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아이도 아닌데 투명인간 됐다…법 때문에 차별 받는 이들 [사각지대 탈북민 2세들]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를 북한이탈주민(탈북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차별'은 기본적으로 법·제도의 미비에서 비롯됐다. 관련 법이 만들어질 때는 탈북의 과정에서 이런 상황이 생길 것을 가정하지 못했고, 이들의 존재가 확인된 뒤에도 무관심으로 인해 차별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이뤄지지 않았다.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이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데도 여전히 '제도적 투명인간'으로 남은 이유다.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들이 탈북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건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북한이탈주민법)이 2조 1항이 근거다. ""북한이탈주민"이란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에 주소, 직계가족, 배우자, 직장 등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북한을 벗어난 후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아니한 사람을 말한다"고 한정한다.
해당 법은 1990년대 중후반 북한에 수백만 명이 아사한 '고난의 행군' 시기에 급증한 탈북민의 한국사회 정착을 돕기 위해 1997년 1월 제정됐다. 올해 국가기념일로 처음 지정된 북한이탈주민의 날(7월 14일)은 해당 법이 최초로 시행된 날이다.
이때만 해도 상당수 탈북민은 중국 등에 있는 한국 공관에 진입해 피신해 있다 한국행에 성공하곤 했다. 이에 당시 입안자들은 탈북 중 제3국에 체류하는 기간이 지금처럼 길어지고, 그 과정에서 탈북 여성에 대한 각종 인권 유린이 일상화할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 통일원(현 통일부) 차관을 지낸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법 제정 과정에선 탈북 과정이 장기화하고 탈북 여성들이 인신매매나 강제 결혼 같은 고초를 겪는 상황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지금이라도 법·제도의 미비점을 파악해 신속하게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수면 위로 떠오른 뒤에도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를 제도권 내로 편입하기 위한 노력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전체 탈북민 자녀 중에서 제3국 출생 비율이 50%를 넘어서기 시작한 10여년 전부터 국회에선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를 지원하기 위한 법률 개정안은 꾸준히 발의됐다. 하지만 번번이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되는 수순을 밟았다.
근본적으로 탈북민의 정의'를 규정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법 2조를 고쳐 탈북 과정에서 출생한 이들도 탈북민으로 인정하게 하면 되지만, 그간 법이 31차례나 개정되는 동안 해당 조항은 알기 쉽게 한글 표기를 수정한 한 차례 말고는 손댄 적이 없다.
여기엔 '탈북민은 표가 안된다'는 정치권의 인식이 영향을 미쳤단 지적도 있다. 탈북민 중 수도권에 정착한 절반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국에 분산돼 있다. 지역구 정치인들이 농촌 지역 등 지방에서 주요 유권자층으로 떠오른 다문화 계층을 바라보는 시각과는 다르다는 의미다. 이번 22대 국회에서 탈북민 출신은 청년과학기술인인 국민의힘 박충권 의원(비례대표)이 유일한 건 정치권이 탈북민의 권익 보호에 무관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북한 당국의 코로나19 차단을 위한 국경통제의 여파로 탈북민 입국이 잠시 주춤하지만, 향후 수년에 걸쳐 국내로 입국하는 탈북민은 급증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지금이 관련 법·제도를 정비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이번 '탈북민의 날' 국가기념일 제정을 계기로 관련 법·제도의 정비가 신속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탈북민은 먼저 온 통일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우리 사회가 따뜻한 관심으로 이들의 정착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정영교·박현주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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