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처음" 주민들의 충격 증언... 대한민국 곳곳 이상징후
[오기출 기자]
▲ 지난 7월 8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허리케인 베릴의 영향으로 인한 폭우로 인해 홍수에 갇힌 차량의 모습. |
ⓒ EPA/연합뉴스 |
기후 관련 신기록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 6월 5일 '세계기상기구'(WMO)는 향후 5년간 산업혁명 전 대비 지구표면 온도가 1.1℃에서 1.9℃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기후위기의 마지노선인 1.5℃ 상승이 앞으로 5년간 계속될 확률도 47%라고 한다. 1.5℃ 상승제한을 결정했던 2015년 유엔 파리기후협정 당시만 해도 2030년까지 1.5℃ 오를 가능성은 0%였다. 10년도 안 되어 사실상 기후 관련 국제사회의 결정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 6월 28일 발생해 시속 270km의 강풍을 동반, 최고등급인 5등급으로 발달한 허리케인 '베릴'(Beryl)이 중남미 카리브해의 나라들을 파괴했다. 7월 3일 영국 BBC방송은 베릴에 대해 지난 100년간의 허리케인 기록을 깼고, 현재 진행되는 기후변화의 위험성이 집중 조명된 사례로 보도했다. 지금까지 허리케인은 해수면 온도가 높아진 8월 말부터 발생했는데, 6월에 발생한 허리케인 베릴은 기후위기가 만든 최초 기록이라는 것이다.
기후 쇼크의 나라, 한국
이런 기후 신기록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농업과 어업에 가혹한 피해를 주고 있다. 경남 남해군 창선면에서 농사를 짓는 정주철씨(69)는 2020년에 평생 처음 경험한 54일간의 장대 폭우로 농산물 생산량의 60% 피해를 보았고, 기후위기가 심각한 식량위기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난 1월 8일 '남해 FM공동체라디오방송'에서 증언했다.
▲ 날이 풀려 겨우내 덮어놨던 벌통을 열어봤더니 텅 비어있는 일들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
ⓒ 픽사베이 |
남해군 미조면 항도마을에서 어업을 하는 김민창씨(57)는 2016년 이후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면서 어자원이 고갈된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고 했다. 여름철 집중폭우로 섬진강을 통해 대량으로 쏟아진 강물로 인해 바닷물 염분에 변화가 생겨 남해군의 양식업과 멸치잡이가 큰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이처럼 농어민들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이상기후는 전국에 걸쳐 나타난다. 지구촌 1.5℃ 상승의 영향은 한두 해 기승을 부리다가 없어질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매년 더 심각해지고 있고, 얼마나 더 가혹할지도 불확실하다.
지금 농민과 어민이 경험하는 기후위기는 또 하나의 문제를 만들고 있다. 식량생산 급감으로 식량가격이 폭등하고 대다수 시민들에게는 물가 공포로 이어진다.
지난 6월 18일 한국은행은 2023년 한국 식량 가격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평균보다 무려 56%나 높아 1등이라고 발표했다. 특히 사과 가격은 3배였다. 한국은 주거 비용이 높기로 유명한데, OECD 평균보다 23% 높았다. 식량 가격 상승 비율이 주거 비용 비율의 2.5배다. 무엇이 한국의 식량 가격을 치솟게 했을까? 기후위기가 만든 극단적인 폭우와 폭염, 냉해와 가뭄, 무너진 기상 시스템과 관련이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이 겪는 기후 쇼크는 식량 문제만이 아니다. 2022년 9월 6일 강력한 태풍 힌남노로 넘친 하천에 포항제철이 물에 잠겼고, 135일 동안 조업을 중단했다. 1968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물에 잠긴 포항제철은 2조 4백억 원, 협력사는 2500억 원 손실을 보았다.
이런 기후 쇼크가 일상화되면 포항제철이 포항에 있을 수 있을까? 투자 자본들은 이 제철소를 위험자산으로 분류해서 좀 더 안전한 해외로 이전을 요구할 것이다. 필자는 포항 시민들과 대화를 하면서 포항제철의 이전이 포항 시민 전체의 생존 위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현장에서 만난 농어민, 지역 주민, 시민들은 이미 가혹한 기후위기의 피해자들이 되고 있다.
