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천의 퍼스펙티브] 성장 무용론으로 이어진 ‘고용 없는 성장’…사실과 다르다
‘고용 없는 성장’의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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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거가 된 취업유발계수 하락은 생산성 향상의 결과
진보 경제학자들이 주장한 이후 통념으로 자리 잡아
실제론 고용률과 고용탄력성 모두 꾸준히 늘고 있어
기업 커가도록 정책 재설계하고 좋은 일자리 늘려야
」
긍정적 통계가 나쁜 뉴스로 나오다
경제학의 매력 중 하나는 어떤 주장을 하면 반드시 근거가 되는 데이터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용 없는 성장의 경우 ‘취업유발계수’라는 데이터를 논거로 활용했다. 취업유발계수는 10억원당 생산에 필요한 직·간접적인 취업자 숫자다. 직접적인 일자리만 포함하면 ‘취업계수’라고 하고, 간접적인 것도 포함하면 ‘취업유발계수’라고 한다.
산업 전체로 보면 2015년 취업유발계수는 11.7명이었다. 2020년은 9.7명으로 5년 전보다 2명이 줄었다. 고용 없는 성장이란 보도가 나온 이유다. 하지만 이는 취업유발계수 개념을 잘못 이해한 것에서 비롯된다.
산출액 10억원당 필요 취업자(간접 포함)가 100명인 A국가와 50명인 B국가가 있다고 하자. A의 취업유발계수는 100명, B의 취업유발계수는 50명이다.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A국가는 100명을 투입해야 10억원을 생산하고, B국가는 50명만 투입해도 10억원을 생산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어느 나라가 더 좋은 경제 구조인가.
당연히 B국이다. B국은 A국보다 ‘노동생산성’이 2배 더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 노동 생산성 향상의 개념 자체가 ‘더 적은 인력으로’ 동일한 산출물을 만드는 것이다. 자본주의 역사는 노동생산성 향상의 역사였다. 경제발전 역시 노동생산성 향상의 역사였다. 취업유발계수 축소라는 것은 나쁜 뉴스가 아니라 좋은 뉴스였다.
취업유발계수 줄어도 고용 늘었다
나아가 취업유발계수가 줄어도, 고용은 늘어날 수 있다. 경제 규모 자체가 늘어나는 경우가 그렇다. 다시 두 나라를 비교해보자. 경제 규모가 10억원이고, 취업유발계수는 100명인 C국가. 경제 규모는 30억원이고, 취업유발계수는 70명인 D국가. 둘 중 취업자 규모가 더 많은 곳은 어디일까. C국의 100명, D국의 총 취업자는 210명이다. D국의 경제 규모는 C국의 3배다. 취업유발계수는 줄었지만, 총고용은 늘어난다.
노동생산성이 향상되면 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고용 규모도 커지는 게 일반적이다. 1980년대 중반 반도체 산업에 뛰어든 이후, 삼성전자의 발전 과정이 좋은 사례다. 삼성전자는 대규모 자본투자를 통해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산출물을 만들어냈다. 취업유발계수를 끌어내린 것이기도 하고, 노동생산성과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린 것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와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는 총 고용 규모는 훨씬 커졌다. 최근 4·10 총선에서 경기도 지역 최대 승부처였던 수원, 용인, 화성 등의 ‘반도체 벨트’에 거주하는 수백만 명의 유권자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렇듯, ‘더 적은 인력으로’ 동일한 산출물을 만드는 노동생산성 향상은 얼핏 보면 고용을 줄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노동 절약적인 생산성 향상은 경쟁력을 강화하고 경제성장을 만들어내고, 최종적으로는 총고용을 증가시킨다.
