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꼬라지, 정신 못차려 한심"…與 집안싸움에 고개 젓는 대구

윤지원 2024. 7. 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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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윤상현, 원희룡,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왼쪽부터)가 10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4차 전당대회 부산.울산.경남 합동연설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당 돌아가는 꼬라지가 희한하지예”·

11일 오전 동대구역에서 만난 박세목(69) 택시 기사의 말이다. 자신을 국민의힘 당원이라고 소개한 그는 목적지인 서문시장에 이르는 20분 동안 거침없는 비평을 쏟아냈다. 특히 7·23 전당대회를 수놓은 ‘문자 읽씹’ 등 네거티브 공방에 대해 “정신 못 차리고 자기 살만 갉아먹고 있는기라”면서 “한심해서 뉴스 채널을 홱 돌려 뿌린다”고 했다.

대구에서 개인택시를 모는 박세목씨(69)

TK(대구·경북)는 국민의힘 전당대회 투표권을 가진 선거인단(84만3292명) 비중에서 수도권(37%)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 지역(21.6%)인 데다, 보수 성향이 짙어 당심(黨心)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여겨진다. 그런데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만난 시민 대다수는 실망감부터 내비쳤다. 4·10 총선 참패에도 진흙탕 싸움만 계속되고 있다는 불만이다.

반월당역에서 만난 70대 이모씨는 “이북보다 무자비한 이재명·정청래를 끌어 내려야 할 시국에 당이 왜 집안싸움만 하고 있는지, 윤 대통령도 뭣 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에서 섬유공장을 운영하는 김이석(45)씨는 “당원이 된 지 13년인데 구태 정치가 이 지경이었던 적은 없다”면서 “툭하면 특검·탄핵소추를 일삼는 민주당을 저지해야 하니 피치 못해 국민의힘을 선택하는 심정”이라고 했다. 개인택시를 모는 여각환(68)씨도 “대구 미분양 아파트 물량이 1만채에 달하는 데다 체감 경기가 최악”이라며 “총선 패배 원인은 민생 파탄인데, 여당이 본질을 마주하질 않는다”고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오른쪽)과 원희룡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3일 오후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2·28 자유광장에서 개막한 '2024 대구치맥페스티벌'을 찾아 건배하고 있다. 뉴스1

장외에서 홍준표 대구시장과 유승민 전 의원이 자중지란을 더하는 것에도 냉소가 감지됐다. 홍 시장이 8일 한동훈 대표 후보를 ‘배신자’로 공격하는 과정에서 유 전 의원을 소환하자, 유 전 의원이 “홍 시장은 기회주의자”라고 응수하면서 두 사람의 설전이 이어지고 있다. 서문시장에서 이불가게를 운영하는 김시찬(68)씨는 “홍준표 그기는 경남지사 지내고 외탁한 자식 같은 인간인데 왜 대구에서 받아줬는지를 모르겠습니더”라며 “자기 정치만 할 줄 아는 유승민과 이 판국에 치받는 걸 보면 망신스럽고, 절대 대구 당심으로 착각 말아주이소”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서문시장에서 이불 가게를 운영하는 김시찬씨(68)

다만 전당대회를 거쳐 출범할 새 지도부에 대한 기대도 엿볼 수 있었다. 달성군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광기(54)씨는 “기존의 여권 정치인들로는 민주당의 돌격을 막아낼 수가 없다”면서 “국민의힘은 솔직히 물갈이가 필요한 수준인데, 한동훈 후보가 새 바람을 일으켜 줄 것”이라고 했다. 서문시장에서 만난 60대 김모씨도 “젊은 정치인이 입바른 소리 좀 한다고 좌파로 내모는데, 이번엔 또 안 속을기라”면서 “친윤계가 이미 한차례 (김기현) 당 대표를 로봇트로 만들어 뿌렸는데 또 그 꼴 날 순 없지”라고 했다.

반면 서문시장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양창원씨(69)는 “사실 대통령감은 원희룡”이라면서 “한 후보는 윤 대통령과 정치 경력 없는 게 꼭 같지 않나. 당대표하려면 당내 기반이 있어야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대구 중구 냉면집에서 점심을 먹던 60대 윤모씨는 “한 후보가 대표가 되면 대통령과의 파열음은 수순”이라며 “오래된 당원은 그 사달을 다들 걱정하고 있다. 민주당에 또다시 대통령 탄핵 빌미를 주지 않아야 하는데 한동훈 후보로는 불안 요소가 있다”고 했다.

서문시장에서 과일을 파는 최재순(75)씨는 “저는 나경원 후보가 좋심더. 질서 있게 딱 할 말만 하고, 여기저기 줄 안 서고 민심만 따를 분”이라면서 “윤상현 후보도 점잖아서 보기 좋다”고 했다.

‘문자 읽씹’ 논란도 인식차가 있었다. 달성공원역 근방 카페에서 일하는 이상아(42)씨는 “총선 때 나눈 문자가 왜 이 시점에 뒤늦게 튀어나왔는지 의문”이라며 “진짜 김건희 여사가 사과할 의향이 있었다면 한 후보의 읽씹 여부는 부차적인 것”이라고 했다. 반면 달성군 주민인 70대 박모씨는 “20여년 모신 상사 내외를 언제는 죽고 못 살더니, 이제 와 문자까지 씹는 걸 보면 한 후보를 너그럽게 보긴 어렵다”고 했다.

서문시장에서 과일장사를 하는 최재순씨(75)


서문시장에서 분식을 파는 양창원씨(69)


한편 이날 발표된 NBS 전국지표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대구·경북권에서 차기 당대표 적합도는 한동훈(40%), 나경원(10%), 원희룡(7%), 윤상현(2%) 후보 순으로 조사됐다. 국민의힘 지지층만을 대상으로 한 전국 단위 적합도 조사에선 한동훈(55%), 나경원(12%), 원희룡 10%, 윤상현(1%) 후보 순이었다. 각 후보를 향한 TK 바닥 민심은 12일 대구에서 열리는 합동연설회 현장에서 가늠될 전망이다.

대구=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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