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바이든, 왜 버티는 걸까

태원준 2024. 7. 12.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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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토론 참사에 교체론 분출
"늙었음을 인정하라" 여론에
"극복 가능한 실패" 반박 중

'실패와 극복' 수없이 반복해온
삶의 궤적에서 늘 그랬듯이
'노화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
아직 버리지 못한 듯하다

“산수를 좀 해봐야겠는데요. 제가 너무 어려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971년 상원의원 출마 제안을 받았을 때 이렇게 머뭇거렸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당시 그는 만 스물여덟 살이었다. 선거는 72년 11월, 취임은 73년 1월인데, 취임 전에 상원의원 자격조건인 서른 살이 되는지 따져봐야 했다는 것이다. 선거일에는 아직 스물아홉 살이지만 서른 번째 생일이 취임일 전이라 아슬아슬하게 조건을 충족했고, 그렇게 출마한 선거에서 최연소 상원의원이 됐다.

나이 문제를 계산하며 첫 선거에 나선 지 53년이 흐른 지금, 그는 인생의 마지막 선거일 대통령 재선에 뛰어들어 다시 나이 장벽을 맞닥뜨렸다. 이번엔 너무 늙어서 문제였다. 여든한 살의 후보는 지난달 TV토론에서 말을 더듬고, 끝맺지 못하고, 때때로 멍하니 서 있었다. 그 충격적인 모습에 후보 교체론이 터져 나왔다. 모두가 똑같은 이유를 들었다. “이대론 트럼프를 이길 수 없다.”

민주당의 패닉은 ‘굿 맨(바이든) vs 배드 맨(트럼프)’이던 구도가 한순간에 ‘올드 맨 vs 배드 맨’으로 바뀐 데서 비롯됐다. 아무리 좋은 후보라도 늙은 후보는 나쁜 후보를 이기지 못한다는 시각이 교체론의 기저에 있다. 바이든은 거꾸로 완주를 선언했다. 자신은 여전히 건재하고 트럼프를 꺾을 유일한 후보라며 갈수록 거칠어지는 사퇴 촉구에 2주째 맞서고 있다. 그는 왜 이렇게 버티는 것일까? 없는 선거도 만들어서 한다는 정치인의 권력욕은 설명이 되기에 충분치 않아 보인다. 이미 대선 출마를 스스로 접은 경험이 두 번이나 있다.

1980년 상원의원 바이든은 대선에 나서라는 권유를 받았다. 약세인 지미 카터 대통령에 맞서 민주당 경선에 출마하라며 선거전략가들이 모여들었다. 그들과 판세를 따져보던 회의에서 한 보좌관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의원님, 이길 것 같다고 출마하진 마십시오. 왜 나서는가? 뭘 하려는가? 이 두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뛰어들어야 합니다.” 결국 뜻을 접은 그에게 1984년 또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맞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의 출마 서류에 일단 서명해놓고 생각을 정리하러 휴가를 떠났는데, 비행기가 휴양지 공항에 닿기도 전에 불출마를 결정했다. 4년 전 두 질문의 답을 여전히 찾지 못했다는 게 이유였다.

다들 나서라 할 때 안 했던 이가 지금 다들 접으라 하는데 고집하는 배경에는 1988년 대선 경험이 작용했을 듯하다. 마침내 준비가 됐다고 판단해 뛰어든 선거에서 영국 노동당수 연설문을 베꼈다는 지적이 제기돼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정치인에게 수치스러운 연설 표절 논란은 그를 상원에서 가장 지독한 공부벌레로 만들었다. 자기주장을 자기 언어로 말하려 온갖 서적을 게걸스레 읽으며 네 번의 대선을 건너뛴 끝에 2008년 다시 출사표를 던질 수 있었다.

바이든은 이런 실패와 극복의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삶을 살았다. 말더듬이로 놀림감이 됐던 어린 시절 거울 앞에서 책 읽으며 스스로 고친 것부터, 오바마가 부통령인 그를 제치고 힐러리를 택해 ‘한물 간 정치인’ 취급을 받았지만 힐러리가 패했던 트럼프를 꺾고 끝내 대통령이 된 것까지. 자신을 평가 절하하는 이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입증해 보이며 평생을 살아온 이가 이제 여든이 넘어 다시 그런 시선과 마주했다.

TV토론을 ‘참사’로 여겨 사퇴를 촉구한 수많은 논평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신이 좋은 사람인 건 잘 아는데, 이제 늙었음을 인정하시라.” 바이든은 반박한다. “그 토론은 내게 늘 찾아왔던 실패 중 하나일 뿐이고, 실패는 극복하는 것이니 물러날 이유가 없다.” 두 주장이 충돌하는 지점은 명확하다. 노화(老化)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다. 불가항력이니 물러나는 게 옳다는 다수의 목소리 앞에서 노(老)정치인은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아직 버리지 않았다.

세계가 주시하는 바이든 사퇴론의 쟁점은 ‘트럼프를 이길 수 있느냐’에 맞춰졌지만, 조금 달리 보면 ‘인간이 과연 늙음을 극복할 수 있느냐’의 논쟁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는 늙음의 숙명에 맞선 인류 중 가장 리스크가 큰 싸움을 시도한 인물로 기록될지 모른다. 개인의 성패를 넘어 민주주의와 세계 질서의 향배가 걸려 있다. 베팅을 하라면, 그가 결국 사퇴를 택한다는 쪽에 걸겠다. 육체적 노화의 반대급부인 노년의 지혜가 있으니, 늙음을 극복하는 현명한 길은 늙었음을 인정하는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치지 않을까.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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