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하의 시시각각] 자해극이 되고 만 영부인 문자 공개

김정하 2024. 7. 12.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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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하 논설위원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쑥대밭으로 만든 ‘김건희 여사 문자’의 출처는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문자 공개로 한동훈 후보는 이득 볼 게 별로 없는 데다 실제로 해당 문자는 ‘배신 프레임’으로 한 후보를 공격하는 데 활용됐다. 이 때문에 김 여사 문자는 친윤 진영에서 언론에 흘렸을 것으로 보는 게 상식적 추론이다. 단정할 순 없으나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문자 공개 아이디어를 낸 인사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문자 공개의 후폭풍이 고스란히 김 여사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은 예상도 못 하고 오직 한 후보를 잡겠다는 정략에만 매달리다 황당한 자해극을 벌였다고 할 수 있다.

「 한동훈 잡으려다 여사 리스크 부각
사과 대상은 한동훈이 아니라 국민
왜 자꾸 녹취록ㆍ문자 소동 반복되나

공개된 텔레그램 문자엔 야당이 정치 공세에 활용할 대목이 수두룩하다. 가령 김 여사는 한 후보를 “함께 지금껏 생사를 가르는 여정을 겪어온 동지”라고 표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 후보를 그렇게 부른다면 이해하겠지만, 배우자가 ‘동지’라고 부르다니. 아니, 김 여사와 한 후보는 어떤 관계였단 말인가. 김 여사가 자신이 ‘댓글팀’을 활용해 한 후보를 비방했다는 오해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한 부분도 뒷맛이 찝찝하다. 드루킹 사건처럼 조직적 댓글 공작은 처벌 대상이다. ‘댓글팀’이란 위험한 단어가 영부인 문자에서 등장하는 건 어떤 배경인가.

김건희 여사(왼쪽),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후보. [중앙포토]


아마 문자 유출자는 내용을 공개해서 한 후보의 비정(非情)과 정무감각 부족을 부각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영부인이 ‘동지’라고까지 불러주는데 끝까지 ‘읽씹’한 한 후보에게 인간적인 느낌을 받긴 어렵다. 하지만 문자를 본 국민은 한 후보의 품성은 나중 문제고, 왜 영부인이 국민에게 해야 할 사과를 한 후보에게 했느냐는 것을 문제 삼는다. 김 여사 문자에선 명품백 문제와 관련해 ‘죄송하다’ ‘사과드린다’ ‘모든 게 제 탓이다’ ‘죄스럽게 여긴다’ ‘잘못을 뉘우친다’는 등의 표현이 줄기차게 등장한다. 본인이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명품백 사건이 터졌을 때 곧바로 국민에게 머리를 숙이는 편이 훨씬 좋았겠다.

따지고 보면 김 여사가 먼저 상납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명품백을 전달한 최재영 목사가 몰카를 동원해 김 여사를 함정에 빠트린 것이다. 김 여사가 진솔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면 이렇게까지 커질 일이 아니었다.

김건희 여사와 최재영 목사가 나눈 카톡 일부. 사진 서울의소리


김 여사의 통화나 문자가 공개된 건 처음이 아니다. 대선이 한창이던 2022년 1월 MBC 등을 통해 김 여사와 서울의소리 소속 이명수 기자의 52차례 통화 내용이 공개됐다. 김 여사는 이 기자가 뒤통수를 치려고 녹음 중이란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많은 얘기를 했다. 그 중 “조국의 적은 민주당” “박근혜 탄핵시킨 건 진보가 아니라 보수” “정치는 항상 자기 편에 적이 있다”는 등의 발언은 시중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원래 녹취록이 터지면 윤석열 후보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란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막상 들어보니 크게 문제가 될 내용은 없어 녹취록 폭로가 대선 판세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어쨌든 낭패를 겪을 뻔했으면 김 여사는 이 경험을 보약으로 삼아 영부인이 되고 난 이후엔 외부 인사와 만나거나 통화하는 데 극도로 신중했어야 했다.

그러나 최재영 목사라는 좌파 활동가가 손쉽게 김 여사와 만난 것을 보면 대선 이후에도 김 여사는 외부와 접촉하는 데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 여사와 대통령실은 지금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안 고친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다. 최근엔 정치평론가 진중권씨가 김 여사와의 통화 내용을 공개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앞으로 김 여사 관련 녹취록이나 문자가 더 안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일각에선 영부인 일정을 관리하는 제2부속실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물론 타당한 대책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김 여사 본인이 왜 자꾸 녹취록ㆍ문자 소동이 일어나는지 깊이 성찰하지 않으면 제2부속실도 큰 효과는 없을 것 같다.

김정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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