올해부터 지구 온도가 1.5℃를 넘어 2℃ 상승을 향해 가는 것 같다. 6월 5일 유럽연합의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서비스'는 지난 12개월(2023년 6월~2024년 5월) 동안의 지구 평균 온도가 1.5℃를 넘어 1.63℃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지구 온도 2℃ 상승의 길이 열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13일 이탈리아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우리는 지구를 가지고 러시아 룰렛 게임을 하고 있다. 기후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라고 호소했다. 우리나라가 기후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 제주 해상풍력시설. |
ⓒ 윤성효 |
앞서 보았듯이 기후위기 피해자들은 주민들과 주민공동체다. 한국 정부는 기후피해 주민들에 대해 어떤 정책을 갖고 있을까? 요즘 수출 기업들에게 당장 필요한 재생에너지 100% (RE110) 확보가 현안이 되면서, 해상풍력과 태양광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아울러 해상풍력과 태양광에 대한 현장 주민들의 '주민수용성'이 중요한 정책 현안이 되고 있다. 주민들의 수용과 신뢰 없이 재생에너지는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그동안 한국사회가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민수용성 관련 정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을까?
가까운 사례를 한번 보자. 2020년 7월 이후 한국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 14기에 해당하는 해상풍력 발전 14.3기가와트의 대규모 개발 계획을 세웠다. 해상풍력의 큰 장이 선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의 성적표는 1%도 안 되는 125메가와트를 달성했을 뿐이다. 왜 이렇게 저조할까? 정부는 주로 어민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왜 어민들이 반대를 하고 있을까?
한국전력 경제경영연구원 정은호 전(前) 원장은 한국 정부가 어민의 혜택보다 기존 풍력사업자들에 대한 우대 조건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5월 17일 "세계풍력에너지협의회'(GWEC) 보고서는 '한국 해상풍력개발에서 어민과의 협의는 일관성이 없고, 결정도 부적합하고, 보상을 미루고, 보상효과도 미미해 어민들의 불신을 증가시켰다"라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가 추진해 온 해상풍력 정책에는 기후위기 피해자인 어민들을 위한 정책은 애당초 없었던 것이다. 정부의 무대책이 어민들의 불신을 키운 이유로 보인다.
이는 태양광도 마찬가지다. 정은호 전 원장은 한국 정부에 책임이 크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주민수용성을 해결하려면 첫째, 정부는 태양광이 기후위기 해결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홍보하여 주민들의 이해를 높이고 둘째, 특히 농촌 주민들이 태양광에서 경제적인 혜택을 얻을 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 정부는 태양광에 대해 이해를 구하지 않고 있고, 농민들의 혜택에는 무관심하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주민수용성 정책은 지금 정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2030년이 되면 지금보다 3배의 재생에너지를 설치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를 믿을 수 있을까?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지난 6월 21일 미국 정부는 '기후적응 계획 2024-2027' (2024-2027 Climate Adaptation Plan)을 발표했다. 이 계획을 통해 미국 정부는 향후 4년간 당면한 기후위기에서 기후회복력을 갖춘 나라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주민들에게 필요한 역량개발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미국 정부는 기후위기에 대응력을 갖춘 노동자, 주민, 지역공동체를 육성하고 데이터, 정보, 기술과 재정지원을 직접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2022년 8월에 결정된 미국의 기후대응법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1800억 달러(약 248조 원)의 재생에너지 지원 예산을 결정했는데, 그중 1/3인 600억 달러(약 83조 원)를 주민 공동체에 직접 지원한다. 아울러 인플레이션감축법의 지원을 받는 기업들은 정부지원 예산, 펀드 등의 40%를 주민공동체의 혜택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만이 아니다. 주요 국가들이 추진하는 기후정책들도 기후피해 주민들을 보호하고 기후회복력을 갖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기후정책 성공은 주민들의 참여와 지지로 결정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기후지옥에서 빠져나오려면 주민들의 신뢰와 지지가 핵심이다. 그러려면 정부는 기후피해 당사자인 농민, 어민, 주민들이 문제해결의 당사자가 될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 기후피해 지역 주민들이 기후회복력을 갖도록 제도와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것이 기후정책의 기본이고,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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