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탁의 인문지리기행] 한국전 전쟁 영웅, 종전 후엔 “조선 입국” 발벗고 도와
밴 플리트 장군과 현대 울산조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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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의 공산 게릴라 소탕 인연
조선소 완공 전 유조선 수출 주선
무제한 포 사격 ‘밴 플리트 탄약량’
130만 북·중공군 기세에서 눌러
“나의 고향 한국 잘되길 바랄 뿐”
한국군 현대화, 민간 교류 앞장서
」
밴 플리트는 1951년 4월 한국전 참전 직전 공산주의 게릴라와 싸우는 그리스 정부를 위해서 2년 5개월간 군사고문단장으로 재직하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래서 그리스 정부는 그를 은인이라 여겼는데 이때 쌓은 인맥을 활용해 울산에 조선소가 완공되기 전이었어도 그리스에 배를 2척이나 수출할 수 있게 주선해줬다. 그 배가 26만t급 유조선인 애틀랜틱 배런(Atlantic Baron, 대서양의 남작)과 애틀랜틱 배러니스(Atlantic Baroness, 대서양의 남작 부인)로 1974년 11월 그리스 선박왕 조지 리바노스에게 인도되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조선 입국’의 첫 고동을 힘차게 울릴 수 있었다.
“한국인 근면 성실, 반드시 기적 이룰 것”
밴 플리트가 한국을 떠난 지 20년도 넘었는데 어째서 이런 일에 기꺼이 나섰을까? 그는 한국을 고향처럼 사랑해 “나의 고향 한국이 잘 되길 바랄 뿐이다”라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았다. 1962년 한국 정부의 초청을 받아서 서울을 방문한 뒤 미국에 돌아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인은 근면 성실하고 뛰어나다. 나는 갈 때마다 놀라는데 반드시 기적을 이룰 것이다.” 그의 찬사는 ‘한강의 기적’을 통해 사실로 판명되었으니 이는 단순한 애정을 넘어 깊이 있는 통찰로 이루어진 거라 더욱 값지다.
밴 플리트는 한국전에서 가장 힘든 시기 중 하나일 때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 그가 리지웨이 장군 후임으로 미 8군 사령관에 부임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국전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북한군 35만 명과 중공군 95만 명 등 총 130만 명이 집결해 아군에 대한 총공세를 벌인 뒤 유엔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려고 했다. 이때 총공세를 책임진 중공군 주력 3병단 및 19병단 소속 18개 사단은 중국이 파병한 부대 중 가장 잘 무장된 정예군이었다. 따라서 1·4 후퇴 후 다시 탈환했던 서울이 재차 적의 수중에 넘어갈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맥아더 장군 후임으로 미 8군 사령관에서 유엔군 사령관으로 승진한 도쿄의 리지웨이 장군은 물론이고, 워싱턴의 미 합동참모본부도 중공군 공세가 치열해지면 서울을 다시 내줄 수 있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밴 플리트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은 한국인의 얼굴이자 상징이므로 서울을 다시 내주면 한국인의 심정을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짓”이라며 상관들의 생각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리고 155㎜와 105㎜ 야포 400문을 동원해 광화문에서 마포 한강 변까지 늘여 세운 뒤 3일 밤낮으로 포격했다. 이때 탄약의 적정량을 고려하지 말고 사정없이 쏘라고 명령해 ‘밴 플리트 탄약량’이란 말이 생겨났다.
당시 중공군 대병력은 경기도 북부 일원에서 서울을 향한 마지막 공세에 온 힘을 쏟았다. 그리고 서울을 다시 손에 넣기 위해 임진강을 넘어서 경기도 송추 쪽으로 이미 접근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밴 플리트의 기세에 눌린 나머지 중공군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서울을 향해 더 이상의 공격을 하지 못했다. 이로써 1951년 4월에 중공군이 총력을 다해 펼친 제5차 총공세가 실패로 마감했다. 이때부터 중공군은 유엔군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 한국전을 끝내기 위한 수순에 들어가 휴전협상에 임했다. 그러니 밴 플리트의 판단이 옳았던 셈이다.
