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제비야, 너 참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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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해방촌에 스승을 뵈러 갔다.
제비는 가슴팍에 밤색 목도리를 두르고 꽁지가 조그만 가위처럼 갈라졌다.
엄마는 제비 똥 치우는 걸 성가셔하면서도 제비가 참 장하다는 말을 하셨다.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 '행복한 왕자' 속에 등장하는 왕자는 제비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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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해방촌에 스승을 뵈러 갔다. 약속장소로 향하는 길에 반가운 장면을 목격했다. 빌라 주차장 입구에 제비가 집을 지은 것이다. 조리개만 한 제비집 안에 새끼 네 마리가 어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 택배 상자를 받침 삼아 달아두었다. 동네 주민의 말에 따르면 이전에 새끼가 떨어지는 바람에 경비원이 붙여둔 것이라 했다. 제비는 가슴팍에 밤색 목도리를 두르고 꽁지가 조그만 가위처럼 갈라졌다. 어미가 오면 일제히 마름모꼴 부리를 쩍 벌리는데, 그 모습이 퍽 귀여웠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집 처마 아래에 제비가 드나들었다. 빗줄기가 사선을 긋는 궂은 날에도 어미는 바지런히 날아다니며 먹이를 구해왔다. 그래서 마루에는 제비 똥이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엄마는 제비 똥 치우는 걸 성가셔하면서도 제비가 참 장하다는 말을 하셨다. 제 몸집보다 큰 집도 짓고, 오동통한 새끼들까지 어엿하게 키웠으니 말이다.
제비는 뼛속이 비어 가볍고 날렵하게 날 수 있다. 그 모습을 보노라니 신이 우리에게 숨겨둔 비밀 한 자락을 살짝 들춰보는 듯하다. 제비의 이동 경로는 가혹하리만큼 머나멀다. 그러나 제비는 이 작은 날개로도 꿋꿋이 살아갈 이유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우주를 둘러싼 시원(始原)의 순수한 뜻이 제비의 날갯짓에도 깃든 것을 생각하면 가늘게 몸이 떨린다. 오로지 자연은 설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뿐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 ‘행복한 왕자’ 속에 등장하는 왕자는 제비에게 말한다. “제비야, 너는 나한테 놀라운 것들을 이야기해주는구나.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건 저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란다. 저 고통보다 큰 수수께끼는 없어.” 우리는 세상의 물리를 전부 이해할 수 없으며, 인간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죽음의 이유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힘껏 날아오르는 제비를 보면 우리네 인생까지도 가슴 벅차게 응원하고 싶어진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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