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정치쇼’ 그리고 무비 저널리즘

임세정,문화체육부 2024. 7. 12.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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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재밌는 정치드라마를 봤더니 뒷맛이 쓰다.

설경구 김희애 김미숙 등 연기 경력이 평균 40년인 베테랑 배우들이 주요 인물을 연기하는 이 드라마는 청와대와 여의도를 무대로 정치인들의 권력 암투를 그렸다.

매일 뉴스로 접하는 현실 속 '정치쇼'는 우스울 때도 있지만 드라마나 영화 보듯 즐기기엔 한숨이 나온다.

드라마가 실제 정치인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는 보도도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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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정 문화체육부 차장


간만에 재밌는 정치드라마를 봤더니 뒷맛이 쓰다. 진짜 같은 가짜와 가짜 같은 진짜를 교묘하게 섞어 놓았달까. “저건 말도 안 된다”와 “저런 경우가 있었지”를 반복하다 어느새 정주행이 끝났다.

넷플릭스에서 지난달 말 공개한 시리즈물 ‘돌풍’이 꾸준히 화제몰이를 하고 있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 콘텐츠 통합 검색 플랫폼 키노라이츠의 주간 통합 콘텐트 순위에서 드라마는 여전히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넷플릭스 스트리밍 순위에서도 국내 1위는 물론 ‘글로벌 톱10’ 시리즈(비영어) 부문 5위권을 지키고 있다.

설경구 김희애 김미숙 등 연기 경력이 평균 40년인 베테랑 배우들이 주요 인물을 연기하는 이 드라마는 청와대와 여의도를 무대로 정치인들의 권력 암투를 그렸다. 드라마는 거대 권력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싶은 국무총리 박동호와 그에 맞서는 경제부총리 정수진의 대립을 큰 줄기로 한다.

매일 뉴스로 접하는 현실 속 ‘정치쇼’는 우스울 때도 있지만 드라마나 영화 보듯 즐기기엔 한숨이 나온다. 야당의 “정신 나간 국민의힘” 발언이나 여당을 흔든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 논란을 국민들은 재밌게 보지 않는다. 정치인들의 머릿속에 민생은 없고 포퓰리즘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진실보다는 권력에 가까이 가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돌풍’의 ‘허구 같지 않은 허구의 정치쇼’가 그야말로 볼 만하지만 가슴이 답답해지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박동호는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가 아니면 이 나라가 무너진다’는 오만한 정치인을 두고 “방패만 다를 뿐 같은 갑옷을 입고 있다”고 말한다. 욕심을 명분이라 내세우며 폭주하는 캐릭터들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특정 인물, 사건을 떠올리고 현실 정치와 비교한다.

배우 김희애가 연기한 정수진과 그 남편은 과거 학생운동 단체였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출신이다.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당하던 정수진은 지금 정경유착을 충실히 실천하는 부패한 정치인이다. 거짓을 덮기 위해 더 큰 거짓을 저지르고 국민의 눈을 속인다. 전대협 의장 출신인 남편은 정수진의 권력에 기생하는 사모펀드 대표가 됐다. 진보진영 출신으로 박동호의 정치적 아버지이자 훗날 노벨 평화상을 받은 대통령이 되는 장일준(김홍파)은 썩은 정치를 도려내자던 결의를 잊고 타락의 길을 걷는다.

박동호 역의 설경구는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란 외피보다 인간의 욕심을 그린 이야기와 캐릭터를 기억해 달라 했다. 현실과 연관짓기보다 드라마 자체로 즐겼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소재가 소재인 만큼(명대사도 넘쳐나고 전개가 흥미로워서) 여러 대목이 뇌리에 남지 않을 수 없다.

12·12 군사반란을 배경으로 한 김성수 감독의 영화 ‘서울의 봄’이 1000만 관객을 달성했을 때 평론가들이 무비 저널리즘을 언급했다. 무비 저널리즘은 재미를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의 기능을 말한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들을 이야기할 때 주로 나오는 단어다.

무비 저널리즘의 개념은 드라마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돌풍’은 허구의 이야기지만 자꾸만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드라마가 실제 정치인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는 보도도 접했다.

드라마가 현실에 돌풍 같은 영향을 주는 일은 잦지 않다. 박경수 작가는 “권력을 비판하는 작품을 쓰겠다고 의도하고 시작한 적은 없다”고 했다. 그래도 ‘돌풍’이 현실에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창작물로서 긍정적인 기능을 하면 좋겠다. 생각해보게 하는 일, 그건 작품을 만든 사람들이 오랜 시간 기울인 노력의 가치를 인정받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임세정 문화체육부 차장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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