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한국·중국·북한 어디 사람이야?" 엄마 울린 9살 딸의 질문 [사각지대 탈북민 2세들]

박현주, 정영교, 이유정 2024. 7. 1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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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는 한국, 중국, 북한 사람 중 누구야?"
"너는 중국 사람도, 북한 사람도 아냐. 대한민국 사람이야."

탈북 여성 김정아(가명) 씨는 중국에서 낳은 딸로부터 "나는 도대체 어디 나라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김 씨는 2010년 입국했고, 3년 뒤 중국에 남겨둔 딸을 한국으로 데려왔다. 당시 딸은 9살이었다.

지난달 29일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일대. 연합뉴스.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2학년의 나이지만, 모국어를 전혀 모른 채 낯선 환경에 던져진 딸이 겪었을 정체성의 혼란을 생각하며 김 씨는 한숨을 쉬었다. "제3국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넘어온 탈북 자녀들은 한국 사회에서 지내면 지낼수록 더욱 더 자신의 출신에 대해 혼란스러워한다"는 게 김 씨의 생각이다. 전문가들은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 학생은 중국과 북한, 그리고 한국이라는 세 경계를 넘나든 가족사가 가져온 정체성의 무게를 홀로 견디고 있다"(지난해 11월 한국교육개발원 보고서)고 지적한다.

법적으로는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북한이탈주민(탈북민)으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그나마 어머니가 아이와 한국에 동반 입국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24시간 공안에 잡혀 강제북송당할 위기에 처해 있는데 아이와 함께 장거리를 이동하는 위험을 감수하긴 쉽지 않다. 중국에서는 탈북민 어머니가 불법체류자 신분이기 때문에 '법적 보호자'도 되지 못한다.

한국에 데려와도 아이들이 탈북민으로 인정받거나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런 차별적 대우로 인한 부담은 오롯이 탈북민 엄마가 지게 된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김 씨는 "탈북 여성들은 엄청난 고민과 싸움, 희생을 통해 중국에서 낳은 아이를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데려온다"며 "그러나 대한민국에선 중국에서 태어난 자녀라는 이유로 탈북민으로 인정받지 못해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무엇보다 교육 문제가 가장 고민"이라며 "자녀가 학교에 가면 언어 문제로 친구들과 소통이 어렵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내면의 자신감이 떨어지고 제2의 고통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탈북 여성 중 생계를 책임 지며 '독박 육아'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세살배기 갓난아기를 업고 와서 혼자 키우는 (탈북) 엄마들이 주변에 너무나도 많다"고도 덧붙였다.

김영옥 기자


역시 2020년에 먼저 한국에 와 3년 후인 지난해 중국에서 낳은 남매를 한국으로 데려온 한경은(가명) 씨도 "아이들은 데리고 왔지만 막상 살아갈 생각을 하면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한 씨의 자녀는 각각 21살, 19살로 중국에서 함께 살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보호자가 없어졌고, 어머니가 있는 한국으로 왔다고 한다.

현재 암 투병 중인 한 씨는 "원래 내가 기초생활수급자였는데 이제 아이들도 줄줄이 수급자"라며 "한국말도 모르는 아이들이 자꾸 '엄마, 알바(아르바이트) 자리 좀 찾아줘'라고 한다"고 했다. 현재 탈북민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는 한 씨의 딸은 방과 후엔 고깃집 주방에서 설거지하며 돈을 번다.

한 씨는 "(자녀들은) 대학에 가고 싶다는 꿈도 꾸는데 대학 등록금이 엄청 많아서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며 "정부 지원 없이 이 모양으로 살고 있는데 우리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차별 없이 대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7월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일대. 연합뉴스.


사각지대에 놓인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 문제는 탈북 과정에서 이뤄지는 탈북 여성의 인권 유린 문제와도 직결된다. 한경은 씨 또한 탈북 과정에서 인신 매매를 당해 중국인 남편과 결혼했다. 자녀를 낳고 '정착 아닌 정착'을 하며 살던 중 공안에 붙잡혀 북송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중국인과 결혼한 탈북 여성의 경우 뒤로 돈을 주는 방법으로 공안에서 빼내는 일도 간혹 가능한데, 한 씨도 경위는 모르지만 당시 가까스로 풀려난 뒤 두 번째 운은 없겠다는 생각에 혼자만이라도 우선 한국행을 택했다고 한다.

김경진 기자


한 씨와 같이 상당수의 중국 내 탈북 여성들은 인신 매매를 당한 후 중국인 남편과 원치 않는 결혼을 한 뒤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는 북한을 떠나며 그렸던 삶과는 딴판이지만 자칫 강제 북송될 경우 각종 고문 등을 받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공안의 단속을 피해 숨죽이고 살 수밖에 없다. 불법 체류자 신분이라 성범죄 등 각종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탈북 여성은 브로커에 거액을 주고 제3국을 거쳐 한국행에 성공하더라도 중국에서 낳은 자녀와 생이별을 하거나 자녀를 데려오기 위해 수년째 악착같이 돈을 모으며 갖은 고생을 한다. 한국에 먼저 들어온 뒤 자녀와 재회하기까지 3년이 걸렸던 김정아 씨는 "중국에 두고 온 아이를 한국에 데려올 능력을 갖추기 위해 천륜을 끊고 살았는데 정말 못할 짓"이라며 "떨어져 있던 시간이 아이에겐 결핍으로 남아 미안할 따름"이라며 목소리를 떨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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