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적 택했는데…탈북민 자녀를 '중국 씨'라며 밀어내" [사각지대 탈북민 2세들]
"중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인이 되기 위해 온 아이들을 외면해선 안 됩니다. 탈북민 지원을 넘어 '탈북민 가정'을 보듬어야 합니다."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북한이탈주민(탈북민) 대안학교 '여명학교'의 조명숙(54) 교장은 "중국을 비롯해 제3국에서 태어난 탈북민의 자녀에 대해 '중국의 씨', '결국 돌아갈 아이들'이라며 자꾸 밀어내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며 이같이 말했다.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들은 한국어 구사 등 언어의 장벽 뿐 아니라 법적으로 탈북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탓에 각종 지원에서 배제되고 정규 교육 과정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는 게 탈북민 맞춤형 교육을 위한 대안학교다.
조 교장은 "한국에서 인구 감소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는데 제3국 출생 탈북민의 자녀는 중국 등 태어난 나라의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인이 되겠다고 자진해서 온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행법상 탈북민으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우리 가족이나 마찬가지"라며 "한국어 교육 등 사회 적응을 위한 지원 과정이 지금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장은 탈북 여성이 자녀를 키우며 한국 사회에서 겪는 고충도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 탈북 여성이 자녀를 향해 지니는 죄책감은 너무나도 크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탈북 여성들이 중국에서 언제 잡혀갈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아이를 키우다 본인 먼저 일단 한국으로 넘어오곤 한다"며 "이후 아이를 중국에서 한국으로 데려오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엄마들이 죄인이 되는 셈"이라면서다.
2004년 문을 연 여명학교는 2010년 '학력 인정 대안학교'로 인가받았다. 그동안 서울 관악구와 중구의 상가 건물을 거치며 탈북 학생을 교육했고, 수백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2019년에는 은평구에 새 부지를 마련해 학교를 이전하려 했지만 무산됐다. 탈북민을 향한 주민들의 반감이 걸림돌이었다. 여명학교 이전에 반대하는 민원이 구청에 접수됐고,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왔다.
현재 여명학교는 현재 강서구의 폐교 건물로 임시 이전했다. 조 교장은 "지금 있는 건물도 2026년 2월에는 떠나야 하는 상황"이라며 "아이들은 새 학교에 대한 소망을 담아 그림을 그리며 간절히 바라는데 이들을 받아줄 곳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자율형 초중고 통합 대안학교인 '우리들학교'의 윤동주(47) 교장은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 중에선 연령, 학력 차이, 언어의 장벽 등 여러가지 문제로 정규 학교에 갈 수 없는 아이들이 많다"며 "미인가 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는 이들에 대한 지원도 절실하다"고 말한다. 우리들학교는 여명학교와 달리 졸업을 해도 학력이 인정되지 않아 검정고시를 치러야 하지만, 정규 교육과정에 편입되기 어려운 여건에 있는 학생들의 학업을 도와주는 '최후의 보루'로서 역할하고 있다.
윤 교장은 "우리들학교는 정규학교에 진입이 어려운 학생들이 우리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학력을 취득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고난의 행군 시기에 탈북한 경우에는 북한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들에게 최소한의 교육 기회를 제공해 우리 사회에 제 몫을 다하며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교장은 비인가 대안학교에 다니는 학생에게도 최소한 공부하는 기간에는 생계비를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생계를 위협받는 상황에선 공부할 수 없다"며 "기본적인 학력이 없어 모두가 꺼리는 직업전선으로 내몰린 이들이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줘야 한다"면서다.
2010년에 문을 연 우리들학교는 학생들에게 우리 사회에 적응해 살아갈 수 있는 자생력을 심어주려 노력한다. 학교의 재정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학생들은 각자 교통비를 벌어 자발적으로 학교에 나와 열심히 공부해 검정고시로 학력을 취득하고 있다.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사회 적응을 위한 훈련까지 겸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당장 내년에도 학교의 존립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매 월말 납부해야 하는 건물 월세와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식사비, 최저 임금 수준인 교사 사례비가 부족한 상황이고, 학생이 줄어들면 학교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지원조차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윤 교장은 "미인가 학교에 진학할 수밖에 없는 제3국 출신 탈북민 자녀들이 안정된 공간에서 교육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정부나 민간에서 수업 공간만이라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러면 늙어서 쫄딱 망한다" 재미교포 놀란 한국 낭비벽 | 중앙일보
- '9년째 불륜' 홍상수·김민희 또 일냈다…'수유천' 로카르노행 | 중앙일보
- 꼬박 7시간 100쪽 고쳐쓴 尹…“밥 먹자” 버너로 찌개 끓였다 | 중앙일보
- 만화카페서 음란행위 한 중년 커플…"더워서 옷 벗었다" 발뺌 | 중앙일보
- "인생 망치게 한 것 같아"…'낙태 강요' 프로야구 선수 녹취 공개 | 중앙일보
- "이러다 대형사고 터진다"…요즘 성수역 퇴근시간 충격 장면 | 중앙일보
- "월 400만원씩 외가에 지원"…그리 고백에 父 김구라 깜짝 | 중앙일보
- [단독]"VIP 표현 부풀린 것"…임성근 구명설 '멋쟁해병' 5인의 입 | 중앙일보
- 이래서 수수료 올렸나…배민, 한국서 벌어 독일 4000억 퍼줬다 | 중앙일보
- 모텔 뛰쳐나온 알몸 여고생, 편의점 달려가 "도와주세요" 무슨일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