 상호작용을 뚫어봐야 한다. 또한, 건물에 담긴 사연과 인류 미래의 비전도 봐야 한다. 더 나아가 사진을 통해 개인의 일상을 통찰하고 역사의 맥락과 시대의 흐름도 읽어내야 하리라.
그녀는 '여기 공간에 사람들이 있었다'라는 말을 했다. 사진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공간에 남긴 인간의 흔적을 찍고, 모든 기억을 오랫동안 시각화 하는 게 아닌가. 문명도 시공간 속 인간이 물질적 발전과 사회적 사유가 낳은 결과물이다. 시간에 따라 공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공간이 시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 전개 과정을 관찰하며 사진을 찍는 것이리라.
이번 사진전을 보니 1989년 유럽 여행 중 독일 국경을 넘어갈 때 내 눈에 들어왔던 풍경화가 그려진다. 거대한 숲의 나라에서 풍겨오는 자연과 문명의 조화로움이 떠오른다. 회퍼의 사진은 그런 분위기다. 날림이나 하자가 없어 보이는 독일 저택의 그 견고함이 생각난다. 여기에는 독일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추구한 '인간성 회복과 세계평화 정신'도 담은 것 같다.
▲ 칸디다 회퍼 I 'Neue Nationalgalerie Berlin XVII 2021' Inkjet printImage: 180×250cm Frame: 184×254cm ⓒ Candida Hofer / VG Bild-Kunst, Bonn 2021 |
ⓒ 김형순 |
회퍼는 서울 '아모레퍼시픽'을 설계한 세계적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를 좋아한다. 2015부터 6년간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을 개조(Renovation)한 이가 바로 데이비드 치퍼필드다.
사실 얼핏 보면 이 미술관의 이전 모습과 새로 고친 모습에서 차이가 없어 보인다. 다만 건축의 각 요소를 긴밀하게 연결했다고 할까? 공간이 그래서 더 너그럽고 풍요롭게 보인다. 회퍼는 건축에서 이런 섬세한 감각을 강화하는 관점에 감동해 이 미술관을 찍은 것 같다.
▲ 칸디다 회퍼 I 'Musee Carnavalet Paris XI 2020' Inkjet print Image: 180×249.1cm Frame: 184×253.1cm ⓒ Candida Hofer / VG Bild-Kunst, Bonn 2020 |
ⓒ 칸디다 회퍼 |
작가는 '사진도 마음을 다하면 보인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관객이 그런 작품의 비밀을 찾기 바라는 것 같다. 회퍼의 관객에 관한 관심도 예사롭지 않다. 전시장에서 그녀가 날 바라볼 때도 그랬다. 하긴 이제 현대예술에서 전시의 주인공이 관객이라는 건 상식이다.
백남준의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무한제곱이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는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인 시간을 말한다. 그와 유사하게 그녀는 사진으로 '과거' 문화유산을 통해 '미래' 인류 문명을 내다보면서 '현재'에서 좌표를 제대로 찍어 방향을 잘 잡아보라고 권하는 것 같다.
팔만대장경 등을 찍을 의향은 없는지 물으니 전시 관계자가 대신 답한다. 그녀는 대상이나 건물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한국 불교 문화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기에 안 찍는다고 전한다. 한국 문화유산에 대한 교감이 아직은 덜 되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회퍼는 한마디 던졌다. 내 사진이 꼭 현대적이지 않아도 좋다. 영원히 남는 사진이 되고 싶다.
"현대적이지 않지만, 영원성을 간직하고 있는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다."
- 칸디다 회퍼
덧붙이는 글 | 국제갤러리 홈 페이지 https://www.kukjegallery.com/ 칸디다 회퍼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andidahoefer_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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