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각수의 한반도평화워치] 인·태 지역의 낮은 한국 호감도…인적 네트워크 구축부터
한국 정부는 지난 2022년 12월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다. 자유, 평화, 번영에 대한 도전에 대항하는 중층적, 포괄적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게 핵심이다.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났다. 정부의 인·태 전략은 한국 경제와 안보에 사활적 이해가 걸린 인·태 지역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지역 질서에 기초한 포괄적 외교 안보 구상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단 역내외 주요 국가들보다 출발이 늦었기에 전략의 뼈대에 구체적 조치와 행동으로 살을 붙여가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우리의 빠른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인적 자본 형성의 경험을 인·태 지역으로 확산시키는 작업을 장기 주요 사업의 일환으로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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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서남아 학생 유학 지원하고
한국의 발전 경험 공유한다면
인구 절벽, 외교력 확대에 도움
장기적인 계획 세워 접근해야
」
한류 무색한 한국에 대한 낮은 인식
한국 인·태 전략의 대상 지역은 북태평양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오세아니아, 인도양 연안 아프리카, 유럽, 중남미 등 매우 광범위하다.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 국가가 위치한 북태평양이 중요하지만, 인·태 전략의 취지를 고려할 때 동남아와 서남아에도 관심을 둬야 한다. 우리와의 관계, 지리적 위치, 성장 잠재력, 전략적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동남아와 서남아가 주요 대상으로 될 수밖에 없다. 동남아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부분 대화 관계를 맺은 1989년 이래 현재 세계 2위의 무역·투자 대상이 됐고, 인적 교류는 세계 1위다. 서남아는 최근 인도의 부상과 함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동남아 국가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다는 연구 결과를 지나쳐서는 안 된다. 지난 4월 초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ISEAS-유소프 이삭 연구소)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ASEAN 소속 8개 국가 가운데 한국은 경제 영향력은 1.0점, 정치·전략 영향력은 1.4점에 불과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거의 꼴찌 수준이다. 미·중 경쟁에서 제3세력 전략 동반자로 선택할 협력 상대에서도 한국은 인도·호주·영국보다 뒤처진다는 사실이 우리 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일본은 신뢰도, 살거나 일하고 싶은 국가 및 방문 희망 국가 등 3개 지표에서 미국과 중국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일본은 1970년대 초 전후 배상 종료, 오키나와 반환, 일·중 수교 등으로 전후 처리가 끝나자 외교 우선순위에서 동남아를 앞세웠다. 1974년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는 동남아 5개국 순방 시 방콕, 쿠알라룸푸르, 자카르타 등에서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침략과 경제 진출에 반발해 격렬한 반일 데모가 발생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이에 1977년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총리가 동남아를 방문해 후쿠다 독트린을 발표했다. 동남아를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신뢰관계를 구축하겠다”는 게 골자다. 이후 일본은 동남아 국가에 막대한 개발 원조를 하고, 인적 교류를 통해 착실히 관계를 쌓았다. 일본 정부가 1960년부터 2011년까지 전체 정부개발원조의 34.9%를 동남아에 할애했을 정도다. 일본은 인적 자원 개발에도 힘을 쏟았다. 일례로 동방(Look East) 정책을 채택한 말레이시아의 경우 2만6000명이 일본국제협력기구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차관급 이상 고위관료의 60%가 훈련 경험자다. 일본은 매년 동남아 유학생 약 3000명에게 국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고, 일본-동아시아 학생·청년교류네트워크(JENESYS)를 통해 2007년 이후 약 4만 명의 청소년 교류를 지원했다.
일본, 매년 3000명 국비 유학 지원
2023년 현재 한국의 대학 이상 고등교육기관에 재학 중인 해외 유학생은 18만2000명이다. 이 가운데 아시아 출신은 16만2000명(89.0%)으로 압도적인 숫자지만, 이 가운데 동남아 출신은 29.1%, 서남아는 2.6%에 불과하다. 중국·베트남·우즈베키스탄·몽골 4개국이 81.4%를 차지한 반면, 베트남을 제외한다면 한국 유학생 중 동남아와 서남아 출신은 10% 남짓이다. 인적자본 축적을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포괄적인 장기계획 수립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통계다.
우선, 점진적으로 유학생을 늘려 연 30만 명 수준의 유학생을 유치하고, 일정 비율의 동남아·서남아 유학생에 국비 장학금을 지원해야 한다. 동남아판 캠퍼스 아시아 프로그램, 동남아 청년지도자 초청 프로그램 등 미래를 담당할 청소년 교류를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 지역에서 영향력이 강한 한류의 매력도 큰 힘이 될 것이다.
친한 인사를 확보하는 인적자원 육성은 인구절벽으로 생산 가능 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겪는 우리 사회에 긍정적 의미도 있다. 출산율 회복이 쉽지 않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제는 외국인, 특히 동남아와 서남아 노동력이 한국에서 적응해 생활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이 지역의 인적 자본 양성은 우리 인구감소 대책 면에서도 중요하다. 또한 인적유대 강화는 한국의 외교력 강화와도 직결된다. 인적자원 개발이 인·태 전략 실행의 핵심축이 돼야 할 이유다.
한국 외교의 숨 쉴 공간, 인·태 지역
유념해야 할 점도 있다. 우리의 동남아·서남아 정책이 정권이 교체되는 5년마다 바뀌면서 일관성을 잃어 현지에서 신뢰도가 낮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후쿠다 독트린을 기반으로 착실히 실적과 신뢰를 쌓아 왔듯이, 우리도 지속성과 일관성을 담보하는 장기적 접근이 중요하다. 또 우리는 이 지역을 함께 미래를 개척할 ‘대등한 동반자’로 인식해야 한다. 아직도 차별 의식·행동이 여전한 우리 사회가 따뜻한 포용적 자세와 보편적 기준에 따른 인식과 대우를 통해 마음으로 품는 다문화사회로 변모해야 한다.
인·태 지역은 지정학적 질곡과 분단의 멍에를 진 우리에게 소중한 생존공간이다. 한국 외교가 살아 숨 쉴 전략 공간을 제공해 줄 지역이기도 하다. 장기적 안목으로 확고한 비전과 철학 위에 인내심을 가지고 동·서남아 지역과도 탄탄한 관계를 쌓아가야 한다. 장기 국가전략인 인·태전략이 의도한 목표를 이루는 데는 튼튼한 인적 네트워크가 필수다. 동남아와 서남아를 대상으로 장기간 동반자·연결자로서 인적자원을 육성하여 인·태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일궈 나가야 한다.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전 주일본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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