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드렁크는 장소 감성형 공연을 만듭니다”
영국 극단 펀치드렁크는 전 세계 공연계에 ‘이머시브 씨어터(immersive theater)’ 열풍을 불러일으킨 주역이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1930년대 호텔 배경으로 선보인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는 펀치드렁크의 대표작으로 2011년부터 미국 뉴욕에서 오픈런 공연중이다. ‘슬립 노 모어’가 내년부터 한국에서 공연되는 것이 알려지면서 펀치드렁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마침 펀치드렁크 관계자 5명이 최근 한국을 찾았다. 충주시와 충주문화관광재단 문화도시센터가 8~12일 개최한 ‘이머시브 씨어터’ 워크숍에 강사로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번에 내한한 펀치드렁크 관계자 가운데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관객 경험 큐레이터인 콜린 나이팅게일과 커뮤니티&크리에이티브 참여 관리자인 조지아 피기스를 지난 10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머시브 씨어터에서 ‘이머시브’는 ‘몰입하다’는 뜻이다. 관객이 무대 위 배우들의 퍼포먼스를 수동적으로 감상하는 기존 연극과 달리 배우들과 같은 공간에서 움직이며 이야기 일부로 몰입시킨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피기스는 “펀치드렁크의 작업을 표현하는 용어로 ‘이머시브 씨어터’를 만든 것은 우리가 아니다”면서 “우리는 Site-sympathetic(장소 감성형)이란 용어를 선호한다. 단순히 퍼포먼스가 벌어지는 장소를 넘어 건물의 역사 등 다양한 맥락이 작품 속에서 중요하고 창의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소 특정형(Site-specific) 공연과도 다르다. 아마 이런 점이 펀치드렁크가 다른 단체와 차별되는 점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실례로 펀치드렁크는 예술감독인 펠릭스 배럿이 2000년 엑시터대학 연극과 졸업공연으로 극장 대신 인근 폐 군막사에서 연극 ‘보이체크’를 선보인 데서 시작됐다. 주인공이 군인이고 극 중에 막사가 등장하기 때문에 공연할 작품으로 ‘보이체크’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또 2022~2023년 런던에서 공연된 신작 ‘더 번트 시티(The burnt city)의 경우 그리스 신화 속 트로이 함락을 소재로 한 작품답게 1차대전 당시 무기 제작을 위해 사용됐다가 오랜 시간 비어 있던 두 대형 창고를 이어서 활용했다.
나이팅게일은 “우리 작업에서 공연 환경을 구축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하나의 공간을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면 어울릴지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나이팅게일은 이번에 워크숍이 열린 충주 건국대 글로컬 캠퍼스 학생회관을 참여자들과 함께 돌아본 뒤 건물의 전체 설계도를 나눠줬다. 그리고 건물 내 다양한 공간을 창의적으로 활용해 셰익스피어 고전을 이머시브 씨어터 스타일로 구성하도록 했다.
배럿이 대학 졸업공연으로 선보인 ‘보이체크’는 군막사 곳곳에서 극 중 장면들을 동시 진행하는 한편 마스크를 낀 관객이 그 안을 돌아다니도록 했다. 관객에게 가면을 쓰도록 하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나 반응을 알 수 없어서 익명성을 강화하는 만큼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만 몰입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펀치드렁크는 초기작인 ‘보이체크’를 시작으로 대표작 ‘슬립 노 모어’ 등 많은 작품에서 관객이 가면을 착용하도록 했다. 이외에도 대사 없이 퍼포먼스로만 공연을 진행하는 작품을 2003년부터 만들면서 안무가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관객들이 이야기의 조각들을 찾아 헤매야 하는 만큼 펀치드렁크는 대중에게 익숙한 고전을 선택하는 것이 특징이다. ‘보이체크’ 초연을 보고 펀치드렁크에 합류했다는 나이팅게일은 “같은 작품이라도 펀치드렁크의 해석이 독창적인 것은 작은 캐릭터까지 중시하며 이야기를 구성하기 때문”이라면서 “펀치드렁크의 작업은 관객이 느끼는 감정을 매우 중시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피기스는 “극단명인 펀치드렁크는 복싱 단어로 그로기 상태를 가리키는데, 관객들이 공연을 통해 혼을 쏙 빼놓을 정도의 경험을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면서 “이머시브 씨어터는 관객이 수동적인 관찰자가 아니라 다양한 공간을 이동하고 퍼포머와 상호작용하며 때로는 이야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관객 참여형 공연과도 다르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펀치드렁크의 구성원은 얼마나 될까. 단체의 규모를 묻자 피기스와 나이팅게일 모두 대답하기 어려워했다. 펀치드렁크의 작품에 새로운 예술가들이 계속 유입되는 데다 매번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이팅게일 같은 인물은 펀치드렁크 구성원인 동시에 독립적인 프로젝트 활동도 겸하고 있으며, ‘슬립 노 모어’의 공동연출을 맡는 등 여러 작품에 참여한 안무가 맥신 도일은 펀치드렁크 소속은 아니다. 이런 예외들에도 불구하고 단체의 운영과 작품 제작에 관여하는 핵심 멤버는 약 350명 정도. 피기스는 “펀치드렁크의 시작은 배럿이었고 지금도 예술감독을 맡고 있지만 모든 작품을 만든 것은 아니다. 창단 이후 많은 예술가들이 합류하면서 작품마다 참여한 사람도 다르다”면서 “어쨌든 공연 제작팀의 많은 멤버들이 꾸준히 토론과 협업을 통해 지속적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충주=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중절죄 폐지 5년, 입법 공백 속… ‘36주 낙태’ 브이로그도
- “하늘에 구멍 뚫린듯”…‘예측불가’ 소나기, 원주서 포착
- “쯔양에게 용돈 받아”…‘폭로 모의’ 유튜버들 추가 녹취
- 프로야구 선수도 ‘낙태 종용’ 논란…“널 망쳤다” 녹취도
- 쯔양 사생활 고백 몰아간 사이버렉카들, 처벌 방법 없나
- “정우성·문소리는 좌파, 나훈아·소유진은 우파”
- 아이유·비비, 상반기 멜론 최다 검색
- [단독] “쯔양, 그렇게 힘들때도 후원했다니” 보육원장 인터뷰
- ‘쯔양 협박 의혹’ 유튜버 구제역 “부끄러운 돈 받은 적 없어”
- 이선균 협박한 유흥업소 여실장…마약 혐의로 징역 2년 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