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받는데 하세월…“서류만 수십장, 소송하다 포기” [엄마의 탄생④]
정부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8년간 360조원을 투입해 줄기차게 저출생 대책을 마련해 왔음에도 출산율은 오르긴커녕 바닥을 모른 채 추락 중이다. 그럼에도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이들이 있다. 아이를 낳으면 ‘애국자’라고 칭송받는 시대임에도, 축하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임신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위기 임신’으로 일컬어지는 상황에서 일부 예비 한부모들은 병원 밖 출산을 선택한다. 오는 19일 보호출산제 시행을 앞두고 미혼모(비혼모)들의 삶을 조명해 우리 사회가 먼저 고민해야 할 현실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
# 서울에서 중학생 자녀를 홀로 키우는 박모씨. 남자친구와 헤어진 때를 떠올리면 아이에게 미안함이 마음이 크다. 전 남자친구는 임신 소식에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결혼 준비를 하다 결국 헤어졌다. 전 남자친구가 남긴 빚까지 갚으며 혼자 아이를 키웠다. 박씨는 “아이 아빠와 마주쳐야 하는 게 너무 싫어서 양육비 받는 건 생각도 안했다. 내 아이는 내 힘으로 키울 것”이라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12일 양육 미혼모 당사자들에 따르면 한부모 가정의 양육비 지급을 돕는 각종 제도가 만들어졌음에도 박씨처럼 양육비를 포기하는 미혼 가정이 적지 않다. 비혼 엄마들이 아이 친부에게 양육비를 청구하기 위해선 인지청구 절차를 거치는 등 다양한 법률적인 부분을 해결해야 하는 탓이다.
양육 미혼모가 양육비를 받으려면 한부모 가정보다 절차가 더 복잡하다. 혼인신고, 출생신고를 통해 부와 모 양측이 법적 부모로 인지돼 있는 한부모 가정과는 상황이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먼저 법원에 인지 청구를 해야 하고, 유전자 검사를 통해 친부라는 확인 판결을 받아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미혼 가정의 자녀 대부분은 비혼 엄마 호적 아래로 올라가 있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에 따르면 비혼 엄마 90% 이상이 엄마 성을 쓴다고 한다. 인지신고를 할 때 아이가 종전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등록하면 원래 자신의 성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친부의 협조가 없다면 법원에 성과 본의 계속 사용 허가 신청을 해야 한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유전자 검사를 하기 위해 생물학적 아이 아빠에게 송달을 여러 차례 보내야 한다. 이 과정이 오래 걸린다. 한 번에 출석해 유전자 검사를 하는 경우가 드물다”며 “우편물이 몇 번 오고 가는데 수 개월이 걸린다. 엄마들이 혼자 아이를 보면서 이런 과정을 진행하다 보면 지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미숙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도 “양육비 이행관리원에서 양육비 친부인지 절차 관련 내용을 다운받아 확인하면, 서류가 매우 많고 복잡하다”며 “더구나 비혼 엄마는 임신하기까지 과정에 각자의 속사정이 존재하는 만큼 인지검사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문제”라고 했다.
실제 비혼 엄마 당사자단체인 한국미혼모가족협회가 지난해 회원 1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양육 미혼모 54.8%는 ‘양육비 소송을 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양육비 소송 진행 예정이 없다’고 응답한 이들도 18.5%에 달한다. ‘양육비 소송 판결이 났으나 받지 못했다’는 응답도 6.2%였다.
친부에게 아이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은 것 역시 비혼 엄마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양육비 소송을 진행하는 것을 주저하게 한다. 김 대표는 “일부 비혼 엄마는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양육비를 청구하는 경우, 친부에게 아이를 뺏길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친부가 양육비를 줄 능력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며 “양육비 신청을 하면서 엄마와 아이의 정보가 노출되는데, 이 정보를 이용해 해코지하는 남자들도 있다. 양육비 소송을 포기하는 이유는 굉장히 다양하다”고 덧붙였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양육비 소송을 마치더라도, 고생한 만큼의 실익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조사에서 양육비로 ‘매월 50만원 이상’을 받는다는 비혼 엄마는 1명(0.7%)뿐이었다. 양육비를 받는 비혼 엄마 대다수는 월 50만원 이하로 지급받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보다 양육비를 신청하지 않았다(68.5%), 양육비를 신청했으나 상대가 주지 않았다(10.3%)는 답변이 더 많았다.
일부 비혼 엄마는 양육비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로서 받는 돈이 줄어들거나 수급자에서 탈락할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받은 양육비를 소득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비혼 엄마 당사자와 관련 단체, 전문가들이 일정기간 정부의 경제적 지원과 자립 지원이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여성가족부가 내년부터 양육비를 제때 못 받은 부모에게 먼저 대신 돈을 주는 ‘양육비 선지급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인 것을 두고 전문가들의 기대와 신뢰는 높지 않아 보였다. 유 사무국장은 “정부에서 양육비 선지급제를 한다는데, 이미 양육비 이행관리원 생길 때부터 계속 있던 얘기”라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Copyright © 쿠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중국인 모이면 ‘빌런’ 발생”…서교공, 민원 답변 논란에 사과
- 티메프 경영진 두번째 구속 기로…구영배 “책임 통감하고 반성”
- 의대 증원 협상 의지 없는 의협…“교육부가 해결책 내놔야”
- 박장범 KBS 사장 후보 ‘인청’ 정회…“거짓 답변으로 파행”
- 검찰, 우리은행 본점 압수수색…손태승 친인척 부당대출 의혹
- 尹대통령 지지율 23.7%, 3주만에 ‘깜짝 반등’ [리얼미터]
- “이재명=신의 사제”…李 ‘신격화 표현’ 찬양까지 등장?
- ‘유동성 위기’ 풍문에…“사실무근” 공시에도 롯데그룹株 급락
- 여야, 22일까지 헌법재판관 추천…내달 2·10일 본회의 합의
- 박형욱 의협 비대위원장 “尹 대통령에 의대 증원 보고한 관계자 책임 물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