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첫 ‘북한이탈주민의 날’이 주는 위로와 자부심

2024. 7. 12.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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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탈북민을 지칭하는 용어는 귀순 용사에서부터 탈북자·북한이탈주민·새터민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다. 그만큼 혼란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탈북민의 생활 방식은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두고 온 고향의 일가친척과 친구들 생각에 밤잠을 못 이룬다는 사람이 태반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생존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지만 경쟁력은 여전히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석사·박사 학위 따고, 성공한 사업가도 나왔다지만 ‘미취업’과 ‘부적응 현황’ 같은 통계에 묻혀 탈북민 사회는 늘 몸살을 앓는다.

「 혼란스런 삶을 사는 탈북민 많아
상대적 박탈감에 차별한다 느껴
지친 그들 다시 일으켜 세워주길

일러스트=김회룡

한국 땅에 정착하지 못하고 차별이 없다는 유럽으로 ‘탈남’하는 탈북민이 수천 명이나 된다.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사회관계망과 정부의 각종 지원 프로그램에도 적응하지 못해 아직도 사회적 약자 취급을 받는다. 이렇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의 경계에서 방황하던 탈북민들에게 기댈 곳이 생겼다.

올 초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은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며 통일부에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제정하라고 지시했다. 지난 5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날(1997년 7월 14일)을 ‘북한이탈주민의 날’로 지정했고, 오는 14일 첫 기념일을 맞는다. 북한군에서 20년간 복무하다 북한 사회에 환멸을 느껴 1996년 자유를 찾아 압록강을 건넌 탈북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개무량한 순간이다. 그동안 막힌 숨통이 확 트이는 듯하다.

나는 자유를 찾은 이후의 삶은 덤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란 행복 열차에 무임승차한 듯한 송구함을 떨쳐버리기 위해 입국한 첫날부터 배우며 일했고 일하며 배웠다. 하지만 북한 공민증을 버리고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을 막 받아든 사람에게 기계처럼 다가서는 자본주의의 원칙이 야속했던 것도 사실이다. 입국 이후 사회주의의 후유증을 설명할 사이도 없었다. 남북한의 커다란 격차 앞에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전에 오랜 세월 몸에 밴 사회주의의 요소를 털어버려야 했다. 그 빈자리에 자본시장의 능동적 원리를 꽉꽉 채워 넣어야 한다고들 조언했다. 그러지 못하면 ‘부적응자’로 낙인 찍어도 할 말이 없던 세월을 대부분의 탈북민은 살아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날 "정부는 탈북민들이 우리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이탈주민의 날 제정 추진을 지시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그래서 고향이 더 그립고, 상대적 박탈감을 차별이라 느낀다. 사실 탈북민들에게 필요한 건 국민의 관심과 사회적 배려다. 정착 지원을 위한 보조 프로그램, 주거지 지원, 특례 입학 등은 유익한 지원시스템이다. 하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말투가 투박하다고 다니던 직장에서 퇴출당하는 건 관심과 배려의 문제다.

같은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 석사라도 탈북민의 취업은 더 어렵고, 알려진 소수를 제외한 북한판 MZ 세대도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별의별 노력을 동원한다. 이 역시 탈북민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단지 먹고살기 위해 한국사회에 편입되지는 않았다는 탈북민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주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벽돌 한장 쌓은 적 없는 나를 품어주고 안아준 대한민국, 고마운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다”는 탈북민들의 마음이 제대로 받아들여진 적 있나 싶다.

서울 강서구의 탈북민 대안학교인 여명학교의 학생들. 여명학교

대표적 서민 음식의 고급화를 이뤄 낸 평양냉면 식당 사장, 남해 가두리 양식장에서 전복의 세계화를 꿈꾸는 탈북 여성, 국내외에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실체를 알리는 청년, 북한 주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전단을 살포해온 탈북민들이 자기 영달만을 위해 땀 흘려 왔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 ‘철우’와 ‘은영’이가 지쳐있다면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탈북민의 날’이 되길 바란다. 그 ‘철환’이와 ‘상학’이가 상처받았다면 속마음까지 헤아려 주는 ‘탈북민의 날’이 되기를 염원한다. 그래서 이 땅의 모든 탈북민이 성공한 삶을 사는 세월이 성큼 다가왔으면 좋겠다.

북한인권 운동을 해온 나는 2017년 폐암 말기 선고를 받고 쓰러졌다. 하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소생의 날개를 펼치려 한다. 건강을 되찾고 훨훨 날아 사랑하는 고향, 통일된 조국을 품고 싶은 나에게 ‘탈북민의 날’이 날개가 되어 주길 간절히 바란다. 통일의 그 날이여, 어서 오라.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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