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떠남과 돌아옴
나는 것… 돌아와 맞이하는
일상을 더욱 가치있게 한다
종강과 함께 출국해 지금은 중앙아시아 조지아의 스테판츠민다(카즈베기)에 머무르고 있다. 어제는 카즈베기 국립공원의 장엄한 자연 속으로 들어가 해발 2700m까지 걷는 주타(juta) 트레킹을 즐겼다. 협곡 사이로 넓게 펼쳐진 초원을 걸으며 지친 영혼이 치유되고 호연지기가 길러지는 듯했지만, 예상치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트레킹 루트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하산할 때 호기심에 이끌려 올라갈 때와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한참을 내려와 계곡을 건너야 하는 지점에 도달했지만, 물살이 너무 거세 건널 수 없었다.
신발을 벗고 옷을 적실 각오를 하든지, 아니면 되돌아가서 올라왔던 길로 내려가야 했다. 혹시 건널 만한 지점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계곡을 따라 길도 없는 곳을 ‘양처럼’ 헤맸다. 인적도 없는 곳에서 한 시간이나 헤매다 겨우 건너기는 했지만 신발까지 다 빠지고 말았다. 처음부터 되돌아가거나, 신발을 벗고 건너는 결정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둘 다 피하려다 고생만 진탕 했다.
여행에서 맞닥뜨리는 선택과 결정의 순간들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낯선 길 앞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두려움과 약점을 가진 사람인지 발견하게 된다.
계곡 앞에서 누군가는 신발을 벗고 과감히 물을 건널 결단을 내릴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되돌아가 안전한 길로 돌아올 것이다. 호기심을 좇는 사람은 새로운 길을 탐험하다가 특별한 경험을 얻기도 하고 엉뚱한 난관에 부닥치기도 한다. 신중한 사람은 안전한 길을 선택해 고생을 피할 수 있지만,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전근대 사회에서 여행이나 유람은 특권층만 누릴 수 있는 사치였지만, 현대에 와서는 매우 일반적인 대중적 활동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일반인이 참여하는 단체관광이 시작됐다. 당시 여행은 주로 관광버스를 타고 미리 정해진 코스를 따라 명승지나 고적지, 또는 산업 경관을 둘러보는 형태였다. 계획된 일정에 따라 주요 관광지를 방문해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는 형태로 진행됐다.
1990년대 이후에는 여행의 양상이 다양해졌다. 사람들은 단체관광에서 벗어나 개인적 취향과 목적에 맞춘 여행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여행 문화도 크게 변했다. 여행자들은 다양한 문화와 경험을 탐구할 수 있게 됐고, 이는 여행의 목적과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취향에 따라, 세대에 따라 여행 방식은 계속 분화하고 있으며, 누구나 나름의 여행 철학 하나쯤은 갖고 있다. 모험적이고 독립적인 여행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배낭여행이나 자유여행을 통해 자신만의 경험을 쌓고자 한다. 반면에 안정적이고 편안한 여행을 기대하면서 패키지 여행이나 고급 리조트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형태인가에 따라 여행지에서의 행위는 완전히 다르지만 모든 여행의 공통점은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는 것이다.
여행과 가출의 차이는 돌아오기 위한 것인지 아닌지에 있다. 가출도 결과적으로 귀가로 끝나는 경우가 많겠지만 여행은 애초에 떠남 자체가 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여행은 출발부터 우리에게 다양한 선택과 결정을 요구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돼 자신을 시험하고 변화시킬 수도 있다.
여행을 통해 일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고 일상의 문제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 또한 여행의 중요한 기능이다. 가끔은 거센 계곡 앞에서처럼 중대한 결정을 강요받기도 하지만 사실 여행지에서의 선택과 결정은 거의 대부분 먹고 자고 듣고 보는 일상적 사안에 관한 것들이다. 그래서 여행은 익숙하게 반복해온 일상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생생한 감각을 되살려준다. 여행은 돌아오기 위한 떠남이고, 돌아와서 다시 맞이하는 일상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마음이 설레는 것이다.
허영란 (울산대 교수·역사문화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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