고용 없는 성장은 사실이 아님에도 오늘날 두터운 통념이 됐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대다수 경제학자가 그렇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에 대해 비판적인 문제 의식을 갖고 있던 진보성향 경제학자와 언론이 주도했고, 다른 이들이 따라 했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교수 시절 『한국 자본주의』라는 책에서, 김상조 전 정책실장도 『종횡무진 한국경제』라는 책에서 고용 없는 성장론을 제기한다. 이때 활용하는 논거 역시 ‘취업유발계수’의 축소였다. 김 전 실장은 책에서 한국의 선도산업인 반도체산업, 전자·전기 산업 분야에서 취업유발계수가 가장 많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우려했다. 진보성향 경제학자들의 이러한 주장은 진보언론의 보도를 통해 반영되며 확산됐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0년 고용표’를 보면, 공산품 중에서도 컴퓨터, 전자 및 광학기기 분야에서 취업유발계수가 가장 적다. 이 분야가 한국에서 ‘가장 최첨단’ 산업이기 때문이다. 취업유발계수가 가장 높은 쪽은 농림수산품 분야다. 저부가가치-노동집약적 산업이기 때문이다. 서비스업 중에서는 금융 및 보험서비스가 취업유발계수가 낮은 축이다. 상대적으로 고부가가치-지식 집약적 산업이기 때문이다. 음식점 및 숙박서비스는 취업유발계수가 높은 축이다. 저부가가치-노동집약적 산업이기 때문이다. 취업유발계수는 낮아지면 좋은 거다.
고령화에 따라 돌봄 일자리 늘어
성장과 고용의 관계를 다루는 정확한 데이터는 고용탄력성이다. 고용 탄력성은 성장률 1%마다 고용률이 몇% 증가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고용탄력성은 한국은행의 경제성장률과 통계청의 취업자 증가율의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다. 예컨대, 경제성장률이 3%인데 취업자 증가율이 1%인 경우 고용 탄력성은 0.33(1/3)이 된다. 한국경제의 고용 탄력성 그래프는 우상향하는 양(+)의 관계에 있다. 경제성장을 할 때 고용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1991~2020년의 30년에 걸친 고용 탄력성 수치를 보면 1990년대 기간 평균은 0.38%, 2000년대는 0.3%, 2010년대는 0.51%이었다. 재밌는 것은 2000년대와 2010년대를 비교하면 고용 탄력성이 오히려 증대했다. 생산가능인구 중 취업자 비중을 나타내는 고용률도 꾸준히 증가해왔다. 한국 경제는 고용 없는 성장이 아니라 오히려 고용이 증대되는 성장을 해왔다. 초고령화 진전으로 인해 전체 노동시장에서 ‘돌봄 노동’의 비중이 커진 게 주된 요인으로 추정된다. 이런 돌봄 분야는 많은 인력이 필요한 노동집약적 특성이 있다.
그렇다면 고용 없는 성장 담론이 확산한 이유가 뭘까. 일부 경제학자의 개념적 오해가 가장 큰 요인이었지만, 보통 사람들의 걱정이 담겨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의 충격이 워낙 컸다. 2001년 12월에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진다. 경쟁우위 산업은 더 잘 나가고, 경쟁 열위 산업은 처지게 된다. 수출-주력 산업에 종사하는 일자리는 상위 30% 지위를 갖게 되고, 나머지는 사실상 중하위 70% 일자리에 갇히게 된다. ‘좋은 일자리’는 나와는 무관한 ‘그들만의 일자리처럼’ 느껴지게 됐다.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잘못된 개념 사용은 잘못된 상식을 심어주고, 잘못된 정책 처방으로 연결된다. 고용 없는 성장 담론의 실천적 귀결은 ‘성장 무용론’이다. 고용 없는 성장이 사실이 아니듯, 성장 무용론도 사실이 아니다. 2010년대 기준, 한국경제가 1% 성장하면 고용은 0.51% 성장했다. 1991~2020년 평균으로 보면 한국경제의 고용탄력성은 약 0.39였다. 고용을 만드는 가장 유력한 방법은 여전히 경제성장이다.
부가가치 올리는 정책 필요
둘째, 중(中)임금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러자면, 저부가가치 산업의 점진적 퇴출을 통해 중 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동하도록 정책이 뒷받침을 해야 한다. 저부가가치-영세기업에 대한 과도한 보호의 다른 이름은 ‘저임금 노동’을 장려하는 것이다.
부가가치의 상향이 중요하다. 소기업은 저임금, 중기업은 중임금, 대기업은 고임금이다. 소기업은 중기업으로, 중기업은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은 대기업이 될 수 있도록 정책 전반을 재설계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일자리가 더 많아질 수 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좋은 불평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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