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조 걸렸다…"美군함 내가 고칠래" HD현대∙한화의 경쟁
HD현대와 한화가 이번엔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에서 경쟁하고 나섰다. 두 회사는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수주를 두고 공방을 벌여왔다. 특수선 시장의 확대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기업들이 새 활로 찾기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
11일 HD현대중공업은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미국 해군보급체계사령부와 ‘함정정비협약’(MSRA)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HD현대중공업은 향후 5년간 미국 해상 수송사령부 소속 지원함과 미 해군의 전투함에 대해 MRO 사업 입찰 참여 자격을 갖게 됐다. 주원호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대표는 “총 18척의 수출 함정을 건조한 기술력과 필리핀에서 축적한 MRO 사업 노하우를 바탕으로 미국 함정 MRO 시장에 연착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화오션도 미 함정 MRO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지난달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미국의 조선소를 인수했다. 한화 측이 인수한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는 상선을 전문적으로 건조하는 곳이지만, 미 해군 소송함의 수리·개조 사업도 맡아왔다. 이번 인수로 미 함정 MRO 시장에서 거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함정은 평시에도 언제든 작전에 투입 될 수 있도록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MRO 업체는 유지·관리부터 첨단장비 업그레이드까지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세계 최대 방위산업 시장을 보유한 미국은 함정 MRO를 두고 고민이 커지던 차였다. 미국의 선박 산업은 전통적으로 매우 폐쇄적인 시장이다. 1920년 제정된 미국 연안무역법(존스법)에 따라, 미 해상에서 군함 등 선박을 운용하려면 미국 조선소에서 건조·개조해야 한다. 덕분에 미국의 조선사들은 군함과 선박 건조를 독점하며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렸지만, 이에 안주하다보니 코로나19 기간을 지나며 미국의 조선 경쟁력이 저하됐다.
문제는 최근 미·중 갈등 등으로 미 해군 함정 가동률이 늘어나면서다. 미국 조선사만으로는 MRO 수용력이 한계에 도달하자, 미 정부는 해당 시장을 일부 개방하기로 했다. ‘보안 유지’가 중요한 방위산업 특성상, 미국의 우방 국가 중 조선업 역량 높은 한국이 시장에서 유리하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해군 함정 MRO 사업 규모는 세계 최대로, 연 2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MRO의 경우 선박 전 주기에 거쳐 이어지기 때문에, 조선사가 장기적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시장조사업체 모르도르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전 세계 해군 함정 MRO 시장 규모는 올해 577억6000만 달러(약 79조6600억원)에서 2029년 636억2000만 달러(약 87조74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대한조선학회 미래위원회에 따르면 2030년 세계 함정시장 규모는 444억 달러(약 61조2500억원)에 이른다. 신규 군함 수주 확대에는 한계가 있고, 노후 함정에 대한 글로벌 MRO 수요는 늘어날 전망이다. HD현대는 이미 필리핀 해군의 함정 MRO 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한화는 호주의 방산 조선업체 ‘오스탈’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오스탈은 호주·미국 해군에 납품하고 있으며, 미국 앨라배마주 등에도 조선소를 두고 있다.
‘세계의 경찰’인 미국의 군함 MRO 사업권을 따내는 건 신뢰할만한 기술력을 보증하는 상징적 의미도 있다. 향후 미 정부가 발주하는 함정·특수목적선·관공선 등 신조(新造)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힐 수도 있다. 두 회사는 미국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아시아·남미 등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앞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사업비 7조8000억원 규모의 KDDX 사업 선정을 두고 갈등해왔다. 함정 초안을 그리는 개념설계는 한화오션이, 무기 체계 등을 구체화한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각각 따냈는데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누가 맡느냐를 두고 벌이는 주도권 싸움이다. HD현대중공업 측은 “관례에 따라 기본설계 업체가 수의계약으로 사업을 수행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한화오션은 “경쟁 입찰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국내 방산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으로 분석한다. 윤지원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는 “K-방산에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던 상황인데, 북미·중남미 등으로 외연 확장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이 의미 있다”면서도 “일본·호주의 조선업체도 시장확장에 나선 상황에서, 국내 기업 간 경쟁이 과열되는 건 우려스럽다. 결국은 초격차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시장의 선택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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