밴 플리트는 한국 육군의 현대화를 위해서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는 한국군의 성장 잠재력을 믿고 국군 재건을 위해 엄청난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미국 정부를 상대로 용의주도하게 작업을 펼쳤다. 1952년 12월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당선인이 한국에 왔을 때 백선엽 육군참모총장에게 육군 10개 사단 증원 요청안을 보고케 한 것도 이런 작업의 일환이다. 그런데 육군 10개 사단의 증원은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한국전 조기 종전 공약을 사실상 뒷받침하는 일이어서 육군은 한국전을 치르면서 미국의 도움을 받아 20개 사단으로 그 규모를 2배나 늘릴 수 있었다.
또 밴 플리트는 한국군 지휘관의 지휘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아 영관급 장교들을 대거 미국에 유학시켰다. 심지어 한국전을 치르는 중인데도 육군 10개 사단 모두를 재교육시켜 사단장에서 졸병에 이르기까지 9주간의 엄격한 훈련을 거쳐서 통과해야 재배치받도록 했다. 또 능력 있는 초급 장교의 육성을 위해 육사를 4년제로 바꾸는 데도 정열적으로 임했다. 그래서 사재를 솔선수범해 털은 뒤 각 부대의 미군 지휘관에게 “한국의 육사 생도들을 위해 도서관을 지어야 하니 알아서 돈을 갹출하라”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돈을 모아서 지어진 게 빨간 벽돌로 된 진해의 도서관이다.
북진 고집 휴전선 끌어올려
그런데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 참전국들은 한국민의 간절한 북진 희망을 외면한 채 임진강-문산-전곡-양양으로 이어지는 ‘캔자스 선’을 넘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에 리지웨이도 1951년 5월 말 밴 플리트에게 캔자스 선 북쪽으로 진격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밴 플리트는 승리만이 한국전의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북한 땅을 되도록 많이 점령해야 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제5차 총공세를 꺾으면서 중공군의 한계가 이미 드러났음을 알아서다. 그러자 리지웨이는 철의 삼각지대보다 약간 북방인 ‘와이오밍 선’까지 진격을 허락했는데 이것이 지금의 휴전선이다.
밴 플리트는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퇴역 명령을 받고서 1953년 1월 한국을 떠나 3월에 전역했다. 이는 아이젠하워가 그를 친 한국적이라고 여겨 미 8군 사령관으로서 그의 존재가 휴전협상에 방해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가 아닐까? 밴 플리트는 아이젠하워와 미 육사 동기다. 전역 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그에게 주한 미 대사직을 제안했다. 한국 정부와 잘 통하는 밴 플리트를 대사로 임명하면 한국전을 조기에 끝내려는 자신의 선거공약을 쉽게 이행할 수 있다고 믿어서다.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 밴 플리트 만한 사람이 없을 만큼 그는 이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주한 대사직 거절, 민간 외교로 한국 도와
밴 플리트는 대사직을 수락하면 자기 생각과 다르게 처신해야 하므로 이를 거절했다. 대신 민간인 신분으로 한국을 위해 애썼다. 그래서 제대하자마자 한미재단을 만들고, 코리아소사이어티 창설을 주도해 미국 내 가장 영향력 있는 친한 단체를 만드는 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심지어 한국 부흥을 위한 모금 활동을 위해 ‘나는 누구일까요?’라는 한 TV 예능프로에 출연해서 한국인은 가능성 있는 국민이므로 도와줘야 한다고 미 시청자들에게 역설했다. 그러니 유조선의 첫 수출을 도와준 일도 그런 노력 중 하나라고 본다.
밴 플리트는 미군 장성이기에 미국의 국익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한국을 이해하려고 매우 애썼다. 이 점이 철저히 미국의 국익에 따라 행동한 전임 리지웨이 사령관과 달랐다. 오늘날 한국이 눈부시게 발전해 미국의 든든한 우방으로 자리 잡은 점을 고려하면 밴 플리트의 판단이 리지웨이의 판단보다 낫다는 생각을 한다.
밴 플리트는 네덜란드계 미국인이다. 월드컵 4강 신화의 산파역인 히딩크 감독도 네덜란드인이고, 마실 물을 구하기 위해 제주도에 상륙했다가 귀화해 서양 대포인 홍이포의 제작법과 조작법을 지도해준 박연도 네덜란드인이다. 그러니 네덜란드인과 한국인은 서로 궁합이 잘 맞나 보다.
김정탁 노장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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